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것이 기적', 脫北入南女의 만리 야화 -33 희망
'살아있는 것이 기적', 脫北入南女의 만리 야화 -33 희망
  • 이향단
  • 승인 2018.09.03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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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보다 더 소설같은 이승희(만주에서부른 이름은 이향단)의 육필수기

희망은 생각보다 믿을 만하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일하는 사람, 사랑하는 사람, 그리고 희망이 있는 사람이다.

- 에디슨

나는 9년이라는 세월을 외로움과 슬픔 속에서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혈육의 정마저 잊어가고 있었다. 그런 나에게 대한민국은 삶의 보금자리를 마련해주고 따뜻한 품으로 나를 안아주었다. 중국에서 한국으로 들어 올 때 나는 다른 것 다 필요 없고 오직 주민등록증만 해결해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대한민국은 한민족이라는 세 글자 때문에 나와 같은 탈북자들을 받아주고 살아 갈 수 있게 해주었다. 나는 대한민국에서 살면서 짐이 되지 않기 위해서 열심히 살아가리라 다짐했다. 한 달간의 국정원 조사를 마친 뒤 두 달간의 하나원을 생활을 마무리 하고 하나원을 퇴소했다. 그리고 대구에 임대주택을 받고 대구로 왔다. 대구에 와서 일주일을 쉬면서 생활에 필요한 것을 장만하였다.

 

대구에 와서 삼 일째 되는 날 대구종합사회복지관 복지사 선생님들과 구룡포에 갔다. 나는 바다를 보면서 눈물을 흘렸다. 아버님은 북한에서 살면서 선장이 되는 게 꿈이셨다. 그런데 출신성분이라는 족쇄 때문에 아버지는 그 꿈을 이룰 수가 없었다. 나는 바다를 향해 큰소리로 “아버지!” 하고 외쳤다.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지금 이 순간 함께 있었으면 얼마나 좋으랴.’ 나는 바다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한국에 와서 몇 년은 관광을 다니지 못했다. 좋은 곳에 가고 맛있는 것을 먹을 때면 가족들의 생각에 자꾸 눈물이 나고 혼자서 한국에 와 있다는 생각에 너무 죄스러웠다.

나는 대구에 내려와 일주일 쉬고 다음 날 고용지원센터에 찾아가 내가 공부할 수 있는 학원을 알아보았다. 담당자분이 내게 무궁화직업전문학교를 소개해 주셨다. 나는 그 다음 날부터 무궁화미용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나는 미용교수라는 꿈을 세우고 열심히 노력을 했다. 그러나 학원에서 수업시간에 설명하는 선생님의 말씀을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같은 한국말이라고는 하지만 수업시간 내용을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하루 이틀 학원에 다니면서 이것이 내가 할 일이 맞는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학원에서 주는 미용필기 시험에 관한 책은 또 얼마나 두껍고 큰지 그 하나만으로도 나의 기를 꺾는 듯 했다. 하지만 이미 나는 미용교수라는 꿈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학원에서 집으로 돌아오면 앉아서 새벽 3시까지 매일 무작정 미용필기시험 책을 보았다. 그렇게 45일 동안 미용필기시험 책 한 가지를 처음부터 끝까지 6번을 보았다. 보고 또 보고 계속 반복해서 보다보니 조금씩 미용에 대한 용어도 익히고 뜻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학원에 들어오는 남한 사람들은 일주일 만에, 그것도 선생님의 수업도 듣지 않고 필기시험에 응시하고 합격하는 것을 보면서 조금은 부러울 때도 있었다. 나는 속으로 ‘쟤네들은 어쩌면 저렇게 잘하지.’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나는 급하게 시험을 보고 탈락하는 것보다는 정확하게 공부를 해서 한 번에 합격을 해야 된다는 생각을 했다. 드디어 시험을 봐도 되겠다는 확신이 왔다. 나는 학원에 들어가 45일 만에 필기시험을 보았다. 시험 보기 전날 혹시 탈락이 되면 내가 실망을 할까 봐 걱정해주신 선생님께 괜히 화를 내기도 했었다.

필기시험 합격을 받고 누구보다도 기뻐해주시던 분은 나를 걱정해주시던 선생님 그리고 나를 담당한 신변보호담당관님, 여기에 다 적을 수는 없지만 나를 위해 기도해주시고 기뻐해주신 선생님들 그리고 친구들이 너무 고마웠다. 부모님께 알려드리고 싶은데 그럴 수 없는 상황에서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나를 걱정해주고 같이 기뻐해 주어서 너무 고마웠다.

필기시험 이후 20일 만에 다시 실기시험에 도전하였다. 이번에도 나를 가르쳐주시는 선생님은 나에게 “이○○ 씨 너무 급하게 시험원서를 신청한 것 아니에요?”라고 하신다. 나는 선생님께 “선생님, 이번에도 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씀드렸다. 선생님은 “그래요. 그러다 혹시 탈락되면 실망하게 돼요. 좀 더 시간을 갖고 시험을 보는 것이 나을 것 같은데…….”라고 하시면서 말끝을 흐리신다. 나는 선생님께 “선생님, 지금 신부화장법과 휭거 웨이브 수업을 한 번도 하지 못했는데 수업진도를 빨리 빼주시면 안 됩니까?”라고 물었다. 선생님은 흔쾌히 그렇게 해주신다고 하셨다. 나는 파마를 마는 연습을 하다가도 신부화장을 연습할 수 있는 사람만 있으면 선생님을 불러서 신부화장법을 가르쳐 달라고 부탁을 드렸다. 선생님은 언제든지 환하게 웃으시며 나의 부탁을 들어주셨다. 선생님은 내가 모르는 부분에 대해 개별적으로 다시 강의해 주면서 용어가 어려운 것은 두 번 세 번 반복해서 쉽게 해설해 주셨다.

오전 9시에 학원 문을 열고 저녁 10시에 학원 문을 닫을 때까지 한 번도 의자에 앉아 쉬지도 않았다. 심지어 점심시간에 다른 사람들이 점심을 먹을 때도 나는 밥도 안 먹고 열심히 연습하고 또 연습을 했다. 그리하여 실기시험 일주일을 남겨두고 실기시험에서 합격하는 사람들의 실력과 내 실력을 비교해 보았다. 나는 이번 시험에도 합격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졌다.

실기시험 보는 날, 시험이 끝나고 나는 내 얼굴에 그려진 신부화장을 지우지도 못하고 학원으로 왔다. 그날도 학원선생님은 나를 보시더니 추운 날 시험을 보고 오느라 고생했다고 하면서 나를 반겨준다. 일주일 뒤 공단 홈페이지에서 시험결과를 확인할 수 있다고 한다. 일주일이 지나 나는 컴퓨터 앞에 앉아 시험 보는 것보다 더 떨리는 마음으로 결과를 보았다. 내 예상이 맞았다. 내 이름 옆에 합격이라는 글씨가 보였다. 다음 날 학원에 도착하니 학원원장님부터 시작해서 나를 가르쳐주신 선생님 모든 학원선생님들의 나를 축하해 주셨다. 학원원장님은 저에게 “학원이 생겨서 두 달 만에 미용사 자격증을 취득하는 사람이 처음이라고.” 하시면서 학원에서 파티를 해 주셨다. 누구보다도 아낌없이 기술을 전수해주신 선생님과 원장님을 비롯한 동료수강생들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본다. 2005년에 대경대학에 입학을 하였다.

대경대학에 다니면서 나는 많은 기술과 이론 공부를 배워나갔다. 한국에 정착한 지 3년 만에 5개 자격증을 취득했다. 그리고 많은 미용대회에 입상하여 과학 기술부 장관 상과 통일부 장관상 등 여러 가지 금상과 대상을 받기도 했다. 대경대학을 졸업하고 나는 학점은행제과정을 공부하였다. 학점은행제를 마치고 대학원공부를 하려고 마음을 가졌는데 아이를 출산하면서 나의 대학 공부는 무기한 보류 상태로 내게서 멀어지고 있었다. 아이를 낳고 몇 년은 아이를 키우면서 집에만 있었다. 나의 꿈과 내 생활은 어디에도 없고 오직 아이를 위해서 살아가는 것 때문에 마음이 허전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아이의 웃음을 보면서 위로를 삼았다.

나는 다시 내 꿈을 향해 나가려고 요즘 대학원 준비를 해나가고 있다. 북한에서는 아무리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었고 아무리 애를 써도 이룰 수 없었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는 지금 내가 하고 싶은 일은 포기하지 않는 한 언제든지 성공할 수 있다. 꿈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다 보면 언젠가는 꼭 정상에 오를 수 있는 것이 민주주의 사회이다.

북한에서는 자유라는 희망을 품고 죽음을 각오하고 두만강을 넘었다. 중국에서는 경찰만 보아도 공포에 떨어야 했고 수많은 어려움과 두려움 속에서도 오직 자유라는 꿈과 희망을 포기하지 않고 살았다.

두려움을 극복한 사람에게는 실패는 있어도 좌절은 없다. 우리는 변해야 만이 남한 사회에서 이길 수 있고 살아남을 수 있다. 우리가 정복해야 할 것은 산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다. 삶의 목표가 있는 사람은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나의 성공의 열쇠는 내가 쥐고 있다. 나는 삶과 맞서 싸울 때 기적이 찾아온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다치고 상처 받는다고 해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성공한다. 나는 사람들에게 가슴속 꿈과 희망을 세상에 펼치라고 말해주고 싶다.

나는 대한민국에서 참다운 삶을 살고 싶었다. 수많은 어려움과 두려움에 부딪혀 희망을 잃기도 했고 시련을 겪기도 했다. 많은 시련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다시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은 꿈과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로버트 고디드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불가능이 무엇인가는 말하기 어렵다. 어제의 꿈은 오늘의 희망이며 내일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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