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는 영웅들이 많다. 공화국영웅, 노력영웅의 명칭을 붙인 인물들이 매년 탄생한다. 북한의 여성영웅으로써 대표적인 인물이 정춘실이다. 공화국영웅은 당과 국가에 대하여 위훈을 세우고 대중적 영웅주의와 애국주의를 보여준 자에게 수여되는 최고의 칭호다. 이에 비해 노력영웅은 경제, 문화, 건설부문에 있어서 특별한 공로를 세운 사람들에게 수여된다. 정춘실은 노력영웅이다. 단순히 노력영웅을 넘어서 영웅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우리식으로 표현하면 입지전적 인물이다. 자강도 전천군의 평범한 상점에서 북한 최고의 훈장인 김일성훈장과 2차례의 노력영웅 칭호를 받은 인물이다.
우리의 국회격인 북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을 제6기부터 10기까지 5차례나 역임했다. 이 뿐만 아니다. 1990년대에는 아예 정춘실 따라 하기 운동까지 펼쳐졌다. 그 정도로 정춘실은 북한 내 자신의 분야에서 탁월한 성과를 낸 인물이다.
이러한 정춘실의 영웅화는 북한 사회주의가 지향하는 방향과 정춘실의 노력과 맞물려있다. 정춘실은 자강도 전천군에 있는 작은 상점의 판매원으로 일하면서 상점을 이용하는 주민들의 이용내역을 기록하는 ‘우리 가정수첩’을 만든 인물이다. 이 가정수첩에는 주민들의 복장 치수, 신발 문수, 결혼, 회갑 날짜, 집안 대소사, 생필품 소비량 등 기록을 남기고 그것을 바탕으로 주민들에게 공급할 물품을 정확하게 측정했다. 사회주의 계획경제를 추구하는 북한의 입장에서 보면 모범적 사례로 볼 수 있다. 이 수첩을 보게 된 김일성 주석은 ‘사회주의 상품공급 방법’ 이라고 높이 평가할 정도였다. 이렇게 시작된 정춘실의 상품관리방법은 전국적인 주목을 받게 되고 주민 생필품 관리의 모범사례로 평가받으면서 점차 정치적 입지까지 다지게 된다. 1991년에는 정춘실 따라 하기 운동이 김정일에 의해서 적극적으로 추진된다. 김일성, 김정일 두 지도자에 의해 주목받은 인물이 된 것이다. 이러한 정춘실을 위해 북한은 ‘정춘실운동 모범단위’ 칭호를 제정하고 그녀를 주제로 예술영화 ‘효녀’까지 등장했다. 정춘실이 대중들에게 어느 정도 영웅시되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정춘실을 필자가 만난 것은 1980년 10월경이다. 당시 그를 본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자랑스러운 시기였다. 그렇다고 직접 만나 대화하거나 인터뷰를 한 것은 아니다. 우연히...... 하다가 그녀를 보게 되었고 그냥 먼발치에서 그가 하는 이야기를 들은 것이 전부다. 그때는 북한에서 정춘실을 가까이 보면서 그의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남다른 감회를 느끼던 시절이었다. 사실 체격도 왜소했다. 그 작은 체구를 가지고 전천군 주민들의 그렇게 노력하는 모습 보니 정말 당시는 존경심이 저절로 쏟아 졌다.
전천군 주민들의 식생활을 개선하는 봉사자라는 하나의 일념으로 원료기지를 조성하였고 밤낮 불타는 노력으로 자신을 혹사시켰다. 그녀의 노력 결과가 이우러지게 되었다.
놀라운 것은 전천군 전천상업관리소 입구부터 양옆에 옥수수 장대가 가득했다. 옥수수 콩 밭은 몇 정보였다는 건 생각이 잘 안 난다. 도대체 이 넓은 밭을 관리하기 위해 저 작은 체구의 여인이 어떻게 수많은 일을 할 수 있었는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그냥 경외심 그 자체였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다리를 절면서 다니는 정춘실을 텔레비전에서 보게 되었다. 북한은 자랑스럽게 그녀를 소개하였다. 하지만 주민들은 그렇게 악착같이 노력하더니 결국 저런 병이 왔구나 하면서 수근 거렸다. 정춘실을 생각하면 북한 사회주의 한 단면을 보는 것 같다. 돌이켜 보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면서 북한 사회주의 건설에 충실했지만 그녀는 노동을 강요당한 희생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자신의 삶을 개선하는데 노동의 의미를 두는 남한 사회와의 다른 모습을 느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