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일에 인지부조화 증세 드러내는 한국판 특권층의 세계관 출처
미일에 인지부조화 증세 드러내는 한국판 특권층의 세계관 출처
  • 대구경제
  • 승인 2023.03.29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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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고통과 피해는 국민들의 몫

최배근 건국대 교수

윤석열 대통령의 대일 외교 참상은 다음 한 문장으로 압축된다. 피해자는 가해자의 마음을 열었다는데, 가해자는 여전히 피해자에게 (다케시마 불법 점거부터 위안부나 징용공 문제까지 다수의 문제에 대해) 사죄하란다. 이런 결과에 대해 많은 국민이 도저히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 사회 특권층의 성격을 이해하면 윤석열 외교가 그런 결과를 빚은 것이 쉽게 이해된다.

최배근교수
최배근교수

 

어느 시대, 어느 사회를 막론하고 (정도의 차이가 존재하지만) 힘과 돈을 ‘숭배’하는 사람이 존재한다. 이러한 성향의 가장 밑바닥에는 생존 욕구가 존재한다. 생존에 대한 욕구는 사람 동물과 일반 동물의 공통점이다. 생존에 필요한 가장 원초적인 수단이 힘이다. 자신(자기 집단)의 생존을 위협하는 타자의 공격을 차단할 뿐 아니라 자신의 생존에 도움이 되는 수단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현들의 도움으로 사람 동물은 물리적 힘에 기초한 타자와의 관계 맺기를 넘어 평화적으로 공존하는 방식으로 진화했다. 역사는 이 과정에 야만의 시대에서 문명의 시대로의 전환이라는 의미를 부여한다. 그러나 원시적 본능에 기반하는 야만성은 강한 생명력을 갖고 있기에 쉽게 소멸하지 않을 뿐 아니라 자신의 ‘근육’을 자랑하며 야만사회로의 회귀를 끊임없이 시도한다. 야만사회에서는 힘이 강한 사람이 일반인에 비해 특별한 권리를 가질 수 있는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야만사회에서 힘은 주로 물리력과 경제력이 결정한다. 물리력은 경제력 축적의 수단이 되고, 경제력은 다시 물리력 강화의 수단으로 작용한다. 근대화 및 산업화를 자신의 힘으로 진행한 국가들, 예를 들어 서구사회에서는 민주주의가 물리력의 세습을 해체하였다. 한걸음 더 나아가 민주주의는 자본의 독재를 견제하는 역할을 하였다. 주지하듯이 이들 사회에서 복지와 사회보장 등이 진전된 배경이다.

반면, 한국에서는 근세로 넘어오는 과정부터 불행하게도 외세가 힘의 원천이었다. 외세는 효율적 통치를 위해 혹은 자신의 이익을 관철하기 위해 (자신들에게 협조하는) 현지 부역세력의 특권을 용인하였다. 부역세력의 특권은 공적 및 사적 영역에서 제도화되어 부정부패와 민주주의 결손을 구조화시켰다. 한국 사회에서 민주주의 완성과 분단체제의 해체가 근본적으로 불가분 관계를 맺고 있는 이유이다. 여기까지는 많은 사람이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런데 지난 5년간 대한민국의 롤러코스트 외교는 많은 사람을 어지럽게 만들고 있다. (아쉬운 점이 많음에도) 문재인 정부에서 외교는 심지어 이전 민주정권들에 비해서도 진일보한 측면이 있는 반면, 윤석열 정부에서 외교는 권력의 정통성이 없었던 군사정권 수준으로 추락하였기 때문이다.

세상은 한 시도 멈추어 있지 않는다. 그런데 한국판 특권층의 경우 미국이나 일본과의 관계에서 대한민국은 고정되어 있다. 이들에게 미국과 일본에 대한 시각은 한반도가 분단되었던 78년 전이나 심지어 10년 전과도 기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이들이 심각한 시대 부적응 병을 앓는 이유는 미국과 일본의 군사패권주의 세력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이들 역시 세상은 변화하고, 모든 것은 상대적이라는 말을 대체로 받아들인다. 그런데 대한민국과 미국, 대한민국과 일본의 관계에 대해서만은 변화의 가능성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힘에 있어서 한국 특권층이 상국으로 모시는 대상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 변화된 현실을 인지하면서도 우리와의 관계에 적용할 때는 인지부조화 증세를 드러낸다.

예를 들어, 20여 년 전인 2000년까지만 해도 세계 GDP에서 미국과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각각 30.3%와 3.6%였을 정도로 절대적 격차가 존재하였다. 그런데 그로부터 20여 년이 지난 2021년의 비중은 각각 24.2%와 18.4%로 격차가 많이 축소되었다. 미국이 절대적 우위를 차지하는 시대가 지나갔음을 보여준다. 이런 상황을 고려한 미국의 전략 변화가 (자신의 우방국과 힘을 합해 자신의 패권을 유지하겠다는) 프렌드쇼어링이다.

문제는 미국과 미국의 전통적 파트너 국가들만으로는 이것이 어렵다는 현실이다. 미국을 제외한 G6(일본, 독일,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캐나다)가 세계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990년 40%에서 2000년에는 35%, 2021년에는 1990년의 절반 수준인 20%로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미국을 포함한 G7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0년 65%에서 2021년에는 44%로 ⅓이나 줄어들었다. 반면, 브릭스 국가들은 2000년 8%에서 2021년 26%로 증가하였다. 미국의 엘리트들 사이에 정파를 떠나 G-11이나 D-10 등으로 G-7의 개편 필요성에 합의가 이루어진 배경이다.

인도, 한국, 호주(+러시아) 등이 G-7의 확대 개편에서 1순위 국가군이다. 이처럼 대한민국의 몸값은 높아졌다. 미국과 중국이 중요한 국제 이슈를 혼자 힘으로 추진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두 나라가 자기 입장을 관철하기 위해서는 중간파워 국가들의 협조가 반드시 필요하다. 문재인 정부에서 이루어진 성과들은 이 변화된 위상을 활용한 결과였다. 그런데 (미국과 일본에 대해 열패감이 구조화된) 윤석열 정부는 자발적으로 대한민국을 미국 군사주의 패권 전략의 도구이자 미일 동맹의 하위 파트너로 집어넣음으로써 스스로 입지를 크게 축소시킨 것이다. 그 결과가 반복되는 외교 참상이다. 이처럼 윤석열 외교 참상은 외세의 부역자 역할을 통해 국내에서 특권적 지위를 유지하고자 하는 한국판 특권층의 세계관의 산물이다.

세계 역학 구도의 변화는 달러 패권의 변화에서도 확인된다. 미국 재무장관 재닛 옐런은 미국민을 안심시키기 위해 지난 한 주 동안 4차례나 마이크를 잡고 미국 은행시스템이 안전하다고 말했지만, 매번 메시지에는 미묘한 변화가 있었다. 한마디로 입장을 결정하지 못하는 것이다.

3월 9일 실리콘밸리은행(SVB)의 대규모 손실이 공개되고, 다음날인 10일에는 영란은행(BoE)이 SVB 영국 지점이 파산 절차에 들어갔다고 발표하자 일요일인 12일에 재무부와 연준, 연방예금보험공사는 SVB 예금에 대한 무제한 보장과 은행들에 대한 자금지원대책(BTFP)을 발표하였다. 지난해 6월부터 (코로나 팬데믹 기간에 풀었던 달러를 회수하기 위해 시행한) 양적 긴축(QT)으로 연준은 10개월간 약 6000억 달러를 회수하였다. 그런데 3월 13일부터 22일까지 약 열흘 만에 4400억 달러를 다시 풀었다. 은행 위기의 확산 조짐이 보이자 3월 14일 옐런과 파월은 월가를 상징하는 인물인 다이먼과 상의한 결과 11개 대형 은행이 퍼스트 리퍼블릭 은행(First Republic Bank)에 300억 달러의 예금 지원을 하는 대신 연준은 은행들에 2조 달러를 투입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19일 일요일에는 세계 5대 중앙은행 총재들이 스왑창구 가동을 선언하고, 당일 스위스 금융감독청(FINMA)은 UBS에 의한 크레디트 스위스(Credit Suisse) 인수 승인을 발표하였다.

발 빠른 대책들에도 불구하고 퍼스트 리퍼블릭 은행의 신용등급은 두 차례에 걸쳐 8단계나 강등되어 사실상 시장에서 퇴출되었다. 그리고 주요 은행들의 주가는 계속 곤두박질치고 있다. 3월 3일 이후 24일까지 JP모건은 13%, 뱅크오브아메리카는 21%, 웰스파고는 23%, 모건스탠리는 15%, 골드만삭스는 12%, 시티는 18%, 찰스슈왑은 무려 31%나 빠졌다. 은행 및 금융회사 주가 하락은 해외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영국의 HSBC와 바클레이즈도 각각 14%와 22%, 캐나다 TD도 13%, 프랑스 BNP 파리바는 21%, 스위스 UBS도 16%, 크레디트 스위스 다음으로 거론되는 독일의 도이체방크는 27%가 빠졌다. 참고로 같은 기간 미국의 기술주, 예를 들어 애플은 6%, 마이크로소프트는 10%, 구글은 13%, 엔비디아는 12% 상승했다.

현재의 은행 위기는 기본적으로 정치실패의 결과이다. 은행은 고객의 예금이나 시장으로부터의 차입금 등으로 자금을 조달하여 최소한 현금을 보유하고, 나머지는 대출 및 (국채나 정부보증기관이 발행한 MBS 등) 신용도가 높은 유가증권에 운용한다. 사실상 정부에게 자금을 빌려주는 이러한 방식은 현대 은행시스템이 만들어진 이래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그런데 이 방식에 문제점이 드러난 것이다. 지금까지 가치의 안정성이 사실상 보장됐던, 이른바 무위험 자산으로 간주했던 정부 발행 증권들에서 가치 손실이 발생한 것이다. 그리고 이 문제점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모든 은행에 존재한다. 대형 은행조차 주가 하락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배경이다.

그런데 (같은 형식과 내용으로 반복하지 않음에도) 이번 위기에 대한 연준의 대응은 진부한 옛날 방식이다. 예를 들어, (고객의 마음이 떠나) 사실상 시장에서 퇴출된 퍼스트 리퍼블릭 은행에 대해 은행의 대차대조표가 회복될 때까지 대출을 지원하겠다고 한다. 연준(미국)이 가진 달러 발권력을 동원하면 해결될 것으로 보는 것이다. 문제는 달러 투입으로 (금융위기 때처럼 문제 있는 자산을 도려낼 수는 있어도) 시스템에 대해 무너진 신뢰 위기를 되돌릴 순 없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월가는 워싱턴이 모든 예금을 보장해주기를 기대한다. 그런데 모든 예금 보장은 미국 정부가 월가 탐욕질의 인질로 전락할 수 있고, 그 결과 미국민의 달러에 대한 불신으로 발전할 잠재적 위험성이 존재한다. 언론이 옐런에게 예금 보장에 대해 명확한 메시지를 촉구하는 배경이다.

시장에서는 결국 전체 예금 보장은 불가피할 것이라는 것, 그에 따른 달러 신뢰의 추락을 예상하며 금(과 심지어 암호화폐)에 대한 투기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새로운 대안이 등장하지 않은 가운데 기존 화폐와 은행시스템의 신뢰 위기는 무질서와 불확실성의 극대화를 의미한다. 현재 인류 세계는 20세기 천재 혁명가 안토니오 그람시가 정의한, “옛 것은 사멸해가고 있는데 새 것은 만들어지지 않아 질서가 부재한 상황에서 온갖 병적인 증상들이 난무할 수밖에 없는” 그런 위기 상황으로 진입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현대 은행시스템과 달러의 신뢰 위기는 역설적으로 미국 엘리트들이 자초한 결과물이다. 급격한 금리 인상에서 비롯한 무위험자산의 가치 손실은 미국의 군사 패권주의가 초래한 우크라이나 전쟁과 그에 따른 인플레이션의 나비효과이기 때문이다. 정치・군사적 셈법에 능한 엘리트들이 달러의 힘만 믿고 의도하지 않은 자해행위를 벌인 것이다.

이처럼 세계는 지각변동을 하고 있는데 대한민국의 특권층은 미국의 렌즈로 세상을 바라보고, 미국만을 쳐다보고 있다. 명(明)에 대한 사대에 빠져 세상의 변화를 읽지 못하고 백성을 전쟁의 화마 속에 던져버린 조선시대 특권층의 모습에서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국가가 특권층에게 장악 당했을 때 위기의 고통과 피해는 민초들의 몫이다. 리스크를 의미하는 불확실성이 극대화되는 국면이, 하루하루 힘겹게 현실을 살아가는 범부들에게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새집이 준비되어 있지 않기에 낡은 집에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는데, 문제는 무너지는 낡은 집에 깔려 생명을 잃을 수 있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는 점이다. 위기 국면에서 개인은 정보 접근에서 제한적일 뿐 아니라 대응능력이 부족하다. 정부의 위기관리 능력이 바닥을 드러냈다면 민초들은 살기 위해서라도 결단을 내려야 하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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