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유제의 교육입국칼럼
박유제의 교육입국칼럼
  • 박유제 본부장
  • 승인 2018.09.12 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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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사회

 예수님은 당시 가르치고 고치셨지만 가난하고 약한 자를 유난히도 돌보셨다. 아니 예수님 자신도 바다 건너 당시 세계 제국 로마시민으로 태어나지 않고 로마의 속주였던 유대 땅에서 그것도 마구간에서 태어났으니 출생부터 뼈 속 깊이 약자인 셈이다.

  흔히 이웃을 말할 때 누가복음에 나오는 강도 만난 자와 선한 사마리아인을 이야기한다. 물론 선한 사마리아인은 내가 될 수 없고, 나는 구원받아야할 강도 만난 자와 같다. 그러나 1차원적으로 보면 당시 잘난 사람들이 아니고 사마리아인이 예수님 말씀에 주인공이다. 신분이 아닌 행위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신분은 세계 최초의 제국 앗수르(앗시리아)가 식민지 이스라엘에 다른 식민지 사람들을 강제 이주시켜 인구혼혈정책을 시행하면서 생긴 지질이도 못난 불가촉천민이었다.

  한국판 사마리아인이 있음이 1970년대 세상에 알려졌다. 충북 음성에 사는 최귀동 씨다. 그는 직업도 없이 전전긍긍하다가 무극천 다리 밑에서 살고 있던 걸인들을 보고 자신의 역할을 발견했다. 얻어먹을 힘도 없이 병약한 걸인에게 동냥을 해서 밥을 얻어 먹였다. 죽는 날까지 그랬다. 1976년 최씨를 목격한 오웅진 신부가 시작한 것이 유명한 음성 꽃동네다.

   최씨의 정신이 교회의 역할이 된다면 교회의 문턱을 넘는 이웃과 지역사회 사람들로 북적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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