'살아있는 것이 기적', 脫北入南女의 만리 야화 -31 남쪽 人
'살아있는 것이 기적', 脫北入南女의 만리 야화 -31 남쪽 人
  • 이향단
  • 승인 2018.08.31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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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보다 더 소설같은 이승희(만주에서부른 이름은 이향단)의 육필수기

살아가는 힘이 되어준 따듯한 남쪽 사람들

같이 있으면 기분 좋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다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더할 수 없는 기쁨이다. - 베르나르 베르베르

나는 탈북을 하면서 참 많이도 울면서 살아왔다. 한창 꽃피며 살아야 할 스물세 살 나이에 정치범이라는 인생을 살면서 감옥에서 아버지와 오빠가 죽고 나는 죽지 못해 살았다. 다시 중국에 들어와 근 8년이라는 세월을 살면서 북한 사람이라는 이유로 깔보고 말도 함부로 하고 사람 취급도 하지 않는 세상에서 오직 ‘대한민국에 가리라’는 믿음 하나로 세상을 살아오다 마침내 2003년 5월 25일에 꿈에 그리던 한국에 들어왔다.

 

2003년 8월 26일에 대구에 내려와 생활하면서 3년이라는 세월을 눈물 속에 살아왔다. 아침에 나갔다가 저녁에 집에 들어오면 텅 빈 집에 앉아 부모님을 생각하면서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면서 살았다. 외로움에 울고 좋은 것만 보아도 부모님 생각에 울었다.

중국에서 신랑을 만나 살던 어느 날이었다. 신랑은 자고 있는 나를 깨우면서 바나나를 사왔다고 했다. 그러면서 껍질 깐 바나나를 잠이 덜 깬 나의 입에 넣어 주던 신랑을 보면서 나는 차마 바나나를 먹지 못하고 엉엉 울음을 터트렸다. 갑자기 울고 있는 나를 보면서 신랑은 그렇게 가족이 그립느냐고 물어본다. 내가 살아온 과거를 신랑에게 아무리 이야기해도 신랑은 이해를 못하는 것 같았다.

북한속담에 “길은 걸어봐야 그 길이 얼마나 멀고 긴지 알고 물의 깊이는 물을 건너봐야 안다”고 했다. 신랑은 나의 과거를 아무리 들어도 본인이 직접 경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나의 설움과 외로움을 이해하기 힘든 것 같았다. 한국에 들어와서 부모에 대한 나의 그리움은 더욱 간절했다. 그토록 아버님이 오고 싶어 하시던 땅에 와서 기쁜 일이 생겨도 울고 좋은 것을 먹어도 울면서 지냈다.

1년이 지난 2004년 12월 어느 날, 볼일이 있어서 부산으로 가다가 옆에 앉은 어르신을 알게 되었다. 전화를 받는 나의 말소리에 그분은 아주 조심스럽게 “혹시 실례가 되지 않으면 한 가지 물어도 괜찮아요?”라고 묻는다. 나는 “네.” 하고 대답했다. “혹시 고향이…….” 하고 물으신다. 나는 “고향이 북한입니다.”라고 말씀드렸다. 어르신은 나에게 몇 년 전에 장백산(백두산)관광을 갔다 오면서 그때 두만강 옆에서 북한을 본 일이 있다면서 그때 북한을 본 이야기를 나에게 해주었다. 어르신하고 이야기하는 동안 어느새 부산에 도착했다. 어르신은 마지막으로 나에게 전화번호를 주면서 대구로 갈 때 같이 가자고 하신다.

나는 부산에서 2시간가량 볼일을 보고 어르신께 전화를 했다. “선생님, 저는 볼일 보고 대구로 가야 하는데 혹시 같이 가실 수 있어요?”라고 물어 보았다. 어르신은 부산역에서 기다리라고 하신다. 어르신은 부산에 있는 자신의 누님 댁에 누님을 찾아뵙고 가는 길이라고 하였다. 내 전화를 받고 어르신 누님 댁에서는 어르신이 오자마자 다시 대구로 간다며 일어나니, 누님은 그 여자가 어떤 여자인지도 모르는데 동생이 집에 왔다가 그냥 간다고 하니 우리 동생이 단단히 꽃뱀 같은 여자에게 홀린 것 같다고 했다. 어르신은 누님의 만류에도 부산역으로 나오셨다. 어르신은 나를 데리고 부산 해수욕장을 구경시켜주고 싶다고 하셨다.

그날 어르신 따라 나는 부산해수욕장을 구경하고 대구로 왔다. 대구에 와서 어르신은 나에게 집에 가서 혼자 밥 먹으면 맛이 없으니 밥 먹고 가자고 하신다. 어르신은 동대구역 근처 식당에 들어가서 국수를 사주셨다. 국수를 드시면서 어르신은 나에게 “우리 이 국수처럼 오래 알고 지내자”고 말씀하신다. 그날 그렇게 보내고 나는 힘들 때마다 어르신께 전화를 하곤 했다.

한국에 와서 북한에 있는 어머니와 언니를 모셔 오려고 브로커를 통해서 북한에 가족을 한국으로 데려와 달라고 부탁을 했다. 그런데 브로커의 사기로 나는 힘든 나날을 보내게 되었다. 하루는 미용실에서 퇴근을 하고 집에 들어오니 밤 11시가 막 넘어서고 있었다. 집에 들어와서 불을 켜고 1분 안 됐는데 밖에서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내가 누구냐고 물으니 포항에서 사는 사람인데 북한에 가족 데리고 오는 일 때문에 왔다고 한다. 브로커 업자는 내가 준 돈을 자기가 가지고 이 사람들은 돈을 못 받았다고 나에게 와서 돈을 달라고 한다.

그날 우리 집에 남자 5명에 여자 1명이 찾아왔다. 나는 그 사람들에게 나는 너네하고 일을 시작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한테 볼일 있으면 내일 낮에 오라고 했다. 그러니 그 사람들은 30분을 넘게 우리 집 현관문을 두드리고 있다. 옆집에서 시끄러우니 조용해달라고 하면 미안하다고 하면서 계속 현관문을 두드린다. 할 수 없이 나는 신변보호담당관에게 전화를 했다. 우리 집에 지금 밖에 많은 사람들이 와서 행패를 부리고 있다고 하니 형사님이 “알았다. 내 금방 갈게.” 하신다.

15분 지나서 형사님이 우리 집에 도착했다. 형사님이 오셔서 사건의 내막을 알아보시고 그 사람들을 우리 집에서 내보내고 나에게 이 사건은 처음 발단이 니가 시작을 했기 때문에 니가 돈을 주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고 하신다. 저 사람들은 나한테서 꼭 돈을 받으려고 잡도리를 했기 때문에 내가 돈을 안 주고는 힘들 것 같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앞으로 계속 저녁 늦게 집에 와서 행패를 부리면 나만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한다. 그날 형사님이 그 사람들에게 “이승희가 지금 돈이 없으니 나중에 돈을 주겠다.” 하고 돌려보냈다. 나는 그 사람들에게 돈을 주는 일로 법원에 찾아갔다.

법원에 가니 새터민을 담당하시는 변호사가 따로 있었다. 새터민을 담당하는 변호사는 1994년부터 1997년 일본에 유학하여 노동법을 공부하던 중, 한국인 피해자들이 일본 법정을 상대로 재판을 진행하는 것을 구경하면서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당시 일본의 변호사들이 한국인 피해자들을 위해 변론하던 것을 보고, 대한민국 변호사로서 부끄러움을 느꼈으며, 이를 계기로 한국에서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소송을 담당하게 되었다는 그 유명한 최봉태 변호사였다. 나는 새터민을 담당하는 최봉태 변호사를 찾아가 나의 이야기를 하였다. 내 이야기를 듣던 변호사님은 나를 보고 돈을 안 줘도 된다고 하신다. 나는 변호사님께 “그러면 밤늦게 그 사람들이 와서 행패를 부리면 그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물었다. 변호사는 그러면 “돈을 줄 때 여기 와서 내(최봉태) 앞에서 주어라.”라고 말한다. 다음날 나는 그 사람들을 변호사 사무실로 오라고 했다. 변호사는 그 사람들을 보면서 “내(최봉태)가 얘 오빠다.”라고 소개를 한다. 변호사는 돈을 주면서 더 이상 돈을 달라는 일이 없도록 각서를 쓰게 하였다. 앞으로 또 다시 이런 일이 생겨도 나와는 상관없다는 확인서까지 받고 그들을 돌려보냈다.

오빠라는 말에 내 마음속에서 묘한 감정이 돌기 시작한다. 나는 이때까지 살면서 나의 오빠와 사촌들 외에는 다른 사람들에게 언니나 오빠라는 말을 해 본 일이 없을뿐더러 남에게 언니, 오빠라고 부르는 자체를 이상하게 생각했다. 그런 나에게 나의 오빠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서 오빠라는 말을 들으면서 이렇게 다정하게 느껴보기는 처음이었다.

나는 한 번의 실수로 가족과 헤어져서 몇 년을 혼자 살면서 혈육의 정마저 잃어가고 감정도 메말라가고 있었다. 봉태 오빠는 나에게 혈육의 정을 다시 알게 해주었다. 오빠는 그날 이후로 나의 보호자가 되었다. 오빠는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나에게 전화해서 친구들을 소개해 주었다. 오빠는 친구들을 소개해주면서 사람을 많이 알아두면 내가 어려울 때 도움이 된다고 한다.

2009년 여름, 봉태 오빠의 소개로 김○○ 국장님을 알게 되었다. 국장님을 처음 뵙던 날, 국장님은 우리 마을에 마을도서관이 있는데 아느냐고 묻는다. 내가 마을도서관이 있는 줄 몰랐다고 하니 국장님은 나에게 도서관을 소개해주셨다. 도서관을 들어가면서 국장님은 마을도서관이 어떻게 건립되었는지 설명해주셨다.

마을 주민들이 동네 아이들을 위해 집에서 통장을 들고 나와 마을도서관을 만들었다고 했다. 딱히 갈 곳이 없던 동네 아이들을 위해 마을 주민들이 마음을 합쳐 만들어진 도서관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마음이 뭉클했다. 동네 아이들을 위해 아줌마들이 집에서 통장을 들고 나오다니. 내가 살던 북한에서는 누군가가 그 누구를 위해 이런 일을 할 수 있으리라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나는 도서관을 이용하면서 많은 도서관 봉사자분들을 알게 되었다. 특히 거기에서도 나의 눈길을 사로잡는 한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은 김○○ 관장님이었다. 관장님은 우리 동네 맏언니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누구나 한결 같은 마음으로 품어주는 마음, 그런 모습을 보면서 ‘나에게는 저런 마음이 없는데 관장님은 어떻게 저런 마음이 생길까.’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그렇게 나는 아띠와 인연이 점점 깊어지게 되었다. 나는 힘들 때마다 관장님에게 고민을 이야기하면 관장님은 그 고민을 해결해주는 흑기사였다. 나는 이렇게 많은 관심과 따듯한 사람들 속에서 어렵고 힘든 일이 있어도 힘과 용기를 가지고 살아 갈 수 있게 되었다.

지난 세월을 생각하며 외로움과 슬픔으로 하루하루 살아가던 내가 따듯한 남한 사람들을 만난 후부터 외롭고 힘들 때마다 따듯한 사람들의 이름을 언제나 부르면 따듯한 위로가 되어서 헝클어진 마음을 다독여 주곤 했다. 불안해하는 동생을 감싸 안아주는 사랑이 있어서 사는 일이 힘들 때나 어딘가에 화를 내고 싶을 때 나직이 소리 내어 그들을 불러보면 마음이 편안히 가라앉곤 했다.

큰아들 나이가 나와 같다면서 큰아들 생각하면 내 생각이 난다는 어르신도 있었다. 반대로 작은아들이 나와 나이가 같다고 하시면서 작은아들 생각하면서 나를 생각하시는 어르신도 계셨다. 미국에 여행 갔다가 손녀 옷을 사면서 손녀 나이와 같은 우리 딸 옷까지 사 오시는 곽 회장님도 계셨다. 회장님은 주기적으로 나에게 전화를 하면서 우리 딸이 보고 싶다며 꼭 딸과 함께 사무실로 오라고 한다. 회장님 전화를 받고 딸을 데리고 회장님을 찾아뵈면 회장님은 늘 봉투에 현금을 넣어서 딸에게 예쁜 옷 사주라고 말씀하시면서 나에게 건네주신다. 크고 작은 일이 너무 많아서 여기에 다 적기는 힘들지만 내가 살아가는데 힘이 되어준 사람들이 있었기에 삶의 힘들고 지칠 때도 용기를 내어 본다.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언제나 나를 응원해 주는 따뜻한 이웃이 있었다. 따듯한 사람들의 있기에 이 겨울 영하 15도의 한파에도 내 마음은 봄날 같이 따듯하기만 하다.

“받은 상처는 모래에 기록하고 받은 은혜는 대리석에 새기라.”- B. 프랭클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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