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타실의 원숭이를 마주하지 않는 법
조타실의 원숭이를 마주하지 않는 법
  • 고혜민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 승인 2018.07.15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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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TED에서 ‘할 일을 미루는 사람의 심리(Inside the mind of a master procrastinator)’ 라는 강연을 보게 되었습니다. 강연자인 ‘팀 어번(Tim Urban)’은 할 일을 미루는 것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마지막까지 미루는 습관을 버릴 수 없는 사람들을 향해서 재미있고 통찰력 있게 이야기를 풀어나갑니다. 강연에서 느끼게 된 바를 이 글을 통해서 공유하고 싶습니다.

강연자는 우리의 뇌 속에는 계획대로 일을 진행하게 하는 ‘합리적인 결정자(Rational Decision-Maker))’가 있고 옆에서 이 결정자를 방해하는 ‘순간적 만족감 원숭이(Instant Gratification Monkey)’ 한 마리가 있다고 이야기 합니다. 이 ‘결정자’는 말합니다. “지금 딱 하는 것이 좋겠어!” 그러나 원숭이는 말합니다. “Nope!” 결국 ‘결정자’는 자신의 옆에서 빙글빙글 돌아다니는 귀엽고 악랄한 원숭이에게 조타석을 빼앗기게 되고 당장 해야 하는 일을 뒷전으로 미룬 채 계속해서 인터넷 쇼핑사이트를 누른다거나 드라마를 몰아보거나 창문 밖 풍경을 멍 때리는 등의 여정을 함께하게 된다고 설명합니다.

저는 일을 미루는 사람들에게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째로는 항상 완벽을 추구한다는 점입니다. 이들은 자신이 계획한 것이 초기에 생각한 10에 완전히 미치지 못한다면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머저리라고 자책하며 머리를 쥐어뜯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실 생각해보면 계획한 10중에 1이나 2 혹은 3까지도 했다는 점을 기억해야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10을 해내야한다고 계획을 세운 후 10을 하는 동안 즐거움이나 행복감을 느낄 수 없습니다. 왜냐면 내가 원하는 10을 해내지 못했기 때문에 1이나 2를 하는 동안에도 전혀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죠.

둘째는 늘 계획을 높게 잡는다는 점입니다. 우리 뇌 속의 ‘결정자’는 항상 말합니다. 오늘은 이만큼을 해야 내가 정해놓은 기간 안에 이 모든 것을 끝낼 수 있다고. 예를 들면, 우리는 주말 아침 “나는 오늘 아침에 운동을 다녀와서 책을 1시간 읽고 친구랑 점심을 먹고 와서 늦은 저녁에는 방 정리를 해야지.”라고 멋지고 완벽한 계획을 세웁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원숭이가 그 계획 중간 중간에 나타나 함께 놀아 줄 것을 요청할 것이고, 결국 우리가 그 제안을 승낙할 것을 알지 못하죠. 우리가 머리로 세워놓은 계획 혹은 오늘 끝마쳐야 하는 양은 늘 우리의 능력을 벗어납니다. 이러한 결과로 우리는 밤에 잠자리에 들며 ‘아, 혹시나가 역시구나. 난 오늘도 참 잉여로운 삶을 보냈구나.’ 하며 스스로를 자책하기도 하죠.

스스로 일을 뒷전으로 미루는 잉여의 삶을 산다고 자책하거나 자신을 원숭이의 유혹에 넘어간 나약한 패배자로 비관하지 않기 위해서는 첫째로 우리는 자신을 사랑해야 합니다. 오늘 계획한 10을 하기로 했었는데 하루의 끝에 돌아보니 1밖에 안 했다면, 나는 아무런 일도 해내지 못한 무능력자인 걸까요? 아닙니다. 내가 계획한 방청소를 하지 못했고 그 대신 뜬금없는 영화를 봤다고 해도, 나는 어쨌든 1을 한 것입니다. 심지어 어떤 날은 분명 2나 3을 해낸 날도 있을거에요. 그럴 때는 잊지 말고 나 자신을 칭찬하고 격려해주세요.

다음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계획량을 극단적으로 낮추는 것입니다. 절대로 하루에 10을 하겠다고 하지 마세요. 1만 한다고 생각하세요. 심지어 0.5나 0.1도 괜찮습니다. 만약, 단어를 외우려고 했다면 하루에 100개를 외울 생각 하지 마세요. 10개도 많습니다. 1개 외우세요. 운동하려고 하셨나요? 헬스장 등록하지 마세요. 그 대신에 집에서 하루에 스쿼트 10번 한다고 계획하지마세요. 그냥 하루에 딱 1번 하면 됩니다. 아니 이런 게 계획인가? 생각될 정도로 극단적으로 목표량을 낮추세요. 그럼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뇌는 반복을 지겨워하지만 또한 변화를 싫어한다고 합니다. 출근길이나 통학을 위해 대중교통 이용하는 우리는 본인이 늘 앉아가던 자리나 서있던 자리를 선호한다는 사실이 바로 이것 때문이죠. 급격한 변화에 대해 우리의 뇌는 생존을 위협하는 것으로 여깁니다. 이는 우리에게 '불쾌감'이라는 감정을 발동시킴과 동시에 우리의 뇌에 원숭이를 불러와 그 변화를 차단하고 지연시키는 겁니다. 그래서 ‘합리적인 결정자’의 완벽한 계획은 작심삼일이 되는 것이죠. 목표량을 극단적으로 낮춘다면 변화량도 극단적으로 낮아지고 우리의 뇌는 그 정도 변화량은 생존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하여 '불쾌감'을 발동시키지 않습니다. 즉, 원숭이를 호출하여 변화로 인해 찾아 온 불쾌감을 벗어날 일이 없어지는 것이죠. 생각해보세요. 하루에 단어 1개가 일주일이면 7개 한 달이면 30개가 됩니다. 계획만 세워두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지난날들과는 하늘과 땅 차이 아닐까요?

글은 바쁘게 살아가는 여러분들에게 전해드리고 싶은 조그만 메시지이자 높은 계획량에 항상 허덕이는 제 자신에게 하는 다짐이자 충고이기도 합니다. 우리 모두 원숭에게 조타실을 빼앗기지 않는 ‘합리적인 결정자’의 모습으로 삶을 마주하면 좋겠습니다.

<고혜민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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