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도 감 김한숙 화가를 소재로 한 문학작품
청도 감 김한숙 화가를 소재로 한 문학작품
  • 대구경제
  • 승인 2018.12.09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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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숙의 감은 작가가 어린 시절부터 항상 보아오던 친숙한 존재이자, 부모님과 고향, 어린 시절의 추억으로 작가를 데려가는 추억의 매개물이다. 서양화를 전공하였으나 화면에 여유롭게 보이는 흰 배경은 동양화를 연상하게끔 하지만, 작가에게 배경의 흰색은 비어있는 공간이 아니라 아무런 조건도 없고 영원불멸한 부모님의 사랑이다. 이 흰색은 벅차오르듯 화면을 채운다. 김한숙의 작품은 배경의 흰색, 감의 붉은색, 잎의 초록색, 가지의 갈색 등 몇 가지 색의 요소를 가지고 우리의 정서를 고스란히 녹여낸다. 어느 동네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감나무와 감의 모습은 우리에게는 내 집 앞 골목의 모습처럼 기억 속에 남아있다. 가지에 몇 개 달린 그림 속 감은 악보 위 음표처럼 조용하면서도 경쾌한 음악을 울린다. 흰색과 붉은색, 붉은색과 초록색은 서로 보색을 이루며, 갈색과 노란빛은 그 사이를 부드럽게 이어준다. 가지 끝에 매달린 감을 보고 우리는 풍성한 가을과 이제 곧 다가올 겨울의 쓸쓸함을 동시에 느낀다. 그리고 그것은 그리움이다.

마르셀 프루스트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마들렌을 먹으며 길고 긴 추억으로의 여행을 떠난다. 마르셀이 베어 물은 마들렌은 더 이상 손 안의 작은 과자가 아니다. 마들렌의 존재는 점점 커져 과거로 가는 관문이 된다. 김한숙의 감도 작가에게는 어느새 그 존재가 점점 자라나서 작가의 과거와 현재를 잇는다. 마르셀 프루스트는 “지나가 버린 우리들의 과거를 되살리려는 노력은 헛수고다. 우리가 아무리 의식적으로 노력을 해도 되살릴 수 없기 때문이다. 과거는 우리의 의식이 닿지 않는 아주 먼 곳, 우리가 전혀 의심해 볼 수도 없는 물질적 대상 안에 숨어 있다. 그리고 우리가 죽기 전에 이 대상을 만날 수 있을지 없을지는 순전히 우연에 달려 있다”고 쓰고 있다. 기억은 사물에 깃들어 있는 것이다. 감은 김한숙에게 과거로 가는 기억의 관문이자 열쇠이고 부모님의 사랑인 흰 배경에 드리워진 쉼표다. 우리는 감을 먹지 않고도 나무에 매달려 있는 감의 존재에서 휴식과 사랑, 과거의 추억을 느낀다.

나무 끝에 외롭게 하나 매달린 감은 까치밥이다. 까치밥은 인간들이 인간 이외의 존재를 위해 남겨둔 나눔의 상징이자 배움의 상징이다. 수확의 모든 고됨을 뒤로 하고 새들을 위해 몇몇 감들을 남겨둔 것으로 가을은 더욱 풍요로워졌다. 외로운 듯 하나만 매달린 감은 그래서 외로운 것이 아닌 사랑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이다. “그림으로 시를 쓰고 싶다. 아련한 그리움의 시. 말로는 모두 표현할 수 없는 그 그리움을….” 작가가 적고 있듯이 김한숙의 그림은 작가가 쓰는 시이고, 우리에게 부치는 그리움의 편지다. 우리는 그 시 속에서 감의 달큰함을, 가을 햇살의 따사로움을 떠올린다. 그리고 그리운 과거로 돌아간다. 어린 시절의 사랑과 추억이 있는 곳, 나누고 베푸는 풍요로움이 있는 곳. 과거를 향한 우리의 그리움은 어느새 발갛게 익어가고 있다.

전혜정의 칼럼 <그림이 있는 삶> 중에서 발췌

 

김한숙의 그리운 감

하얀 캔버스를 순백으로 가득 채우고

그 위에 혼을 다하여 감을 창조하는 김한숙은

태초의 하얀 세계를 온전히 전하고 싶어서캔버스에는 자신의 서명도 하지 않는다

자신을 늘 겸손히 감추고

그리움의 세계를 하얀 여백이 아닌

순수로 가득 체워 넣은 그녀다그녀의 감들은 하얀 미래 속에서

옷을 갈아입고 단장을 한다.그녀의 캔버스는 감들로 가득 채우지 않는다.

그러나 감들은

시어들을 머금고 조용히

혹은 다소곳이 이야기를 주고 받는다.

늘 그리움이란 주제를 머금고 있는 감들은

화가의 그리움을 투영하고 있다.

무엇이 그리도 그립고 그리운지

캔버스 감들은

세상으로 나오고 싶어 한다.

- 시인 이 필립 -

 

홍시의 그리움

님의 품에서 감들은

한알 한알이 시어들을 머금고

무언가 말하려는 듯 하나

볼연지 처럼 수줍게 얼굴만 붉히고 있네

순백의 햐얀 세계는

영원으로 연결되는 길목이여서

어제의 그리움과

내일 다가올 그리움도 담고

하늘처럼 맑고 빛처럼 투명함이

형상을 입고 나온듯 하여

손을 내밀어 만져보고 싶고

그 빛갈에 입 마추고싶네

- 김한숙의 그림앞에서 시인 이필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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