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라와 밥그릇
삐라와 밥그릇
  • 김성경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 승인 2018.08.11 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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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경 교수

 

 친구가 무언가 건넨다. “네 연구에 도움이 될까 해서 가져왔지. 요즘 같은 시대에 이게 우리 집 옥상에 있더라고.” 촌스러운 붓글씨체에 선명한 빨간색으로 “전진하는 주체 조선의 기상”이 적혀 있고, 그 옆에는 로켓 사진을 배치한 조악한 전단지. 맞다. 삐라다. 서울 시내 곳곳뿐 아니라 얼마 전에는 청와대 춘추관에서도 발견되었다는 삐라가 친구 집도 방문한 모양이다. 낄낄거리며 들춰보다 문득 북한이 참 한심하다는 생각에 이른다. 모두가 가상/현실을 넘나들며 살고 있는 요즘 같은 시대에 총천연색 이미지에 유치한 구호를 담은 삐라라니.

 한국전쟁 즈음하여 한반도에 뿌려진 삐라는 최소 28억장이라고 알려져 있다. 이는 한반도를 뒤덮을 만큼 엄청난 양이었는데, 상대방 사기를 떨어뜨리기 위한 심리전의 일환이었다. 전쟁 상황을 알기 어려웠던 그 당시에는 삐라가 전하는 말 한마디가 크게 다가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보 홍수에서 헤매는 현재 우리들에게 삐라는 차라리 코미디에 가깝다.

 하긴 우리도 대북삐라를 보내왔다. 주도한 것은 탈북민 단체였지만 그 뒤에는 정부의 은밀한 지원과 묵과가 있었다. 북한 지도자의 얼굴을 우스꽝스럽게 그려넣고 그 위에 험악한 구호를 새겨넣은 후 1달러 지폐와 함께 북쪽으로 뿌려댔었다. 물적, 인적 경로를 통해 상당한 정보가 북한 주민 사이에서 유통되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삐라를 날려 보냈던 것이다.

 분단국에서 체제 경쟁은 분단이 해소되지 않는 한 계속된다. 설혹 한쪽이 비교 불가할 정도로 강해졌더라도 경쟁은 멈출 수 없다. 예컨대 남한은 민주화와 세계화를 거치면서도 ‘안보’라는 이름으로 커다란 몸집의 대북 관련 정보기관을 운영해왔다. 세상은 변해 북한만큼 아니 북한보다도 더 심각한 여러 안보 위협이 불거졌음에도 이미 커져버린 대북 관련 조직은 여전히 ‘북한’이 가장 큰 위협이라고 외친다. ‘북한’이라는 적이 필요한 조직, 사람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분단이 구조화되면, 분단에 기대 사는 사람들의 수가 많아지면, 분단 극복이라는 외침은 현실적 목표가 아닌 레토릭에 머물게 된다. 밥그릇 앞에서 윤리성과 당위성은 쉽게 무력화된다.

 지난 정권에서 국정원은 ‘북한’을 활용해서 참 많은 일을 했다. 북한‘과’ 싸운 것이 아니라 북한을 이용해서 자신들의 조직을 유지해온 것이다. 탈북민 단체를 활용해서 댓글조작을 한 것이나, 무고한 탈북민을 간첩으로 조작한 것이나, 인터넷과 언론을 이용해서 종북몰이에 몰두한 것이나 모두 분단에 기대 살 수밖에 없는 국가조직이 어디까지 망가질 수 있는지 보여준다. 그렇다면 북한은 어떨까. 우리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방대한 보안부, 보위부 조직과 그에 딸린 가족들 모두 먹기 위해서, 살아남기 위해서 분단과 외부 위협이 계속 필요할 것이다. 이들은 효과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계속 삐라를 보낼 것이며, 선전방송과 대남공작을 계속할 것이다. 자신들의 밥그릇이 분단인 이상, 이들 또한 어떻게든 분단을 유지하려고 할 것이다.

 문화인류학자 김현경은 인구(人口)의 한자어를 풀이하면서 인간은 먹는 입으로 형상화되며 동시에 말하는 입을 지닌 존재라고 정의한다. 문제는 지금껏 말하는 입이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을 대변해왔다는 사실이다. 대부분은 먹기 위해서, 즉 생존을 위해서라면 말하지 않는 것을 선택한다는 너무나도 현실적인 문제를 간과해온 것이다. 결국 모든 문제의 시작은 밥그릇이다. 물론 더 근원적인 악은 밥그릇으로 인간을 동물로 전락시키는 남과 북의 권력자들이다.(이 글은 한겨레신문에도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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