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결혼문화
북한의 결혼문화
  • 최희향
  • 승인 2021.02.23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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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결혼문화

최희향  (사)한백평화통일재단 사무총장, 대구경제신문 통일과평화연구소 연구위원

결혼은 남녀가 부부관계를 정식으로 맺는 것을 사전적 의미로 정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결혼은 남북한을 막론하고 그 원초적인 의미에서 차이는 별로 없다. 그러나 북한에서 결혼은 사회정치적 의미로 사회의 세포로서 북한사회의 가장 말단 조직이라는 의미로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북한에서의 결혼문화 특히 결혼식의 과정과 방식은 당시대의 정치, 사회적 영향을 받으며 북한은 정권차원에서 결혼식의 방식과 진행과정에 주도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볼 수 있다.

 

북한의 결혼식은 형식과 진행과정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또한 북한의 결혼식은 크게 대량아사자를 속출한 90년대 중반 이전과 이후로 갈라볼 수 있다. 1990년대 일명<고난의 행군>이전에 북한의 결혼식은 전통적 의미를 담고 있었고 그 형식도 전통형식을 고수하여 왔다.

​형식적 측면에서 북한의 결혼식은 지금까지 그 형식은 거의 변화가 없다고 볼 수 있다. 북한의 사회주의 체제가 현실적으로 작동하던 시기 북한에서 결혼식 주인공인 신랑, 신부의 복장은 전통 혼례라는 형식에 남자는 정장, 여자는 한복을 입었다. 결혼식은 대체로 신랑의 집에서 진행되게 된다. 결혼 당일 진행과정은 오전에 신랑이 신부의 집으로 가 작은 결혼상을 받는다. 이때 혼수를 전달하는데 대체로 신랑은 신부 측에 (옷감, 화장품)을 전달한다. 신부역시 결혼을 위해 혼수를 준비하는데 대체로 재봉기, 장롱, 그릇세트, 이불, 거울 등 신혼생활에 필요한 물품을 준비한다. 신랑은 신부와 함께 본가를 떠나 시내를 드라이브 하면서 보기 좋은 경관을 배경으로 결혼 기념사진을 찍고 시댁으로 가게 된다.

북한에도 축의금 문화는 존재한다. 직장에서 주는 축의금을 전달하고 금액은 100원 정도 였다. 당시 1인 노동자 월급이 80~90원인 것을 감안하면 적은 돈은 아니었다. 결혼식에는 회사 동료, 친인척, 친지들, 동네사람들이 초청되며 축의금은 5원 정도였다. 신랑, 신부의 결혼식 복장은 단벌이었다. 이외에도 결혼식에 참석하는 직장상사나 친인척, 친지들이 결혼을 축하해 결혼선물로 신혼생활에 필요한 생활제품들을 선물로 가져오는 경우도 있었다. 결혼 선물은 대체로 거울, 가마, 그릇세트, 재봉기, 등 이었다. 그러나 이시기에도 북한에서 혼수를 얼만큼 가져오고 무엇을 가져왔는지는 동네 아줌마들의 입에 올랐으며 상당기간 대화의 주제가 되기도 하였다. 이는 혼수 물품과 종류가 북한사회에서 지위와 경제여유를 결정짓는 주요대상으로 결혼당사자들의 가정은 물론 주변의 관념을 규정짓는 척도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시기에도 결혼문화에 대해 북한정권은 복고주의 타도와 불필요한 낭비에 대한 비판의 대상으로 결혼문화를 규정하고 결혼식의 사회주의적 성격을 부여했다.

북한에서 창작된 영화 <잔칫날> 도시편, 농촌편을 제작하고 결혼식을 사회주의 생활양식에 맞게 간소화할 것을 요구했고 결혼식의 혼수문화, 다량의 음식소비문화를 비판하였다. 북한정권은 결혼식이 가정집을 플랫폼으로 진행되는 상황에서 이를 재정적 수입의 기회로 보고 평양시내에 결혼식당을 건설하였다. 결혼식당은 예약하면 보통 2시간 정도 이용할 수 있으며 예약이 힘들 정도였다. 이러한 원인은 우선 가정집에서 결혼식은 공간이 상대적으로 작고 찾아오는 하객들을 몇 시간씩 대접해야 하는 상황에서 다량의 음식과 접대 등을 통한 스트레스가 극심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식당에서 진행하면 상대적으로 쾌적한 환경에서 식을 올릴 수 있고 재정적 부담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혼식당에서 식을 올리고 다시 신랑집으로 주요하객들이 재 초청 되는 사례도 있어 2중으로 고생해야 하는 현상도 나타났다.

​90년대에 들어서서 사회주의권이 붕괴되고 북한의 경제가 나락으로 떨어지면서 대량아사사태가 발생하자 북한정권은 결혼식의 사회주의화를 강조하고 검소한 결혼식을 진행할 것을 선전매체를 통해 선전하였다. 결혼식 당일 세단대신 대중교통을 이용할 것을 권장하였고 결혼식을 두 집안이 상견례를 하듯이 할 것을 권장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90년대 고난의 행군 이후 북한사회에서 부익부, 빈인빅 현상이 가속화 되면서 위에서 언급한 거의 통일된 형식의 결혼문화도 양극화되기 시작 하였다. 일반 서민들은 결혼식을 최대한 간소화 하였고 혼수역시 결혼과정에서 넘어야 할 경제적 부담으로 결혼을 저애하는 요인이 되었다. 따라서 북한에서 결혼을 당사자끼리 입었던 정장을 깨끗이 손질하여 사진 한 장 남기는 것으로 대체하는 청춘남녀들이 나타났으며 심지어 이런 과정도 생략하고 결혼등록을 하는 커플들도 생겨났다. 혼전순결을 전통적으로 장려하는 북한에서 이시기 결혼식은 불필요한 과정으로 인식하는 현상들이 나타났던 것이다.

반면 전통적 결혼문화는 상류층에서는 더욱 강조하였고 혼수와 축의금 결혼예복, 결혼식 당일 코스, 결혼식 그 자체는 더욱 화려해지고 소비금액은 나날이 커져갔다. 실례로 90년대 이전에 혼례복이 정장과 한복으로 되었던 반면 북한의 중산층이상들은 오전과 오후, 저녁으로 혼례복이 바뀌었으며 이는 적어도 단벌이었던 혼례복이 2~3복으로 늘어나고 이를 남녀가 서로 따로 부담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는 저녁시간대에 친지들과 하는 피로연에서는 신부가 드레스를 입기도 한다.

결혼 당일 사진 몇 장 남기던 지난날과 달리 카메라를 통한 비디오 편집도 이루어지고 있다. 결혼 당일 오전 카메라맨이 전 과정을 녹화하여 편집하여 음악을 배경으로 한 비디오물을 제작하였다면 지금은 결혼 1주전 또는 몇 달 전부터 시간을 내어 촬영을 하고 두 사람의 연애에서 결혼까지의 단편드라마를 세계명곡을 배경음악으로 제작하고 있다. 제작가격은 몇 십 불로 시작 하여 몇 백 불까지 천차만별이며 추가 옵션에 따라 책정된다.

당일 촬영코스 역시 변화를 가져왔다. 만수대 동상을 시작으로 만수대극장, 김일성광장, 주체사상탑, 개선문, 모란봉으로 끝나던 촬영코스도 대성산, 식물원, 동물원, 대동강에 소형보트 타기(당일 전세), 개선청년공원(놀이공원) 등 유명 식당과 승마장, 지어 역사유적지 탐방(절간)등으로 확대되었으며 여기에 동원되는 운수수단도 지난 시기 세단 1~2대에 불과하던 것이 세단 3~4대 승합차, 지어 25인승 버스, 대형 리무진 버스가 동원되기도 한다. 이는 2000년대 이후 한국드라마의 불법적 유통은 북한 청년들에게 삶의 질적 변화의 꿈을 주었으며 이는 결혼식을 자신의 날로 생각하는 북한주민들에게 그 꿈을 실현화 할 수 있는 날로 인식하게 되었다.

​혼수 역시 신혼살림을 위한 집기에서 금반지, 금 귀걸이 등 사치품들이 포함되기 시작했으며 명품시계와 주얼리제품들이 등장하게 되었다. 90년대까지만 하여도 제품이 국산품이 대다수 였으나 국내민수 경제가 올 스톱된 북한에서는 이후 외제 TV, 컴퓨터, 냉장고, 세탁기, 이불장세트, 양복장세트, 쇼파, 킹사이즈 침대 등 혼수의 규모도 경제적 능력에 따라 대형화, 다각화, 다양화가 되기 시작했다. 특히 북한 결혼문화에서 나타난 주요특징은 축의금의 형태와 변화이다. 지난시기 북한 돈으로 축의금을 전달하고 직장동료들이나, 친지들 단위로 간단한 가정용 생활용품을 결혼선물로 전달하던 것과 달리 결혼 축의금을 외화로 주는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 했다.

​2011년 북한에서 화폐개혁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국내화폐에 대한 신뢰가 붕괴되고 이후 경제적 여유가 있는 상류층, 중산층을 중심으로 결혼식 축의금을 내화가 아닌 외화로 대치되었으며 이는 세뱃돈의 변화도 가져왔다. 또한 국가운영중심의 결혼식당들이 계회경제의 붕괴로 외화가치 만큼의 내화를 통한 서비스를 시작 하면서 소위 돈주를 중심으로 개인들이 운영하는 식당을 전세를 내어 결혼식을 진행하기도 한다. 규모가 있는 식당들은 결혼식이나 환갑, 칠갑 등 가족 행사를 보장하는 전문 식당으로 운영하고 있으며 대외봉사기관의 플랫폼인 호텔 등에서도 이러한 서비스가 보장되고 있다. 외화벌이를 목적으로 하는 식당이나 호텔 등에서는 1인 (10$~30$)의 가격으로 결혼식 참석인원만큼의 돈을 받고 그 외 상차림 비를 따로 결제한 후 결혼식을 진행하고 있다.

북한의 결혼문화에서 변화는 하객들이 결혼식에서 축가를 부르거나 친지들이 같이 축가를 부르며 결혼을 축하해 주었다. 그러나 현재 전문예술인들을 초청하여 결혼 진행자를 맡기고 결혼분위기를 업시키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전문예술부문 종사자들은 1일 봉사비로 몇 십에서 몇 백 불을 받고 있다. 선전을 주요시하는 북한사회에서 선전부문일군으로 규정되어 있는 북한예술인들이 돈을 받고 결혼 흥을 돋우는 것은 북한사회에서 그들의 처지변화도 감지할 수 있는 계기가 되고 있다.

북한의 결혼문화의 변화는 지난시기 90년대 이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던 것들이 현실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나 주요한 변화중 하나는 피로연에서 공공연히 한국가요들이 불리워지고 있고 자본주의 문화라고 지탄하고 있는 춤들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이동의 자유가 없는 북한에서 신혼부부들이 호텔에서 호캉스로 신혼여행을 대치하고 드레스가 등장하고 한국가요가 불리어지는 북한의 결혼문화의 변화는 앞으로도 많은 변화가 이루어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최근 이탈주민으로부터 취득한 이 사진은 함경북도 청진에 거주중인 조카의 결혼식 사진을 전송 받은 것이라 한다. 북한은 근래에 형편이 넉넉한 경우 중국에서 결혼상을 주문 공수해 오는데 비용은 가격에 따라 여러 가지가 있으며, 그렇지 아니한 경우 지역의 식당 주방장이 꾸민 비교적 단촐한 결혼식 상을 차려 결혼식을 한다. 위의 사진을 들여다보면 형편이 그리 넉넉하지 못한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재미있는 것은 과일을 제외한 대부분의 장식물이 ' 무'를 다듬어 물감을 입힌 것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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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기수 2021-02-25 23:03:53
흥미로운 정보입니다.
북한의 결혼문화도 우리와 크게 달라 보이지는 않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