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미경 우리 역사, ‘문사(門史)이야기’-남강 정진채
현미경 우리 역사, ‘문사(門史)이야기’-남강 정진채
  • 대구경제
  • 승인 2018.07.21 2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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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거창하게 만 느껴지는 대사(大事)다. 실제로 동네 마을 이야기나 가문의 소사(小事)는 다루지 않는다. 그러나 역사를 더 실증적으로 봐야한다는 점에서 문사(門史)의 가치도 적지 않다. 우리 역사를 더 풍성하게하기 위해 이 땅에 숨어 있는 문사 발굴에 나선다.

남강 정진채 전 국정교과서관리(주) 사장

  1. 머리말

 한국의 근대화 격변기에 몇 가지 고비가 있었다. 해방정국 적산(敵産)을 차지한 기업은 이후 대기업, 즉 재벌이 됐다. 재벌 형성 초창기 중심에 있었던 미군정 당시 경북도 재무국장, 관재처장을 지낸 남강 정채진((鄭鎭采, ~ )의 일대기는 손자 정상천의 일생을  건 관찰을 토대로 한 직접 기록이어서 생생하고 이채롭다.

 남강이 관여한 귀속재산 처분은 오늘날 대기업의 원형이다. 그중 대표적인 것은 쌍용그룹 창업주인 성곡 김성곤(金成坤)에게 방직공장을 불하한 것이다. 또 섬유도시 대구에서 직물공장을 직접 경영했다. 산업화 초기 직물공장 운영은 황금알을 낳은 거위였다. 정재호, 이병철 씨도 모두 직물공장을 토대로 한국의 공업화를 이끌었고 오늘날 글로벌 대기업이 됐다. 남강 정진채의 간략한 일대기를 몇 회에 나누어 싣는다.(편집자 주)

 

200611 할아버지 상석(床石) 및 비석 건립과 증조부 비석 건립을 계기로 두분의 행장(行狀)을 찾아보게 되었다. 두 분 모두 일기(日記)나 남기신 서한이 없어서 자세한 내력을 정리할 수 없었다. 다행히 할아버지께서 남기신 1권의 사진첩에 그 분들의 발자취를 일부나마 추적해 볼 수 있게 되었다. 증조부 사진은 단 2장밖에 없고, 나머지는 모두 할아버지 사진이어서 이 글은 결국 남강(南崗) 할아버지(이하 南崗이라 칭한다)의 간략한 일대기를 기록하는 형식이 되었다.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는 말이 있다. 조상님들이 어떻게 살아오셨는지는 결국 현재적인 관점에서 논술하는 사람의 주관이 개입되어 서술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일부 틀린 사항도 있을 수 있, 다른 관점에서 해석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사항들은 추후에 보완이 되어야 할 것이다. 역사란 기록되지 않으면 대부분 망각되어 버리고, 자손들은 조상들이 살아온 발자취에서 교훈을 얻을 수 없다. 조상님들이 이 땅에서 살아온 삶의 궤적을 잘 정리해 놓으면 후손들에게는 삶의 귀감이 될 것이고, 온고지신(溫故知新)의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증조부와 조부 모두 그 분들의 삶에 대한 기록을 남기시지 않았다. 그것은 그만큼 격동의 시기에 바쁘게 살아오셨기 때문에 그러하였을 것이고, 또한 시간적 여유가 있다고 하더라도 삶의 명암(明暗)을 일일이 기록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셨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모두의 삶은 일견 평범해 보여도, 일견 자세히 기록해보면 한편의 드라마와 한편의 소설로도 부족할 만큼 수많은 우여곡절과 희로애락이 담긴 사연이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모두 과거의 어려운 추억은 잊고 즐거운 일들만 기억하기를 바란다. 그것은 자기보호 본능이며 내일의 행복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보통사람들의 일반적인 태도일 것이다.

이 기록첩은 가급적 객관적인 사실들에 근거하여 기록하였으며, 잘 모르거나 정확하지 않은 사항은 배제하도록 노력하였다. 그리고 한문으로 된 고유록(告由錄)을 보충하는 의미도 있으며, 남강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좀 더 근접하게 그의 진면목을 알리려는 의도도 있다. 역사를 전공한 자()로서 무엇인가 조상님들에 대한 연구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해왔었고, 이번에 비석 건립을 계기로 조부와 증조부의 삶의 발자취를 시대별로 정리해 보고 싶었다. 증조부 우송(友松)은 필자가 태어나기 4년전인 1959년에 별세(別世)하셨기 때문에 그 분이 살아오신 삶의 자세한 내력을 알 수가 없어 여기에 기록하지 못한 점을 아쉽게 생각한다. 조부 남강(南崗)1972년 필자가 초등학교 4학년 2학기 동안 잠시 서울 덕수국민학교에 전학을 가서 공부할 때 보살펴 주셨기 때문에 적어도 그분에 대한 몇 가지 추억은 기억해 낼 수 있다. 그리고 짧은 기간이나마 동시대를 호흡하며 살아온 까닭에 직접 경험한 것과 주위로부터 듣고, 전해들은 바를 간략히 기록할 정도의 이야기 거리는 가지고 있는 것을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조상님들이 앞서 살아가시면서 삶을 어떻게 바라보셨으며, 삶에서 추구한 바는 무엇이었으며, 삶에서 무엇을 남기셨는지를 정확히 밝혀내는 것은 후손된 도리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일 것이다. 그것은 곧 우리의 근본을 알아내는 일이다.

기록되지 않은 것은 모두 망각되고, 망각된 모든 것은 만겁(萬劫)의 세월속에 티끌로 사라지나니, 우리가 이 땅에 살아온 것을 기록하지 않는다면 삶과 인생의 의미를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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