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수의약품과 보건안보
필수의약품과 보건안보
  • 대구경제
  • 승인 2019.04.06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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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주 고려대 보건정책관리학부 교수

해마다 독감이 유행이다. 겨울독감은 언제나 있어왔지만, 신종플루니 조류독감이니, 아직 그 충격의 기억이 생생한 MERS의 기억들 때문에 이전보다 독감에 대한 공포가 크다. 또 미세먼지는 어떤가. 최근의 자료를 보면 미세먼지는 우리나라에서 지속적으로 감소해왔고, 2012년경부터 더 이상 감소되지 않고 정체하고 있는 것이 문제라고 하지만, 공포는 오히려 더 커지고 있다. 미세먼지를 중국탓으로 돌리고, 중국과의 해결에 적극적이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정권에 대한 불만마저 커지고 있는 것을 보면 환경과 건강의 문제는 이제 더 이상 개인적 안전의 문제가 아닌 체제적 안보 문제화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전통적 의미에서 보건안보는 그 연원을 14세기의 흑사병에서 찾을 만큼 오래된 이야기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무병장수가 오복의 하나였듯 건강은 주로 개인 수준의 ‘운’에 의한 것으로 생각되어 왔지만, 감염병은 달랐다. 국경을 넘나드는 감염병은 주변국들에게 공포를 주었고, 공중보건위원회(public health board), 격리(quarantine) 등이 발명되었으며, 외교의 대상이 되었다. 소위 ‘스페인독감’(1918-1919년)이 2,500만~5000만 명의 사상자를 낸 후, 감염병과 국제정치가 안보라는 영역에서 다시 만난 것은 20세기말 HIV/AIDS의 범유행(pandemic) 때문이었다.

일부 사하라이남지역 아프리카 국가들의 평균수명이 30세 대로 감소, 그 나라의 경제활동인구가 거의 사라지는 극단적인 상황에 맞닥뜨려 2000년 UN 안전보장이사회는 이것이 안정성과 안보에 위협이 될 수 있음을 선언했다.(UN Security Council Resolution 1308) 세계화의 시대, 감염병은 이전보다 쉽게 국경을 넘었고, 관련된 문제는 특히 독점적 권리인 특허로 보호되는 의약품들의 너무 높은 가격, 그 때문에 있는 약을 사먹을 수 없는 저개발국의 문제와 그로 인해 더욱 더 퍼져가는 감염병의 문제까지를 포함하게 되었다. 국가간 공조는 2005년 WHO의 International Health Regulation(IHR)의 개정을 통해 새로운 전기를 맞았으며,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Global Health Security Agenda(GHSA)를 중심으로 회원국의 IHR 이행을 모니터링, 지도하여 감염병 관리를 위한 각 국가의 역량을 강화하고 있다. 또한 필수의약품의 수급을 위한 UNITAID가 2006년 출범하여 저개발국 환자들의 의약품에 대한 접근권을 보장하려 노력하고 있다.

최근 고어사의 인공혈관 시장철수에 관한 논란은 한국사회도 의약품과 치료재료 등에 대한 접근이 충분히 보장되고 있지 않을 수 있다는 불안감을 우리에게 준다. 글리벡과 푸제온의 높은 약가와 그로 인한 논란은 이에 대한 관심을 한국사회에 환기하였다. 지난 2016년부터 2018년까지 식약처에서 생산, 수입, 공급이 중단된 것으로 보도된 의약품은 총 253개로, 그 중 24개는 대체약물이 없는 것으로 알려 져있어 치료를 위해 의약품을 필요로 하는 잠재적 환자들에게 위협이 될 수 있다. 또한 재난 시 사용하는 의약품, 법정감염병에 사용하는 백신과 의약품 등 공공적 필요가 높은 의약품에 대한 관리가 각각의 부처로 나눠져 있어, 이를 총괄하는 컨트롤타워에 대한 필요성도 해마다 제기되고 있다.

국경을 지키는 안보가 전통적 안보라면, 매일의 위협에 대응하는 안보를 신흥안보 혹은 신안보라고 일컫는다. 치료재료와 의약품에 대한 제한 없는 접근은 신안보의 핵심 중 하나인 보건안보의 중요한 내용이다. 국민의 건강을 지키는 것을 안보의 관점에서 고려하고, 의약품 수급을 국가적 차원에서 관리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논의할 시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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