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舊)한국 군악대 창설 제117주년 기념음악회 성황
구(舊)한국 군악대 창설 제117주년 기념음악회 성황
  • 박덕근 기자
  • 승인 2018.09.15 19:0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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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봉환 선생이 창설 주도...서울 탑골공원에서 성대하게 개최돼
대한제국 관리 장화식 봉환 부자는 의병활동과 국권수호에 관여

  장봉환 선생이 1901년 대한제국 군악대를 창설한 뜻 깊은 일을 기념해 지난 7일 오후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야외무대에서 군악대 재현공연이 성대하게 개최됐다.

서울특별시 지원과 예천군 후원으로 개최된 이날 공연에는 주한 영국대사부부와 각국 무관(武官) 등 수많은 외교사절이 참석하였다. 객석에는 공원을 찾은 서울 시민이 운집하여 환호와 박수 속에 밤 9시까지 공연이 이어졌다.

 

연주를 맡은 (사)뉴코리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단장 송재용)가 제일 먼저 당시 군악대가 연주하던 애국가와 대한제국과 수교하던 미국, 영국, 독일, 이태리, 프랑스 등 5개 국가를 연주하니, 참석한 주한 외교관들은 자국의 애국가에 일어서 극진한 예를 표하였다.

이어서 당시 군악대가 연주하던 주옥같은 명곡이 연주되고, 구립어린이 합창단 등 3개 연합합창단과 그 가족은 물론 온 시민이 참여하는 아리랑 합창이 밤하늘에 울려 퍼졌다.

 대한제국의 군악대는 자주독립의 상징이요 황제의 존엄을 드높이는, 서양악기로 서양음악을 연주하는 최초의 서양식 악대로 더욱 빛나게 되었다. 

군악대는 군대의 사기를 진작한다고 알려져 있으나, 이때 군악대는 대한제국의 자주독립을 상징하고 나아가 황제의 존엄을 드높이는 최초의 서양식 악대였다.

 이날 행사에는 권창용 예천문화원장이 장봉환 선생의 증손(장한덕)과 함께 무대에 올라 인사를 했다.

 권원장은 군악대를 창설한 장봉환 선생이 일제의 야욕에 맞서서 국권수호에 앞장섰던 아버지 장화식 한성부판윤과 함께 충효인물로 추앙하고 있다고 밝혔다.

권 원장은 장선생의 고향인 예천 군민들께도 이런 좋은 공연을 감상할 수 있도록 예천공연을 요청해 허락을 받았다.

 

  한편 장봉환 선생(1869〜1929)은 경북 예천에서 태어나서 조선시대 말 1888년 최초의 근대식 교육기관인 관립 육영공원에 입학하여 영어를 배우다가 1893년 주미공사관 서기관으로 부임, 서양의 발전된 문물을 접하고 돌아왔다.

그 후 시종원 시종(비서관)으로 고종황제를 모시다가 1900년 12월 군악대 창설을 주창하던 민씨정권의 실세 예식원장 민영환 아래 예식원 차장으로 임명되자 곧바로 군악대를 조직하였다. 이듬해 1901년 2월 독일인 지휘자 에커르트가 입경할 무렵 악기구입 등에 필요한 부족한 경비를 스스로 마련하여 마침내 군악대를 창설하였다. 

그후 고종황제를 경호하는 시위연대 대대장(참령)으로 근무하다가 1905년 대구진위대장으로 물러나와 관내 의병활동을 지원해 보직 해임되고 1907년 8월 군대해산으로 물러났다.

 장봉환 선생의 아버지 장화식선생은 39세에 봉화현감을 지내고 1902~1903년 사이 대한제국 조정에서 한성부 판윤(5개월 간) 재임 시 일본 제일은행권의 국내유통을 금지했으며, 1905년 통신과 해운 분야를 담당하는 통신원(通信院)의 총판 벼슬에 있을 때 일제에 의한 우편과 전신(우체사‧전보사) 강탈을 막으려다가 군부 국장으로 좌천되는 등 국권수호에 앞장섰다.

 지난 2011년에는 『장화식 장봉환 부자의 충효의 일생』이란 연구서를 예천문화원이 출간했다. 이 책은 김봉균 박사가 "2년 동안 두 애국지사의 행적을 찾아 전국을 누비며 각종 사료와 자료를 정리해 세상에 내놓게 됐다"며 "선현의 숨결과 고귀한 나라사랑 정신이 담긴 귀중한 애국 지침서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한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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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영 2018-09-16 08:57:40
묻힌 역사를 다시보니 감개. 좋은 기사에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