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때 폐교된 민족 사립학교 '계동학원' 개교 100주년 맞아
일제 때 폐교된 민족 사립학교 '계동학원' 개교 100주년 맞아
  • 대구경제
  • 승인 2023.04.03 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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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래 한국 말과 역사 문화 가르치는 사상 불온 교사 교체 명령 이행하지 않아 폐교

관립이 아닌 민족(사립)학교로 개교됐다가 일제에 의해 강제 폐교된 예천 개포면 계동학원(啓東學院)이 올해 설립 100주년을 맞았다. 계동은 지난 1923년 4월 개교됐다.  

3일 항일 민족학교 사립 계동학원유허비보존회( 회장 정희융)에 따르면 당시 경성(현 서울) 협성학교에 다니던 박창호(朴昌鎬, 24세)가 항일학생운동을 하다가 개포면 금리 고향에 돌아와 교사를 짓고 학생을 모집했다.  가르치는 교육과정은 당시 6년제 보통학교 수준을 4년 동안 단축해서 가르치는 학술강습회였다.

당시 예천에는 독립운동의 일환으로 곳곳에 모두 민족학교 9개교가 세워졌으나 지금은 대창중고등학교 외에는 재정난 등으로 모두 없어졌다.

개포면에 거주하던 함양박씨 문중 주손인 박창호는 가난한 아이들(無産아동)에게 배움의 길을 열어주고자 문중 땅(마을회관 옆) 850여 평에 교사를 짓고 운동장을 닦았다. 그리고 친족 박노헌, 박중식, 박윤상 3인을 교사로 맞이하여 이듬해 생도를 모집, 재학생이 한때 80명을 넘었다.

당시 생도들은 월사금은 고사하고 교과서 살돈도 없을 뿐만 아니라 공책, 연필 등 학용품도 교사들이 사비로 마련해 줄 정도였다. 그리고 이 학교는 해마다 경북도지사의 인가를 받아야 됐다.

교사들은 몰래 한국의 말과 역사와 문화를 가르치다가 일제의 감시에 적발되어 사상이 불온한 교사 전원을 교체하라는 예천군수의 지시를 받았다. 계동학원에서는 무보수로 가르칠 후임자를 구할 수 없다는 사정을 호소하고 1926년 3월 학원 재인가 신청을 하였으나 반려당하고 그해 10월 6일 경북도지사로부터 폐쇄명령을 받았다.

설립자인 학감 박창호는 10월 9일 오전 폐쇄식 단상에 올라 일제의 만행을 규탄하고 언제 어디서나 열심히 공부하여 성공하기 바란다고 당부하면서 “이제 계동학원을 폐쇄합니다!” 하고 내려와 눈물을 훔치는 생도들과 통곡으로 작별하였다. 때마침 대기하고 있던 경찰이 박 학감의 발언내용을 문제 삼아 예천경찰서로 구인(拘引)해 갔다.

계동학원의 폐교는 사설학원에 대한 모진 탄압이었다. 일제는 조선인 에게 자주 독립을 고취하는 일이 적발되면 언제든지 폐교시킨다는 것을 세상에 보여준 사례였다. 그후 설립자 박창호 학감은 재개교를 시도하였으나 끝내 좌절되고, 지주에게 수탈당하던 가난한 소작농을 위하여 농민조합운동에 뛰어들었다.

한편 지난 2014년 정성을 모아 학교 옛터에 유허비를 세웠다. 그후 유허비 보존회를 결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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