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래원 농부 칼럼 | 이 나라 농촌, 농민 모두 망해가고 있다.
취래원 농부 칼럼 | 이 나라 농촌, 농민 모두 망해가고 있다.
  • 황보윤식
  • 승인 2018.08.11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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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보윤식

 

1. 대학 강단을 떠나 아내가 농사를 짓고 있는 소백산 산속에서 삶 자체를 맡기기 위해 들어온 지 벌써 1년이다. 한 7년은 사실 4촌3도의 이중생활을 해왔다. 그러니까 농촌에 임한 산속에 들어온 지도 근 8년이 된다. 시골로 귀농을 할 때는 청운의 꿈이 있었다. 도시에서 우리밀살리기운동과 농촌살리기운동을 한 경험을 살려, 거짓되지 않는 친환경농사를 짓자. 그리고 지역주민들을 위해 대안학교를 열자. 그래서 우리의 주체문화인 목공, 토공, 철공, 한지, 천연염색, 서화(書畵) 등 현대판 서당교육을 하자. 그런 생각을 가졌다. 곧 '민중 속으로'라는 브나로드 운동을 하고자 했다.

그리고 사람과 자연의 향기에 취(醉)해 이곳 동산(苑)으로 온다(來)는 뜻으로 취래원이라는 이름을 짓고 노인들이 20여년간 지었던 사과과원을 새로 조성하여 농사를 지으며 농민들과 친환경농법, 생명농법, 미생물농법 등에 대하여 많은 이야기를 하였다. “돈 중심보다는 인간중심의 농사가 먼저다. 물질의 풍요보다는 인간마음의 풍요로움을 추구하는 삶을 살자”는 취지의 계몽을 하였다. 심훈(沈熏, 1901. 9. 12 ~1936. 9. 16)의 《상록수》(1935년 작)의 주인공 박동혁과 채영신의 정신인 '민중 속으로'라는 브나로드운동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농민들의 정신을 풍요롭게 해보자는 취지는 가지고 있었다.

처음에는 몸으로 뛰었다. 일부 반응이 있어서 처음 만든 사과작목반(참좋은)의 일부 농민들은 미생물농법과 저농약으로 농사를 짓는다. 그러나 취래원이 위치한 지역주민과 함께 만든 작목반은 처음에 귀를 솔깃하더니 1년 뒤에는 관습농법으로 죄다 돌아가고 말았다. 이렇게 7년 세월이 흘렀다. 그리고 혼자서 하던 보나로드운동은 7년만에 접고 말았다. 1930년대 농촌현실과 각종 메스미디아가 만연되어 있는 이 시대의 농촌현실은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새로운 방법의 보나로드운동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터득하였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시골농민들이 가지고 있던 우리의 아름다운 정서를 찾는 음악제와 영화제를 중심으로 옛 소박한 정서를 되살려보자는 생각이다.

영주 취래원

 

2. 농촌에 들어와 그 생활 속에서 살다보니 농촌이 망하고 있구나 하는 절망감이 들었다. 이 나라 정치적으로 보면 농촌이 망하기 시작하는 것은 박정희 때다. 새마을운동이 그것이다. 새마을운동으로, 이 나라의 전통(역사적 가치, 온정적 정서, 풍요로운 정신)이 사라지고 농촌이 정신적으로 망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모른다. 사악한 포풀리즘(populism)의 전형이다. 그런데도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서 농촌곳곳의 관청 국기대와 도로변에 그리고 도시의 주민쎈타 국기대에 새마을깃발이 휘영청 다시 나부끼고 있다. 온전한 정신의 부재 탓이다.

농촌공동체는 자본주의로 갈수 없는 태생적 속성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이 나라 정부의 농림부(지금은 이름도 개먹 같은 농림수산자원부로 고쳤다)는 지금 한국농촌의 자본주의화를 강제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한국 농촌에 겨우 소규모의 개별농업과 집약농업에 의지하고 있던 가난한 소농들은 농촌에서 삶의 보금자리를 잃고 농촌 밖으로 쫓겨나야 합니다. 대농 중심의 자본농(資本農)들이 농촌을 독점하게 된다는 뜻이다. 자본가에 의한 농촌지배가 이루어지면 농민계층은 더욱 분화되고 자본이 인간을 지배하는 비윤리적 자본공화국으로 변질하게 된다. 이로 말미암아 농촌공동체의 전통적 기능은 파괴되고 정체성의 궤멸을 가져오게 된다. 전통적 농촌공동체의식의 붕괴와 고유한 농촌환경의 변질은 한국농촌이 갖는 공익적 기능(인간정서의 순화, 홍수조절 기능, 지하수 정화기능, 기후와 온도 조절기능 등)의 파괴를 의미한다. 농촌 공동체의식의 붕괴, 농촌의 도시화, 농촌이 갖는 공익적 기능의 파괴는 미래 한국경제에 부정적 요인으로 작용할 뿐만 아니라 생존경쟁으로 감정이 악화된 도시민의 정서를 순화시켜줄 곳을 잊게 된다. 이 결과, 우리 사회는 비인륜적 각종 범죄가 더욱 판을 치게 될 것이 뻔하다.

세계 사회학자들은 앞으로 닥아 올 인류의 행복한 삶의 유형으로 개인의 자유주의에 바탕 한 자본주의가 아닌 인간적 유대를 바탕으로 하는 공동체주의를 제시하고 있다. 그래서 선진 국가들은 미래사회의 유형을 공동체적 삶으로 보고 새로운 공동체사회의 모델을 만들어 내려고 노력하고 있다. 바로 유럽이 공동체사회의 모델이 찾고 있는 곳이 바로 농촌이다. 그런데 남들은 농촌공동체에서 행복을 찾으려고 하는데 우리는 그 농촌공동체를 파괴하고 있다니.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의 민주주의, 자유주의, 자본주의, 합리주의, 과학주의는 유럽에서 전해 온 것들이다. 그러나 시대가 흐르면서 서구사회는 시민사회를 통해 해소될 수 없는 갖가지 비인간적 문제들에 직면하고 있다. 그래서 유럽은 자유주의와 자본주의에서 노출되는 비인간적 문제들을 과거 사회의 이념, 즉 공동체주의(농촌사회)를 빌려 해결하려 하고 있다.

그런데 다행이도 한국농촌은 그러한 공동체사회의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는 나라다. 우리의 역사와 문화, 인간의 휴머니즘을 고스란히 보존하고 있다. 그럼에도 어리석은 이 나라의 농림부가 앞장서서 이를 파괴하려 하고 있다. 다른 자본주의 국가들은 공동체주의로 이행하고 있는데 우리는 공동체주의를 파괴하고 농촌의 자본주의화를 추진하다니, 어리석음의 극치를 이루고 있다. -끝-

 

※글쓴이 황보윤식(皇甫允植, 醉來苑農士) 문학박사(역사학, 중국 사회경제사)는 소백산(영주) 산간에 들어와(2010) 취래원(醉來苑) 농장을 만들어 농사를 지으면서 글방(書堂, 반딧불이서당)을 열고 있다.

한신대 연구교수를 거쳐 인하대 강단에 있었다. 학생시절부터 민족/통일운동을 하였다. 동시에 사회개혁에도 관심을 갖고 생명운동을 하였다. 나이 60을 넘기자 바람으로, 도시생활을 과감히 접고 그 동안 펴왔던 생명운동을 실천하기 위하여 귀촌했다. 그리고 실천 활동으로, “국가보안법폐지를위한시민모임”, “함석헌평화포럼”, “함석헌평화연구소”에도 관여를 하고 있다. 글로는 전공논문 외에, 《길을 묻다, 간디와 함석헌》(공저, 2011), 《씨의 희망과 분노》(공저, 2012), 《생각과 실천》 1, 2(공저, 2011, 2012 ), 《함석헌식 현실인식 비판과 역사인문학》(근간, 2016) 등 다수의 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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