鄕第의 斷想-금당들판을 바라보며
鄕第의 斷想-금당들판을 바라보며
  • 대구경제
  • 승인 2021.07.11 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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鄕第의 斷想-금당들판을 바라보며

 

고향집 증조부가 지으신 별채를 중창하고 內樓에 첫 손님과 앉았다. 남촌에 사는 허물 없는 동무 둘이다.

약관즈음에 출향한지 40년 만에 초로같은 장년이 돼 가마솥에 닭을 고아 곡차를 대작하며 옛 추억을 더듬는다. 여남살부터 댕기머리하고 골목 다니던 이제는 도시 아줌마가 된 또래 박양 변양 남양 권양, 평생 그리워하며 아니 만나는 그이...

바로 남쪽 앞에는 고래등 같은 기와집이 보인다. 원촌어른으로 유명한 안동권씨가 살던집이나 현재는 박씨 소유다. 원촌어른이 1960년 면장 선거에 나가 한 솔개 연설을 아버지께 들었다.

서쪽 옆에는 남야사당과 예천 대지주 김부잣집(현 우천재)이 살포시 보인다.

 

돈두들과 뒷내들판이 훤히 보인다.

동남쪽으로 보이는 초록 저 들판을 누가 돈두들이라고 이름 붙였을까. 돈(錢)이 생기는 언덕인가.

국민학생 시절엔 가을 이삭줍기, 중학생 시절엔 보리베기, 막걸리 주전자 들고 쏟을까봐 살며서 논둑을 걸어갔던 폭신 폭신했던 그 길.

금당들판은 해가 오르면 생명의 광선이 내리 쬐는 양명한 곳이고, 어둠이 내리면 달과 별이 아미산 백마산에 기대며 내미는 편안한 곳.

 

앞내 뒷내에서 여름에 멱을 감고 겨울에 썰매를 타고 연 날리던 동무들... 

풀피리를 만들어준 동네 형아들...

학교 수업 마치기가 바쁘게 소떼를 몰고 소풀을 뜯기로 다는던 초동친구들..

모두 이제 기억조차 희미하다

갑오년 동학으로 동네 반상의 질서가 무너지고 출향인들의 후손들도 뒤돌아보지 않는이가 많다.

 

용문 땅 들판은 뼈 빠지는 노동의 무대다. 동틀무렵부터 해거름할때 까지, 이른 봄부터 늦가을 까지.

가뭄이 들면 바짝 마른 논바닥에 냇물을 퍼올리는 모습이 아련하다

보릿고개 넘으려고 한톨의 곡식알이라도 더 생산하려는 가장의 필사적인 땀이 뿌려진 현장...

한겨울에 냇가에서 얼음판을 깨고 비누도 제대로 없이 빨래를 했던 아낙네들의 빼앗긴 봄...

저마다 연장 하나들고 눈두렁을 다니던 검게 탄 얼굴의 우리 아버지 할아버지 세대들이 떠오른다

시집간 딸네 집에 하루 묵었다가 눈발 내리는 들판 논둑길을 따라 걸어가시며 한두번 돌아보시던 두루마기 차림의 외할아버지의 뒷 모습. 저 멀리 덕골 고개 넘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치마로 눈물을 훔치며 눈길을 떼지 못했던 서른 남짓 우리 엄마...그리워도 자주 못보는 아버지의 옷소매를 마음손으로 붙잡았리라

곧 가을이면 벼가 익어가는 황금들판이 될 것인데.

옛처럼 있는 산천과는 달리 간데 없는 님을 목놓아 부르고 싶다.

 

2021년6월29일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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