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왕(歌王) 조용필
가왕(歌王) 조용필
  • 이명재 목사
  • 승인 2018.07.08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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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왕'이란 말은 잘 쓰지 않는다. '가수왕'이란 단어는 자주 듣는다. 가왕을 한자로는 '노래 가(歌)', '임금 왕(王)'으로 쓸 것이다. 노래의 왕이란 뜻일 텐데 어딘가 부자연스럽다. 국어사전에 등재되어 있는지 모르겠지만 아마 가수왕보다는 상위의 개념이 아닌가 싶다.

가수 조용필 앞에 '가왕'이란 타이틀을 붙여 주고 있다. 영국의 계관시인은 왕이 하사하는 명칭이다. 가왕은 국민가수 조용필에게 국민이 부여한 것이다. 어쩌면 국가에서 받는 것보다 훨씬 영예로운 호칭일 수 있겠다. ‘가왕 조용필!’ 아티스트적 면모에서 가요계의 거장이다.

유행가와는 멀리 떨어진 생활을 하다보니 이름을 기억하는 가수가 많지 않다. 기껏해야 중고등학교 때 인기를 누린 나훈아 남진 이미자 하춘화 등의 이름과 노래를 어렴풋이 알고 있을 뿐이다. 그 중에 조용필도 끼어 있다.

'돌아와요 부산항에', '창밖의 여자'는 내가 완창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대중가요다. ‘형제 떠난’, ‘슬피우네’, ‘목 메어’, ‘그리운’(돌아와요 부산항에 중). ‘눈물처럼’, ‘흰손’, ‘가로등’, ‘사랑’(창밖의 여자 중). 곡도 곡이지만 가사를 음미해 볼 때 심성을 때리는 애절함이 녹아 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해서 가수 등 연예인들의 정신세계를 난 그렇게 높게 보아 오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연예인은 인기를 먹고 사는 사람들로 알려져 있다. 인기는 자신을 보다 많은 대중이 알아 줄 때 생성되는 것이다. 이들에겐 자기 우선, 자기 중심적일 수밖에 없는 생리를 갖고 있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더불어 살아가야 할 세상에 큰 신경 쓰지 않고, 사회가 어떻게 되든 '나'만 잘 되면 그만이라는 폐쇄적 사고의 소유자들로 치부했다. 그런데 조용필이 이와 다른 삶을 살고 있다니! 한 신문의 기사 제목은 이렇게 되어 있었다. "50년간 번 돈 '아픈 어린이'에 기부하고 '전셋집' 사는 조용필"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기존 관념이 허물어졌기 때문이다.

국민가수 '조용필' 하면 수입이 많고 생활도 풍족할 것으로 대부분 생각한다. 저택에 살고 있을 뿐 아니라 잘 하면 해외, 그것까지는 아니더라도 제주도의 전망 좋은 곳에 수영장이 딸린 고급 별장 한 채쯤은 지니고 있는 줄 안다. 그런데 고작 전셋집이라니!

조용필의 부인은 심장병을 앓다가 2003년 세상을 떴다. 부인이 남긴 재산 24억 여 원을 심장병을 앓고 있는 어린이들을 위해 기부헤서 세인의 관심을 끌었다. 지난 2010년 5월 열렸던 대규모 콘서트 수익금 일부도 소아암 환자들을 위해 썼다고 알려졌다.

당시 조용필의 기부금으로 소아암을 앓고 있는 어린이 환자 5백 명이 혜택을 보았다. 어린이 한 명 당 수술비와 입원비가 5백 여 만원 든다고 하니 단순 계산할 경우 25억 원의 기금이 전달되어 쓰인 것으로 어림된다. 아무나 할 수 없는 통 큰 베풂이다.

이것뿐 아니다. 2009년에 그의 이름을 붙인 장학재단을 설립했다. 공부는 하고 싶지만 경제적 사정이 여의치 않은 중학교 및 고등학교 학생과 대학생들을 돕고 있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대학 진학을 못한 조용필이라는 점을 되새겨 볼 때 선행의 의미가 더해진다.

말은 풍성하고 현란하되 실천에는 지극히 인색한 현 세태다. 내 것 굳건하게 챙겨놓고 남는 것으로 적게 베풀면서도 내는 생색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자기에게 후하고 다른 사람에게 야박하기 짝이 없는 세상에 조용필은 사람들에게 큰 깨달음을 주고 있다.

그의 나이가 내년이면 고희(古稀)다. 가수 생활 50년 동안 벌어들인 수입을 이웃과 나누며 어려운 사람들의 손을 잡아 준 그의 마음이 한 없이 따스하다. 넓은 집에 살고, 좋은 차를 굴리고, 높은 지위를 누리는 자보다 조용필이 진정한 거인임을 알게 된 것이 고맙다.

<이명재 김천일보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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