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청원운동 국제적 비교'를 주제로 국제학술대회
'19세기 청원운동 국제적 비교'를 주제로 국제학술대회
  • 강원탁 기자
  • 승인 2018.09.12 12:5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국학진흥원과 안동시는 오는 13일 한국국학진흥원에서 '19세기 청원운동 국제적 비교'를 주제로 국제학술대회를 연다.

1893년 뉴질랜드의 여성 참정권 탄원서(199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와 만인소(2018년 유네스코 아·태 기록유산)를 비교해 19세기 청원운동의 의의와 만인소 세계기록유산 등재 가능성을 논의하는 자리다.

만인소는 조선 시대 1만여 명의 선비들이 연명해 왕에게 올린 청원서다. 연명 과정에 공론을 모으고 참여 의사를 확인해 이를 청원서로 만드는 사회운동의 일종이다.

1792년(정조 16년) 경상도 선비들 중심으로 억울하게 죽은 사도세자의 신원 요구를 시작으로 1800년 이후에는 각각 다른 사안으로 여섯 번 더 청원했다.

이 중 원본이 남아 있는 것은 1855년(철종 6년) 사도세자를 왕으로 추존해 달라는 '사도세자 추존 만인소'와 1884년(고종 21년) 복제개혁(服制改革)에 반대하는 만인소다.

도산서원과 옥산서원에서 두 만인소를 각각 소장했는데, 도산서원 본은 한국국학진흥원이 보존하고 있다.

유네스코 아시아·태평양 기록유산 총회에서는 "만여 명의 개인이 민주 절차를 거쳐 유교 윤리관을 국가가 실천토록 한 민주주의 초기 모습을 보여준다"며 만인소를 높게 평가했다.

학술대회에는 만인소뿐 아니라 뉴질랜드 여성 참정권 운동도 소개한다.

뉴질랜드는 여성들이 1885년부터 투표권을 획득하기 위한 서명운동을 벌인 결과 1893년 세계 최초로 여성에게 투표권을 줬다.

이 과정에서 2만5천519명이 청원서에 서명했고 1893년 9월 이를 뉴질랜드 의회가 가결했다. 탄원서는 중요성을 인정받아 199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올랐다.

다이엔 맥카스킬 아시아‧태평양기록유산위원회(MOWCAP) 부의장은 기조발표에서 "만인소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위해서는 조선이 여론에 따른 국민 정치참여에 관용적이었다는 사실과 이것이 이후 한국 정치 발전과 국제 관계를 이해하는 데도 중요한 변수로 작용했다는 점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고 권고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