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사촌들이 넘치는 사회가 되려면
이웃사촌들이 넘치는 사회가 되려면
  • 편집국장
  • 승인 2018.09.29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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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이 사는 사회는 능력과 노력, 가문에 따라 격차가 있게 마련이다. 가난하고 약한 사람을 국가 조건 없이 구제해줘야 한다는 것은 정치의 영역이다. 부자나 강자가 선의로 이들에게 도와주고 봉사해야한다는 것은 도덕이자 사회의 영역이다.

어려운 처지에 있는 타인에 대한 나의 행동이 어떠해야한다는 것은 성경에서 예수가 한 유명한 말이 있다. 우선 예수는 역사상 실존 인물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예수의 전기 모두를 실존이라고 믿는 것은 기독교인 또는 예수쟁이다. 일부는 역사학자들도 실제라고 한다.

예수와 동시대의 유대 역사가인 요세푸스(Flavius Josephus, AD 37~c.100)의 『유대인 고대사』(The Antiquities of the Jews)에도 예수에 관한 언급이 있다. 그는 유대 멸망 후 로마에서 이 책을 저술하고 아래와 같이 기록했다.

“예수는 ‘현자(a wise man)’이고, 믿기 어려운 공적을 행한 일꾼이었고, 진리를 기꺼이 받아들일 줄 아는 사람들의 스승이었고, 수많은 헬라인들뿐만 아니라 수많은 유대인들의 관심을 끌었고, 그의 이름을 따라 ‘그리스도인들’이라고 불리게 된 족속들이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아직 사라지지 않고 있다.”

 비기독교인에게도 예수의 가름침은 공자나 소크라테스나 부처의 가르침처럼 유효하다.

 예수님은 당시 가르치고 고치셨지만 가난하고 약한 자를 유난히도 돌보셨다. 아니 예수님 자신도 바다 건너 당시 세계 제국 로마시민으로 태어나지 않고 로마의 속주였던 유대 땅에서 그것도 마구간에서 태어났으니 출생부터 뼈 속 깊이 약자인 셈이다.

흔히 이웃을 말할 때 누가복음에 나오는 강도 만난 자와 선한 사마리아인을 이야기한다. 물론 선한 사마리아인은 내가 될 수 없고, 나는 구원받아야할 강도 만난 자와 같다. 그러나 1차원적으로 보면 당시 잘난 사람들이 아니고 사마리아인이 예수님 말씀에 주인공이다. 신분이 아닌 행위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신분은 세계 최초의 제국 앗수르(앗시리아)가 식민지 이스라엘에 다른 식민지 사람들을 강제 이주시켜 인구혼혈정책을 시행하면서 생긴 지질이도 못난 불가촉천민이었다.

한국판 사마리아인이 있음이 1970년대 세상에 알려졌다. 충북 음성에 사는 최귀동 씨다. 그는 직업도 없이 전전긍긍하다가 무극천 다리 밑에서 살고 있던 걸인들을 보고 자신의 역할을 발견했다. 얻어먹을 힘도 없이 병약한 걸인에게 동냥을 해서 밥을 얻어 먹였다. 죽는 날까지 그랬다. 1976년 최씨를 목격한 오웅진 신부가 시작한 것이 유명한 음성 꽃동네다.

최씨의 정신은 진정한 이웃사랑이다. 이웃사촌이다. 이런 정신이 우리사회에 만연한다면 문턱이 없고 금줄이 없는 이웃과 사회로 아름다운 사회가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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