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나메기, 하회탈춤을 향한 불쌈꾼의 대통령되길 바란다
노나메기, 하회탈춤을 향한 불쌈꾼의 대통령되길 바란다
  • 공재월 프리랜서 언론인
  • 승인 2022.03.05 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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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나메기’는 돈만을 최고로 치는 때 묻은 단어가 아니다. 때를 씻어내면, 누구나 알 수가 있는 말이다. 인도(人道)가 아닌, 차도(車道)에서 평생을 보낸, 백기완(白基琓 1932. 1. 24.~2021. 2. 15.)선생의 토박이 말이다. 뜻은 <너도 일한다. 나도 일한다. 너도 잘 산다. 나도 잘 살되, 올바로 잘 사는 그런 세상을 뜻한다.> 또한 ‘불쌈꾼’은 <혁명가>를 말한다. 지금은 혁명의 시대가 아니기에, ‘모두가 잘사는 것쯤’으로 알면, 되겠다. 이 두 단어만으로도 우리사회가 현실에서, 구현만 된다면, 우리 미래는 당장에 복지국가가 될 터이다. ‘노놔메기’로, 종잇조각에 불과한, ‘신사임당’은 누구에게든 아쉬울 것이 없을 게다.

당대는 ‘개천용불평등지수’의 시대이다. 개천에서 용(龍)이 출현하지 않는다. 용은 부모의 재력이나 학력에서 나온다. 이걸 서울대 주병기 교수는 ‘개천용불평등지수’이라고, 이름 지었다. 우선 부(富)부터보자. 주거를 총칭하여, 일단 아파트라고 부르자. 아파트는 사람의 삶터이다. 그러나 아니다. 치부(致富)의 수단·도구일 뿐이다. 지난 2021년 대구 다주택자 중 20대 이하는 555명이다. 이 중 19세의 다주택자는 44명이다. 국내 상위 1%의 평균 주택 수는 4.75채였다. 주택 자산 가액은 30억8천900만원이다. 전국의 다주택자 231만9천648명이다. 20대 이하는 1만5천907명이다. 미성년자는 1천77명이다. 상위 1% 가구가 소유한 평균 주택 수는 4.75채였다. 지난 1월 잡코리아·알바몬은 20대부터 40대까지 성인남녀 3,882명을 대상으로 ‘성공의 조건’을 주제로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29.5%는 ‘경제적인 뒷받침·부모님의 재력’을 꼽았다. 부모가 개천이 아니고, 하나의 바다였다.

반대로 지난해 12월 통계청의 ‘2020 인구주택총조사-가구·주택 특성 항목’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가구 중 ‘반(半)지하’에 거주한 가구는 32만7천 가구이다. 현재 아파트는 전국의 가구 수를 넘는다. 그러나 이들이 아파트를 자본으로 싹쓸이했다. 주거가 없는 이들은 ‘누가 나의 어항에 투망질’했는가에 분노한다.

글의 방향을 잠깐 바꾸자. 안동 하회탈춤이다. 하회탈춤의 주제는 ‘양반의 부(富)와 권력(勸力)의 메타포’(metaphor,隱喩)이다. 메타포로 양반의 부를 풍자(諷刺)한다. 해학(諧謔)으로 권력을 희롱(戱弄)한다. 이 춤이 상징성은 ‘대동사회’(大同社會)이다. 공자(孔子)의 ‘대동사회’는 경제적 분배의 형평성이다. 지금은 신자유주주의 시대이다. 이런 시대에 ‘하화탈춤’으로, 불평등한 부·권력을 희롱·풍자한다는 것은, 한낱 꿈에 불과할까.

아니다. 기회가 왔기 때문이다. 지금은 민감했던, 대선 철이 지났기에 그렇다. 대선 구호에선 국민들을 매혹하여, 권력을 잡으려는 공약은 아주 ‘요란·현란’했다. 공약 하나를 5년 집권동안에 실천하려면, 수 조원에서, 수 백조 원이 드는 것도 있다고들 한다. 만약에 이렇다면, 공약(公約)이 아니다. 국민의 정상적인 사고를 마비시키는 두뇌를 만들 참이다. 어느 주자가 무엇을 말하면, 여기에다 더 보태, 억(億)이 아닌 조(兆)로 올린다. 요행히 ‘청’(靑)에 입성하여, 공약을 실천하려면, 나라 살림을 거덜 낼뿐이다. 거덜 나면, 국민들의 지갑엔 먼지만 풀풀 날게다. 하회탈춤이 부·권력을 희롱하는 이유도 바로 이거다. 백기완 선생의 어느 해에 대통령에 출사표를 던진 일이 있다. 그의 사자후(獅子吼)는 앞서 말한, ‘노나메기’였다. 고려시대에 사노비(私奴婢) 만적(萬積,?~1198년)은 이렇게 말했다. “양반의 씨가 따로 있나”를 물었다. 지금은 양반의 씨가 따로 없다.

부·권력을 가진 양반보단, 일반 국민들은 ‘하화탈춤’이 추구하는 평등한, 부·권력의 ‘노놔메기’ 하회탈춤 메타포 사회를 만들, ‘불쌈꾼’ 대통령이 되길 바란다. 지금부터 미래 백년을 위한, 공정·공평한 정의로운 사회를 후대에 물려주길 위해서다.

*공재월(본명 최준영)은 1967년 대구일보에서 언론계를 시작했으나 대구일보가 71년 강제 폐간 됐다. 1990년대 대구일보 논설위원을 하다가 경북일보로 옮겨 문화·특집·사회·제2사회·체육·편집부 데스크 부장을 지내고 2000년대 영남투데이 편집국장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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