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혔던 독립운동가 발굴한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 출간 화제
잊혔던 독립운동가 발굴한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 출간 화제
  • 김철모 기자
  • 승인 2019.01.14 2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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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앞두고 학구파 관료가 펴내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을 100주년을 앞두고 한 고위관료(대통령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회)가 잊혔던 독립운동가를 발굴, 단행본으로 출간해 주목받고 있다.

 

프랑스 파리 제1대학에서 역사학 박사를 받은 학구파 관료로 널리 알려진 정상천씨가 곧 출간할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가 그것이다(산지사 간). ‘유럽무대에서 독립을 알리다’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언론가, 문필가, 외교관 그리고 독립운동가 서영해의 무장투쟁이 아닌 독립운동을 상세히 소개하고 있다.

서영해선생은 파리를 중심으로 한 유럽에서 임시정부와 유일하게 연락하며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27년간 고군분투했던 큰 거목이었지만 최근에까지 우리에게는 잊혔던 이름이다. 그는 상해 임시정부의 공식적인 주불 특파위원으로 고려통신사 설립하고 한국인으로 최초로 불어소설을 집필해 한국의 전통문화를 소개하며 이승만과 김구와 모두 긴밀하게 협력했다.

서영해선생은 1902년 경상도 부산에서 태어나 17세의 나이로 3·1 독립운동에 참가하였고,

중국 상해로 건너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막내로 활동하다가 1920년 12월 프랑스로 단신 유학하였다. 임시정부 외무부 지시로 사무실을 얻어 고려통신사(Agence Korea)를 설립하였다.

통신사를 통해 일본의 한반도 침략상을 알리고 전 유럽에 알리고 한국에 대한 참모습을 알리는 데 주력하였다.

『어느 한국인의 삶의 주변』이라는 장편 소설과 『거울, 불행의 원인』이라는 이름의 한국 전래민담, 「구두장 수의 딸」과 같은 단편소설 등도 집필하여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유럽에 알리려고 노력하였다.

1932년 상해 홍구공원에서 윤봉길 의사의 폭탄투척 이후 상해에 살고 있던 도산 안창호가 일경에 체포되자 유럽에서 맹렬한 석방 교섭을 한 것은 서영해의 큰 외교적 성과였다.

프랑스 정부와 여론을 움직여 일본정부에 압박을 가하게 하고 국제여론을 조성하였다. 비록 안창호 선생이 석방되지는 못했지만 ‘서영해’라는 이름 석 자와 그가 운영하는 고려통신사의 존재감을 유감없이 드러냈다.

 

안타깝게 서영해는 오랜 기간 국내가 아닌 국외에서 활동했기 때문에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았고 국내 활동기록이 적다. 서영해는 개인적으로는 단란한 가족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한 불운한 사람이었다. 프랑스에는 교민들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동포사회로부터 재정적 후원도 기대할 수 없었고, 상해의 임시정부로부터 독립운동 자금을 받았다는 기록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혼자서 독자적으로 생계를 꾸려나가면서 고군분투하였다.

저자인 정상천 작가는 “서영해의 활동범위는 파리에 한정되지 않고 벨기에, 제네바, 스페인 등 유럽전역과 때로는 중동의 이집트, 아프리카의 에티오피아까지 광범위하였다. 따라서 엄밀히 말해서 ‘파리의 독립운동가’라기보다는 ‘유럽의 독립운동가’라고 불러야 옳을 것이다”라고 들어가는 말에서 언급했다.

작가 정상천씨는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불어교육과를 졸업, 프랑스 파리 제1대학(팡테옹­소르본느)에서 역사학 석사(DEA) 및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9년부터 상공부와 통상산업부에 근무했고 1998년부터 외교통상부에 15년간 외교관으로 근무하면서 한국과 프랑스 관계 연구에 매진했다. 이후 다시 산업통상자원부를 거쳐 현재 대통령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회에 재직 중이다.

대표 저서로 『아시아적 관점에서 바라본 한불통상관계』(파리 출간), 『불교 신자가 쓴 어느 프랑스 신부의 삶』, 『나폴레옹도 모르는 한-프랑스 이야기』, 『한국과 프랑스, 130년간의 교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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