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는 오늘도 뜨거운 사막 위를 신기루처럼 걷고 있어
고래는 오늘도 뜨거운 사막 위를 신기루처럼 걷고 있어
  • 김수영 기자
  • 승인 2019.12.29 10: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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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해 시인, 세 번째 시집 『고래에게는 터미널이 없다』 출간

권영해 시인이 세 번째 시집 『고래에게는 터미널이 없다』(시와 표현)를 발간했다. 두 번째 시집을 상재(上梓)한 지 6년 만이다. 권영해 시인은 김춘수 시인의 추천으로 등단하여 <수요시 포럼> 동인으로 활동하며 16권의 공동 시집 출간에 참여한 바 있다.

시인 권영해

 

이번 시집에 대해 문학평론가인 한국해양대 구모룡 교수는 ‘환상을 좇는 사람들의 욕망이 고래를 만든다. 표제시 「고래에게는 터미널이 없다」에서 시인은 모래 위의 신기루와 같은 고래의 존재를 상정하고 바다를 사막과 병치함으로써 사람들이 품은 욕망의 허망함을 두드러지게 전경화한다.’고 전제하고 ‘바다의 까치놀 속을 낙타가 순례하듯/ 오늘도 고래는/ 해무 드리운 사막 위를 신기루처럼 걷고 있다’는 마지막 연을 배치하여‘사람의 길과 고래의 길과 낙타의 길, 고행과도 같은 그들의 길을 인간중심의 시선에 가둘 수 없는 법이다. 고래가 관광의 대상이 되는 현상을 그가 머물 정거장이 없다는 말로써 비판한다. 이같이 시인은 인간을 중심에 두고 사물을 소유하는 방식을 멀리한다.’고 해설하고 있다.

권영해 시인은 「자서」에서‘요즘 들어 저작(著作)이 저작(咀嚼)으로 읽힌다. 홍자성의 채근담(菜根譚)을 떠올리면 어눌한 생각을 서책으로 엮어내는 작업이 가공되지 않은 풀뿌리를 곱씹어 보는 행위와 유사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생각을 연 후 ‘고승의 오묘한 법문이나/ 명망 있는 철학자의 잠언을 흉내내지는 못하지만/ 사람살이의 단편조각들을 가슴속에서 여과하여 기록하니/ 독자들은 내 마음을 질겅질겅 씹어보고/ 고유의 풍경을 음미해 주기 바란다’고 당부함으로써 시인으로서 자기 성찰의 자세와 독자에 대한 바람을 드러내고 있다.

세상의 꿈들은/ 얼마나 부질없는가// 짐 진 자들아/ 이고 지고 안고 있는 걱정을/ 죄다 벗어 버려라/ 오체투지도 버리고/ 삼보일배도 던져 버려라// 세상을 구르게 하는 힘은/ 미는 것이 아니라/ 염려를 놓아 주는 일// 굴리고 굴릴수록/ 바퀴가 구르는 것이 아니라/ 쇠똥 경단만 덕지덕지 커질 뿐// 내가 아니면/ 무언가 굴러가지 않을 거라는/ 그 착각마저 붙들어 매시라 (「쇠똥구리」 전문)

이 시에서는 쇠똥구리의 생태를 성과주의 현실에 비겨 꼬집으면서 안고지고 가는 욕망을 추구하기보다 놓아주는 일에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세상의 이치와 다른 방향을 지향하는 시인의 입장이 돌올(突兀)하게 드러난다. 이는 바로 마음의 문제를 건드리고 있다는 뜻이다. ‘세상의 꿈들’은 자본과 권력에 의해 형성되며, 참된 삶의 가능성을 차단한다. 현대인의 욕망추구는‘소똥 경단만 덕지덕지 키’울 뿐 진정한 가치는 흐려지기 때문이다.

 

구모룡 교수는 다시 덧붙인다. 시인에게 말과 사물은 시적 표현을 이끄는 두 축이다. 사물은 시인의 사색을 매개한다. 권영해 시인은 많은 시편을 통하여 사물의 꿈을 표출한다. 목련이 지는 순간을 “찬탈의 기억”, “절명시 한 줄”(「목련 지다」에서)에 빗대어 간결하게 표현하거나 연어의 회유를 뒤집어 인식하는(「반복은 미덕이 아니다」에서) 기지를 발휘한다. 「반복은 미덕이 아니다」의 마지막 연은 “거스름을 거스를 줄 아는 과감함이/ 단순 반복의 의무를 이겨낼 수 있다/ 돌아가지 않는 것은 굴욕이 아니다/ 발상의 전환이다/ 관행적 궤도 밖으로/ 타성에 젖은 꼬리지느러미를 벗어 던질 때/ 육신의 번식보다 무량한/ 정신의 부화가 시작된다”라고 진술한다. 연어의 모천회귀를 예찬하는 상투적 어법을 과감하게 해체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7년의 기다림 끝에 울려 퍼지는 매미 울음의 의미심장함에 대응하여 “때로는/ 인생에도/ 적절한 뒤죽박/죽이 필요하다”(「폭염 경보」에서)는 충고를 덧붙이면서 “뒤죽박/죽”으로 행갈이를 하는 등 파격을 구사한다.

이와 함께 많은 작품에서 자신의 내부를 향한 부단한 절차탁마의 정신과 세상에 대한 풍자를 드러내고 있어 현대인들이 천천히 곱씹어 볼 만한 시세계를 선봬고 있다.

권영해 시인은 경북 예천 출신으로 경북대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현대시문학'을 통해 문단에 나와 울산 시인협회·문인협회 부회장을 역임하였다. 시집으로는 『유월에 대파꽃을 따다』, 『봄은 경력사원』이 있으며 현재 현대청운고등학교 국어교사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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