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의 유토피아, 生命之村을 찾아 - 5. 일월산 陽地 영양
땅의 유토피아, 生命之村을 찾아 - 5. 일월산 陽地 영양
  • 금보리 논설기자
  • 승인 2019.05.20 2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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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의정의 후예로 갑오동학농민운동 접주였던 학초 박학래가 살던 곳
애국지사 김도현과 남자현... 오일도, 조지훈, 이문열의 주옥같은 글 탄생된 배경
아시아 최초로 ‘영양국제밤하늘보호공원’ 지정. 영양 별 보기 위해 대만에서도 찾아

현대인들은 행복을 추구한다. 그러나 좀처럼 행복을 찾기 힘들다. 행여나 힘들여 찾았다 하더라도 잠시 잠깐이고 오랫동안 유지하기 힘들다. 달나라 계수나무 아래 토끼 방아처럼 있는 듯 없는 듯 신기루 같은 게 행복이 아닐까. 행복은 커녕 도시생활에서 스트레스를 받는 직장인들로 병원을 찾는 이가 늘어나고 있다. 한 조사에 의하면 현대인은 10명 중 7명이 스트레스 증상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스트레스 없이 행복한 삶을 추구할 수 있는 좋은 땅이 바로 승지(勝地)이다. 경상북도 영양 땅은 누구나 살고 싶은 마음이 발심(發心)하기에 손색이 없다.

영양풍경. 한국화가 금동효

 

1960년대부터 1980년대에 걸쳐 우리나라 농촌 인구가 도시로 대대적으로 이주했다. 조상 대대로 살던 농촌을 떠나 너도나도 도회지로 대이동했다. 자경지가 없어 소작으로 먹고살기에 너무 팍팍해서 이농한 이도 있었고, 돈벌이와 자녀교육을 위해 도시로 희망을 찾아 떠난 이도 있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2000년대에 도시에서 농촌으로의 역이동이 일어나고 있다. 도시로 이주했던 산업화의 역군들 중 일부가 고향을 그리워하며 시작했다. 농업도 잘하면 괜찮은 수입을 올릴 수 있는 시절이 왔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귀농(촌)을 선택하기는 그리 만만하지 않다. 소득을 창출할 수 있는 논 밭(전답)이라도 한 뙈기 마련하고, 살림집을 지을 집터라도 한 필지 구해야 한다. 이럴 때 주저 없이 선택할 수 있는 곳이 영양이다. 새로운 귀농 귀촌지를 찾는 이들에겐 최적지라는 게 영양군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영양에는 좋은 마을이 여러 군데 있다. 낙동강 상류 동쪽방면에서 가장 큰 지류인 반변천은 일월산에서 발원해 영양 골짜기를 굽이굽이 흐른다. 일월산과 반변천이 있는 곳곳에 좋은 마을이 어찌 없을 수 있으랴. 영양하면 일월산이고, 일월산하면 영양이다. 일월산(1219m)에 대해 김정호(金正浩)는 대동여지도(大東與地圖·1861)에서 영동, 영서, 영남 세 곳의 정기를 모은 곳이라고 일찌감치 얘기했다. 반변천의 또 다른 이름이 신한천(神漢川)이어서인지 반변천이 신기(神氣)가 큰 산천이라고나 할까. 일월산은 실제로 무속인들이 기를 받으러 모여드는 산이고, 최시형 동학교주가 『동경대전』, 『용담유사』를 저술하기도 한 곳이니 빈말은 아니다.

봉감마을에는 통일신라 초기의 석재를 사용한 ‘봉감모전 5층석탑’(국보 제187호)이 우뚝 서 있다. 모전석탑 높이가 11.3m로 우람하며 주위 풍광과 어울려 장관이다. 봉감마을에는 오백년쯤 전에 송만공 이정희가 세운 옥동서원(후에 봉람서원 개칭)이 있었으나 철거되었다고 한다. 논둑에 주춧돌과 기왓장이 몇 개 보인다. 20m 절벽 위에 남경대가 있다. 영등산의 굴 아래 절도 있었다고 한다.

뒤로는 아늑한 산이 있고 앞으로는 깨끗한 물이 사시사철 흐르는 풍광이 수려한 마을이 영양군 입암면 산해2리 봉감마을이다. 야트막한 야산이 병풍처럼 둘러쳐진 풍광 좋은 이곳을 자신의 바깥 정원, 즉 외원(外苑)으로 삼은 국량이 큰 선비가 있다. 조선의 명유 우복 정경세의 제자인 석문 정영방(鄭榮邦, 1577∼1650) 진사다. 그가 오늘날 우리들을 바라본다면 자연과 인문은 잊은 채, 물질에 대한 끝없는 욕망에 찌든 세태를 힐난하지는 않을까 싶다.

산해(山海)리라는 마을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산과 함께 바다 같은 시내가 있다. 반변천이 허리띠처럼 빙 둘러쳐져 있어 호수와 같은 큰 내를 이룬다. 산 속의 바다를 연상케 한다. 마을 사람들이 반변천에서 메기와 잉어, 붕어, 누치, 쏘가리 등을 잡아 매운탕을 끊여 먹기도 하는 여유로운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반변천 서쪽에는 수줍은 새색시처럼 숨어있는 입암면 연당리가 있다. 예천에 살았던 동래정씨가 서석지 터인 연당리 일대 지세에 반해 터를 잡아 옮겨왔다. 지금도 후손들이 세거지로 이어져오고 있다. 서석지는 일본의 임천(林泉)정원보다 앞서 1613년에 만든 조선식 정원으로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영양 풍경한국화가 금동효
영양 풍경. 한국화가 금동효

 

반변천 동쪽 산기슭에 감천리라는 마을엔 갑오동학농민운동(동학난) 접주였던 학초 박학래(1864~1942) 선생이 노년을 보냈던 고택(학초정)이 서향으로 고즈넉하게 자리잡고 있다. 광해군 북인정권 시절 소북파 영의정 박승종이 인조 반정으로 자결한 이후 그 후손이 백두대간을 넘어 예천에 들어와 세거했다고 전해온다. 몰락한 양반이었으나 어려서부터 총명했던 학초는 조선의 마지막 과거시험인 1894년 사마시에 합격하기도 한 문장가였다. 그러나 탐관오리가 득세하는 민씨정권하에서 학초는 백성들의 고통을 외면할 수가 없었다. 예천지역 동학운동의 지도자로 활동한 이유다. 그러나 일제의 동학군 토벌이 강화되자 예천을 떠나 경주, 청송, 영천 등지로 옮겨 다니며 살다가 마지막으로 산골 영양에 안착하여 여생을 보냈다.

그가 남긴 유고 중 '학초전'은 한글로 저술되었는데, 왜군이나 관군이 아닌 동학도측에서 운동을 기록한 저술로는 처음으로 발견된 동학사에 귀중한 문헌이다. 학초전을 보면 청송의 의병장 홍성 등이 의병 참여를 권유할 정도로 당대의 시대 모순을 꿰뚫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행동하는 지식인이었다. 폭력으로 귀결된 고부 만석보와 달리 경주군수가 수세를 거두려하자 장두(狀頭)로 추대돼 탐관오리의 학정에 저항하면서도 피를 흘리지 않고 해결하려는 등 변혁의 시대를 만나 온건 개혁가로 활동했다. 

연당리 서석지 앞내를 거슬러 2km가량 올라가면 나오는 청기면 상청리가 있다. 그곳에서 태어난 김도현은 안동, 영덕, 영해 일대 의병장이었다. 대한제국이 망하자 1914년, 영해, 대진 앞바다를 걸어 들어가 순국한 신화적 인물이다. 영양읍에서 918국도를 따라 동쪽으로 가면 나오는 길이 김도현 도해로(道海路)다. 김도현과 남자현의 귀로(歸路) 전야는 『플루타크 영웅전』에 수록되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극적이다. 

영양군 입암면 방전리(안마을과 갯마을)도 사람 살기 좋은 마을로 손꼽힌다. 현재 65호가 살고 있는데 높은 가계 소득을 올리고 있다. 수박 15억원, 사과 20억원, 채소 10억, 기타 벼, 고추 등 10억원을 생산하고 있다. 호당 생산량이 평균 1억원 정도이다. 이 마을 농부의 소득은 웬만한 도시 근로자 연봉보다 낫다. 도시 근로자 대부분이 50대에 퇴직해야 경우가 많지만, 이곳 주민들은 천혜의 환경에서 계속 일하며 살아가니 정말 일석이조이다. 방전리 마을은 KBS 대구방송국 ‘6시 내고향’ 등 방송에 수차례 소개되었다. 장승창(73세)씨도 안동에서 개인사업을 하다 접고 수비면에서 2년 농사를 짓다가, 6년전에 이 마을에 입향하여 수박을 재배하고 있다. 이 마을에서는 농부들이 장학금을 낸다. 김기열 방전리장과 사과농군 김재일씨는 마을 뒷산 이름을 딴 ‘왕재산 장학회’가 있다고 알려주었다. 이 마을 출신 고등학교들에게는 20만원을, 대학생들에게는 40만원의 입학금을 준다고 한다.

입암면 방전리에서 반변천은 석보면에서 흘러드는 화매천과 만난다. 방전리 안마을 앞에서 화매천을 따라 동쪽으로 2km정도 가면 석보면사무소 북쪽 언덕에 두들 마을이 자리 잡고 있다. 17세기에 현대문학의 거봉 이문열의 조상인 석계 이시명이 터를 이곳에 잡았다. 지금도 재령이씨들이 옹기종기 모여 산다. 두들마을은 1616년 참봉(종9품) 이시명과 결혼한 장계향(1598~1680)의 시집이다. 사후에 아들(이현일)이 정2품에 오르면서 정부인(貞夫人)에 추증되었다. 그녀는 요리법을 순한글로 기록한 『음식디미방』을 남겼다.

반변천을 젖줄로 한 영양은 환경이 최우선 가치로 여겨지는 미래에 각광받는 땅이 될 수 있다. 영양은 예로부터 몸에 좋은 산나물의 고장이다. 그 명성에 걸맞게 5월 중순 영양시장 일원에서 산나물축제가 열린다. 한양, 평양, 밀양, 함양, 산양처럼 햇볕이 잘 드는 고을이나 마을 이름에는 ‘양(陽)’을 붙였는데, 영양도 해가 잘 드는 고을이다. ‘양’의 고을치고 농산물이 좋지 않은 곳이 없다고 한다.

요즈음 건강과 힐링을 위해 걷기가 대세이다. 영양과 주변 청송, 봉화, 영월 4개 군을 잇는 ‘외씨버선길’이 170km 길이로 조성돼 있어 힐링 코스로도 제격이다. 

영양의 밤은 하늘에서 별이 쏟아진다. 수비면 수하리 반딧불이생태체험마을특구 지역과 동해로 흘러가는 청정수 왕피천의 상류를 포함해 201510월 아시아 최초로 영양국제밤하늘보호공원으로 지정됐다. 하늘을 봐야 별을 딴다고 하지만 영양에 와야 별을 본다. 지난해  대만 난터우현 관광처를 비롯해 이역만리 영양을 찾아 오는 발길이 끊어지 않는 이유다오일도, 조지훈, 이문열 같은 주옥같은 글을 남긴 문사들의 고향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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