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사병(黑死病)의 역설
흑사병(黑死病)의 역설
  • 함동식(강원도 강릉시민)
  • 승인 2020.03.02 23:3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요즘 우리나라의 코로나 쇼크를 보면서 문득 생각나는 노래가 한곡 있다. 예전 학창시절에 많이 들었던 팝송 징기스칸이다. 음악을 좋아하지 않는 분들도 멜로디를 흥얼거릴 정도로 70년대 말 크게 유행하였으니 지금도 아마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이곡은 1979년 독일에서 결성된 동명(同名)의 6인조 밴드 징기스칸(Dschinghis Khan)의 데뷔곡이자 출세작이기도 하다. 징기스칸은 70년대 중반이후 미국의 와일드 체리(Wild Cherry), 도나 서머(Donna Summer)와 독일의 보니 엠(Booney M)등과 더불어 디스코 록의 전성기를 이끌던 대표적인 그룹이었다.

그런데 징기스칸은 좀 특이한 데가 있었다. 대부분의 비영어권 뮤지션들이 영어로 된 가사말을 쓰고 불렀으며 앨범 또한 영어로 된 앨범을 발표하였는데 징기스칸은 독일어를 고집하였다. 비 영어권 뮤지션 중 가장 성공한 경우는 스웨덴 출신 혼성밴드 아바(ABBA)이다. 아바는 내가 기억하는 한 3억5천만장이 넘는 앨범을 발매하였다. 아마도 통계에 누락된 앨범수나 불법 복제된 LP판(일명 빽판)과 테입등을 더한다면 그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가 아닐까 한다. 만약 아바가 스웨덴어를 고집하고 같은 독일 그룹인 보니 엠이나 헬로윈(Helloween)이 독일어를 고집하였다면 상업적으로 성공하였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그래서 그런지 징기스칸은 이들처럼 기록적인 앨범판매의 성과는 올리지 못하였다. 한때는 징기스칸 음악의 기저에 독일 극우사상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 적도 있었다.

이들이 찬양한 징기스칸의 원 제국은 유럽의 폴란드 헝가리 그리고 게르만 거주지 까지 정복하였으니 독일인의 입장에서 보면 징기스칸은 침략자에 불과하다. 더구나 징기스칸의 가사말을 보면 경악스럽기까지 하다. “마음에 드는 여자는 모조리 텐트로 끌고와서 하룻밤에 일곱명의 아이를 잉태시켰다.”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 일곱명의 여자를 강간하였다는 뜻이니 전쟁범죄를 미화하는 가사말이 아닐 수 없다.

통제된 대중 문화속에서 성장한 우리들의 상식으로는 좀 이해하기 어렵지만 서양의 팝 음악은 검열의 칼날에서 자유로웠으므로 표현의 자유를 맘껏 향유 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들의 음악은 때론 저속하고 직설적이며 노골적이기 까지 하다.

영국의 펑크록 밴드 조이 디비전(Joy Division)은 앨범 두장 만을 남기고 사라진 그룹이었지만 펑크록 역사에서는 제법 알려진 그룹이다. 그들의 밴드 이름 조이 디비전은 나치 독일이 유대인 여자들을 강제 수용하여 독일군의 성적욕구를 해소하였던 위안소의 명칭이다. 물론 조이 디비전은 파시스트와는 아무상관 없었지만 버젓이 이런 혐오스런 명칭을 사용하였다. 이런 사상이나 표현의 자유는 문화의 번영을 가져왔고 우리들 또한 그들의 문화를 함께 즐겼으니 더 나무랄 일은 아닌 것 같다.

문명의 개념조차 없었던 유목민족이 중국문명 이슬람문명 서양기독교문명을 깡그리 짓밟았으니 징기스칸의 위대함을 더 말해 무엇할까.

그룹 징기스칸이 그토록 찬양했던 정복자 징기스칸의 몽골제국은 당시 유럽인구의 3분의 1을 몰살 시키는 전공(?)을 올린다. 그들의 칼날에 희생된 사람이야 얼마일까 마는 그들의 말발굽에 뭍어 유럽 각지로 퍼져나간 페스트균은 14세기 유럽을 공포로 몰아넣기 충분했다. 이른바 흑사병의 시대가 도래 한 것이다. 흑사병의 시원(始原)은 중앙아시아에서 시작되었다는 설과 중국남부 인도차이나 반도에서 비롯되었다는 설 등이 있지만 아시아에서 발생하여 몽골의 정복전쟁 과정에서 유럽에 전파된 것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원인을 알 수도 없었고 치료법도 몰랐던 흑사병의 유행은 전 유럽을 휩쓸고 지나갔다. 사람들은 죽음의 공포와 싸워야 했고 서로 반목하고 질시하며 의심했다. 카톨릭 교회는 밀려드는 군중들을 감당하기 어려웠고 주술사들은 때 아닌 호황을 맞이하기도 하였다. 유대인들이 병원균을 퍼트렸다는 소문이 돌면서 유럽 각지에서 유대인을 학살하는 살육이 자행되었다. 질병의 공포와 서로를 의심해야하는 대 재앙의 시대를 맞이한 것이다. 사람들은 신의 저주라고 수근 거렸다. 시간은 흘러 신의 저주는 차차 사그러 들었다.

새로운 역사의 출현은 항상 피를 머금는다. 페스트의 창궐은 인구의 급감을 불러왔고 그로 말미암아 경작지는 축소되고 농노(農奴)의 지위는 향상되었으며 농업중심의 경제 질서는 붕괴되어 갔다. 구 질서의 붕괴는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예고한다. 수 세기 동안 이어진 엄청난 피의 댓가는 필연적으로 새로운 자본주의 사회의 등장을 초래하였다. 역사의 진보는 이런 참혹한 질병의 굴레를 딛고 성큼성큼 나아갔다.

지금 대한민국은 코로나 쇼크에 빠져있다. 정상적인 일상이 사라져 버렸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코로나 패닉과 유럽인들이 느꼈을 페스트의 공포를 비교해 보았는가. 그런데 지금 우리는 어떠한가. 반목과 질시와 비난만이 난무한다. 대통령 탄핵청원이 백만명을 돌파하였다고 한다. 방역업무의 주무장관인 복지부장관의 말 한마디를 꼬투리 잡아 언론은 집중포화를 쏟아낸다. 여권인사는 대구시장과 경북지사를 탓하고 나무란다. 입 달린 정치인은 정파적 이익에 매몰되어 떠들어 대고 어줍잖은 논객들은 글쓰는 자유를 만끽하며 붓대를 놀려댄다. 혼란스럽다. 그때나 지금이나 인간의 행태는 비슷해 보인다.

1947년 발표된 소설 페스트는 알베르 카뮈(Albert Camus)가 자신의 모국인 알제리의 해안도시 오랑시를 배경으로 쓴 소설이다. 페스트로 고립된 오랑시는 죽음의 공포에 휩싸이고 그 공포 속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인간의 군상들을 그려낸 작품이다. 소설 속 인물 중 의사인 베르나르 리외는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환자들을 돌본다. 취재차 오랑시를 방문한 기자 랑베르는 오랑시를 벗어나고자 몸부림치고 신부 파늘루는 페스트는 하늘의 징벌이라고 설교하며 다닌다. 그리고 또 한사람 베르나르와 대비되는 인간형인 범죄자 코타르다. 그는 오히려 페스트의 창궐을 즐거워한다. 페스트 덕분에 탈옥한 코타르는 페스트가 사그러들자 아쉬움 가득한 표정을 짓는다.

설마하는 마음이지만 지금 우리곁에 코타르같은 인간이 존재하지 않을까. 한번 생각해 볼 일이다. 우리는 지금 현대판 흑사병인 코로나의 공포 속에서 어떤 역설을 얻어 낼 수 있을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