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종손을 고합니다…" 조선의 청백리 보백당20世 종손 즉위식
"새 종손을 고합니다…" 조선의 청백리 보백당20世 종손 즉위식
  • 강원탁 기자
  • 승인 2019.04.08 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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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길안 묵계리 보백당 종택에서 새 종손 알리는 길사(吉祀) 열려

 옛부터 내려온 사대부 문중의 '길사(吉祀)'가 7일 안동에서 열렸다. 길사는 문중에서 여는 종손의 즉위식이라 할수 있다.

 이날 오전 경북 안동 보백당(寶白堂) 김계행(金係行,1431∼1517) 선생의 후손들이 안동김씨 묵계종택에서 모여 경사스러운 제사인 길사를 열었다. 200여 명의 보백당 후손들은 전통 도포 차림으로 모여 새 종손을 조상에게 알리고 문중의 번영과 새로 탄생한 종손을 축하했다.

 길사는 500년 이어온 한국의 전통문화 중 하나다. 고려말 이래 유교 국가인 이 나라는 왕가와 사대부의 문중이 두 기둥이다. 왕가에 왕의 큰 권위가 있듯이 사대부 문중에는 종손의 작은 권위가 존재한다.

안동김씨 묵계 종택 사랑채 앞 마당에 후손들이 부복하고 있다  

이날 길사의 주인공은 보백당 김계행 선생의 20세(世) 종손인 김정기(65)씨. 19대 종손인 선친 김주현 공이 별세하고 한 돌기(朞)의 기년상(朞年喪)인 소상(小祥)을 마치고 새 종손이 된 것이다. 김주현씨는 경상북도 교육감 시절 '도의(道義)교육'을 강조한 것으로 유명하다.

앞서 5일 후손들은 조상의 제사를 지낼 새 종손의 이름을 신주에 쓰는 신주 개제(神主 改題)를 진행했다. 이날 길사는 종손이 사당에서 신주를 모셔내는 출주례(出主禮)를 시작으로 참신례(參神禮), 강신례(降神禮), 초헌(初獻)·아헌(亞獻)·종헌(終獻) 순으로 진행됐다. 두 번째 잔을 올리는 아헌례는 예복을 입고 화관을 쓴 종부 장무송(64)씨가 잔을 올리고 큰절로 예를 올렸다.

김정기 종손은 관세(제례에 앞서 대야에 깨끗한 물을 받아 손을 씻는 의식)를 한 뒤 보백당 선생 등 선조의 위패를 사당에서 사랑채로 모셨다. 이어 제례의 초헌관으로 나서 불천위(不遷位), 조매위(祧埋位·5대조), 조위(考祖位·고조할아버지), 증조위(曾祖位·증조할아버지), 조위(祖位·할아버지), 고위(考位·아버지)의 순으로 술잔을 올리며 절을 했다. 유가의 기제사(忌祭祀)는 4대 봉사(奉祀)다. 김 종손의 부친이 별세해 5대조의 혼백을 무덤 앞에 묻었다.

김정기 보백당 종손은 "앞으로 문중의 막대한 임무를 맡게 돼 어깨가 무겁다"면서 "옛것과 현재의 문화가 융화할 수 있는 법고창신(法古創新)의 문중으로 발전시켜나가겠다"고 말했다. 보백당 17세손 김준한(67·전 포스코경영연구원장)씨는 "길사는 평생 청렴과 강직을 실천하려고 노력했던 보백당의 유훈을 이어받아 최대한 검소하게 마련했다"고 말했다.

"오가무보물 보물유청백(吾家無寶物 寶物惟淸白·내 집엔 보물이 없고, 보물이란 오직 청백뿐"이라는 반(反)황금주의적인 가훈을 남긴 보백당 김계행 선생은 조선 청백리(淸白吏)의 표상으로 유명하다. 당시 이 정도의 계율을 내세운 그의 정신이 놀랍다. 고종 때 나라가 망하는 것도 알지 못하고 매관매직을 일삼은 황금만능 작태가 현재에도 사라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김계행 선생은 조선 전기 성종대에 홍문관 부제학 대사간 대사헌 대사성 등 삼사(三司)의 청직(淸職)을 두루 거치면서 점필재 김종직 선생과 함께 사람파를 이끌었다. 1498년 대사간(大司諫)으로 수양대군의 왕위찬탈 세력을 그 뿌리로 하는 연산군 훈구대신의 폭정을 준엄하게 비판한 후 벼슬에서 물러나 고향 안동으로 낙향했다. 무오·갑자 사화 때 옥고를 치르고 다시는 조정으로 복귀하지 않고 1501년 산 좋고 물 좋은 이곳 묵계에 터를 잡았다. 후에 청백리에 추앙되고, 왕명으로 사대부의 영광의 상징인 불천지위(不遷之位)와 정헌(定獻)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김계행류의 왕도정치의 이상은 뒷날 조광조가 계승하고 청야(淸野)정신으로  우리 역사에 면면히 이어졌다. (관련기사 경북일보 신도청시대, 낙동강을 가다- (8)청송·안동 길안천 2015년05월8일자 참조)

최고의 전통 예복인 도포와 갓을 쓴 문중의 족친들이 신주를 모시는 출주례를 거행하기 위해 이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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