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의 한(恨)을 인간애(愛)로 승화시킨 의사 장기려
이산의 한(恨)을 인간애(愛)로 승화시킨 의사 장기려
  • 문장순
  • 승인 2022.12.03 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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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래가 보장되는 유명병원의 의사자리를 거절하고 가난한 환자들을 돌보는 평양 기홀병원에서 의사생활을 시작

 

글쓴이: 박희정 대경통일연구회 사무처장

인간 사회에서 이산(離散)은 늘상 존재해 왔다. 그것을 쉽게 잊을 수도 있지만 평생 가슴에 묻고 살아가는 이들도 많다. 우리는 개개인의 서로 다른 이산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겪은 집단적 이산의 경험을 가지고 있다. 6.25전쟁으로 인한 가족, 친지들과의 이산이 그것이다. 전쟁으로 인한 이산의 한을 안고 세상을 떠난 분도 있고 아직 힘든 시간을 보내는 분들도 적지 않다.

의사 장기려는 이산의 한을 가난한 이들에게 의술을 베풀면서 승화시켰다. 그런 그를 어떤 이는 작은 예수라고까지 이야기한다. 장기려의 삶을 잠시 한번 보자. 장기려는 평안북도 용천에서 태어났다. 기독교를 믿었던 그의 집안은 늘 기도로 바르게 살 것을 약속하고, 하느님 말씀에 따르는 생활을 했다. 독실한 신앙인이였다. 그래서 장기려도 어린시절부터 하느님과 한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믿었다. 이런 믿음이 자신보다 가난한 사람들을 먼저 생각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되었다.

장기려는 당시 최고의 의학 교육 기관인 경성의학전문학교에 입학을 하게 된다. 그 후 스승 백인제를 만나고, 결혼도 하게 된다. 의학공부를 마친 장기려는 장래가 보장되는 유명병원의 의사자리를 거절하고 가난한 환자들을 돌보는 평양 기홀병원에서 의사생활을 시작했다. 서울생활을 마다하고 평양으로 간 것이다. 이때부터 그는 치료비가 없어 병원에 올 수 없는 이들을 치료하는 것을 의사로서 책무로 여겼다. 그가 기홀병원에서 근무 중 6.25 전쟁이 일어났다. 피난을 부산으로 오게 되었다. 당시 둘째 아들만 데리고 왔다.

장기려는 전쟁 중에 부산 복음병원이란 곳에서 진료를 시작했다. 복음병원은 전쟁 중이었던 우리나라를 돕기 위해 외국에서 지원한 돈으로 세운 병원이다. 창고를 고쳐 만든 허름한 병원이었는데 나중에는 환자들이 넘쳐 천막을 따로 세워 진료를 했다. 환자들에게 치료비를 받지 않아 병원은 가난한 환자들로 넘쳐났고 당연히 병원 형편은 나빠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장기려는 하느님과 자신에게 했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어려운 이들을 도와야 한다며 진료를 계속했다. 병원 형편이 어려워져 환자들에게 치료비만은 꼭 받기로 병원 종사자들에게 약속했다. 그러나 이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어느 날 수술받은 환자들이 돈이 없어 걱정하는걸 알게 되자 병원 뒷문을 열어 환자가 몰래 나가도록 도와주거나 못 먹어 병이 난 환자에게는 돈을 받기는커녕 이런 처방전을 써주었다. “환자에게 닭 두 마리 값을 주시오라고 말이다.

가난한 사람들을 생각하는 마음은 병원에만 머물지 않았다. 우리나라 최초의 의료보험조합인 청십자의료보험조합도 만들었다. 조합에 가입한 사람들은 매달 조금씩 일정한 돈을 내고 아플 때 부담 없이 병원에 갈 수 있게 했다.

장기려는 사회에 헌신한 공로를 인정받아 1979년 막사이사이상 공공봉사 부문에서 상을 받았다. 하지만 상금도 자신을 위해 쓰지 않고 병원과 청십자의료보험조합을 위해 모두 내놓았다. 그는 낮에는 병원에서 진료를 하고 밤에는 병원 꼭대기에 있는 허름한 옥탑방에서 지냈다. 병원 옥탑방에서 허름한 물건 몇 가지만 가지고 생활했던 장기려는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베풀고 1995년에 세상을 떠났다. 북에 두고 온 가족을 만나려고 했는데, 그 소원은 이루지 못했다.

이산의 아픔을 간직한 채, 가난한 이들을 위한 헌신적인 진료는 멈추어졌지만 그러나 그것은 멈추어지지 않았다. 아직 많은 이들의 가슴 속에 장기려선생이 소외된 이들에게 베푼 사랑은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장기려선생은 새로운 세상에서는 꼭 이산의 한을 풀기를 바랄뿐이다.

박희정 대경통일교육연구회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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