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것이 기적', 脫北入南女의 만리 야화 -32 대구
'살아있는 것이 기적', 脫北入南女의 만리 야화 -32 대구
  • 이향단
  • 승인 2018.09.01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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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보다 더 소설같은 이승희(만주에서부른 이름은 이향단)의 육필수기

9년에 걸쳐 북한, 중국, 대한민국 대구까지

자신의 가능성을 실현할 수 있는 인간은 행복한 사람이다.

- 로버트 레슬리

2003년 5월 25일, 나는 이 땅에 두 번째로 다시 태어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유를 찾아 북한을 떠나 어언 9년이라는 너무 긴 세월을 돌아 대한민국으로 들어왔다. 남쪽에서 북쪽까지는 지척인데 대한민국으로 오는 과정에서 너무도 많은 시간과 세월이 흘렀다. 그 세월 속에 고통과 설움을 안고 죽을힘을 다해 남쪽으로 오게 되었다. 기나긴 시련의 시간이 가져다준 희망이었다.

 

대한민국으로 오는 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내놓아야 했는지 모른다. 자유와 희망을 찾아 죽음을 무릅쓰고 탈북을 세 번이나 시도했다. 그러나 북한을 빠져나온 중국에서의 삶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9년에 걸쳐 북한, 중국, 대한민국 대구까지 생사의 갈림길에서 북송과 함께 감옥에서 아버지와 오빠의 죽음. 죽지 못해 살아가다가 단 1분 1초를 살아도 사람답게 살고 싶어서 또다시 국경을 넘어야 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쳐 한평생 김일성·김정일을 위해 충성을 다하다가 어느 날 당 비서의 갑작스런 해고에 급기야 정신병자(정신질환자) 진단을 받는다. 어머니는 그래도 직장에 나가서 일하고 싶어 하셨다.

김일성 만나러 평양에 간다고 나서서는 기차역에서 12시간을 넘게 기다리다 기차가 오지 않아 평양에 못 가게 되었다. 그러면서 직장에서 누구도 나오라고 하는 사람이 없는데도 어머니는 누구도 하지 않는 석탄재를 버리는 산에 혼자 올라가서 일을 하고 계셨다. 밤 10시까지 들어오지 않아 온 가족이 어머니를 찾아 나섰다. 날마다 더해가는 어머니 병세에 아버지는 해보지 않은 방법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머니 병은 날마다 점점 더 심각해졌다. 아버지는 희망이 보이지 않는 북한의 현실을 놓고 많이 고민 하셨다. 고민 끝에 아버님은 나에게 “나는(아버지) 이제 다 살았다. 하지만 너희들이 먹을 것이 없어 배낭 위에 배낭을 메고 다니는 모습을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1995년에 9월에 두만강을 건너게 되었다. 자유의 기쁨도 잠시, 우리는 3일 만에 북경 대사관 앞에서 대사관 문턱을 넘지 못하고 중국 경찰에 체포되었다. 우리는 북경수용소에서 일주일을 지내다가 도문을 걸쳐 남양으로 북송 되었다. 북송되기 전 도문다리 앞에서 아버지는 우리에게 “지금 온 가족이 다 잡혀 나가지만 이중에서도 누가 어떻게 잘살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하셨다. 그런 아버지의 얼굴에는 거의 힘이 없어 보였다. 그렇게 우리는 북한정치범수용소에서 근 4개월을 보냈다.

가족을 살리기 위해 두 달을 감옥에서 생으로 굶었다. 그러다 마지막에는 앉아 있으라고 하는데 힘이 없어서 옆으로 쓰러졌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 가족은 여자 3명은 창태리로 추방되고 아버지와 오빠는 주모자로 수용소에 더 들어가게 되었다.

창태리에 올라가서 농사를 지으면서 살아가다 결핵과 복막염을 겸하면서 죽지 못해 살아가다가 또 다시 중국으로 탈북을 하게 되었다. 중국에 들어와 좋은 아저씨의 소개로 인심 좋은 할머니를 만나 살다가 두 달 후 할머님 집 사정으로 같이 지내지 못하게 되었다. 그 후 딱히 정해진 곳이 없이 이곳저곳으로 방황하는 생활을 하다가 아버지 조카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그 집 아들에게 죽도록 폭행을 당하면서 차라리 맞아 죽으려고 결심을 했다. 그 날 이후 나는 같이 일하던 언니가 소개해준 남자와 함께 살기로 결심을 하고 남자와 동거 생활을 시작하였다. 동거생활을 시작한 지 1년도 안 되어 인신매매 납치꾼에 잡혀가다 극적으로 살아 돌아왔다.

그 후 시골에서 살지 못하고 연길시로 나와서 살았다. 연길로 나와 한국에 가려고 시도를 하다가 두 번의 사기를 당했고 한 번은 5000원을 주고 가짜 신분증을 만들었다. 그래도 거기에서 포기하지 않고 기어이 한국으로 가리라는 결심을 한다. 나를 좋아해주던 강아지 미미의 죽음 앞에서 또 한 번 이 세상에 혼자가 되는 외로움과 슬픔에 잠기기도 했다. 그러다 신랑과 싸우면서 신랑의 냉정한 행동에서 버림받은 것 같다는 생각에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다. 손목을 그냥 가로로 그으면 잘 안 죽을 것 같아 핏줄을 따라 가면서 칼로 핏줄을 베고 흘러나오는 피를 보았다. 그런데 갑자기 어디선가 여기서 이렇게 죽으면 좋아할 건 아버지와 오빠를 죽인 사람들 밖에 없다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나는 정신을 차리고 죽어도 한국에 가리라는 마음을 다시 가졌다.

H. 발자크는 이렇게 말한다.

“불행이야말로 우리의 가장 훌륭한 스승이다. 불행은 돈과 사람의 가치를 가르쳐 준다. 역경에 처해 있으면서 타락하지 않는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매우 위대하다.”

나는 온 갓 시련을 다 이겨내고 마침내 2003년 5월에 대한민국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인천공항의 황홀한 풍경을 볼 새도 없이 눈에서는 하염없이 눈물만 흘렀다. 살아생전 그렇게 오고 싶어 하시던 아버님을 생각하면 가슴이 찢어진다.

국정원에서 3일은 눈물로 지내다 같이 있는 언니의 한마디에 옆 사람을 생각하지 못하고 내 설움에만 잠겨 눈물을 흘린 것이 미안해 그 후 누구도 모르게 샤워하면서 울었다. 한민족이라는 세 글자 때문에 국정원에서 탈북자들에 대한 따듯한 대우에 감동을 받아 앞으로 살아가면서 언젠가는 꼭 보답하리라 결심을 하고 국정원을 나왔다.

천국 같은 하나원 생활은 발바닥에 털이 날 지경이었다. 하나원에서 우리들에게 대한민국 법에 대하여 가르쳐주고 이 나라에 잘 정착할 수 있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통일부에서는 앞으로 탈북자들이 살아가는 데 불편하지 않게 하나하나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2003년 8월 26일에 하나원을 퇴소하고 대구에 집을 배정 받고 왔다. 앞으로의 꿈은 미용교수였다. 대구에 와서 일주일 만에 미용학원에 등록을 하고 65일 만에 대한민국에서의 첫 자격증을 취득하였다. 스펙을 중요시 하는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려면 자격증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낮에는 현장에서 기술을 배우고 밤에는 학교에서 공부하면서 하나하나 배워 나갔다. 그리고 국정원에서 나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시간이 날 때마다 짬짬이 봉사활동을 시작하였다. 그러다 2005년에 대경대학에 입학을 하였다. 2006년에 대경대학을 졸업하고 낮에는 일을 하면서 밤에는 학점은행제를 다니기 시작했다. 그렇게 공부하면서 나는 많은 자격증을 취득하였다. 오직 교수가 되려는 꿈을 가지고 열심히 지식과 기술을 배웠다.

아이를 출산하면서부터 대학공부와 교수의 꿈은 무기한 보류 상태로 내게서 멀어지고 있었다. 세상에 태어난 딸아이를 보면서 피곤함도 즐거움과 행복으로 느꼈다. 행복에 빠져 딸만 키우면서도 문득문득 ‘대학공부는?’, ‘내 꿈은?’ 하는 생각에 가슴은 허전했다. 그때마다 아이의 웃는 얼굴을 바라보았고 엄마의 품에서 자라고 있는 딸을 생각했다. 그렇게 나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딸을 키우는 데 모든 정성을 다하였다.

어느 덧 딸은 학교에 입학을 했다. 때가 되면 학교 가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애써 무덤덤했었는데 입학식 끝난 다음 날 아이에게 성공일기장을 만들어 주면서 왜 자꾸만 눈물이 나오는지 모르겠다. 성공일기장에 엄마의 마음을 전하고 싶어서 몇 가지 글을 적어서 주었다. 엄마가 적어준 글의 뜻을 어린 딸이 완전히 이해하기는 어렵겠지만 언젠가는 이해하리라 믿으면서 적어주었다. 그때 써주었던 글을 몇 가지 적어본다.

*책만큼 위대한 스승은 없다.

*책은 결코 사람을 배신하지 않는다.

*책 속에는 천 가지 종류의 곡식도 있고 황금으로 지은 집도 있고 온갖 부귀영화가 들어있다.

*독서는 (이○○)를 명품으로 만든다.

*무언가를 간절히 원하면 그것이 이루어진다.

*독서로 세상의 지배자가 돼라!

*노력 없는 성과는 없다.

책 속에 세상의 원리와 법칙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는 것을 아이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한국의 교육문화를 알아야 아이를 키울 수 있을 것 같아서 나는 2014년 12월에는 독서논술지도사 자격증과 수학지도사 자격증도 취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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