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천지역에 삼한시대 왕국 ‘물사벌국’이 존재했던 것으로 밝혀져
예천지역에 삼한시대 왕국 ‘물사벌국’이 존재했던 것으로 밝혀져
  • 대구경제
  • 승인 2023.04.24 21:0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6세기 단양 적성비문과 함안 목간에 勿思伐국... 왕 위호 벌보말이 신라에서 인정돼
그동안 널리 알려진 상주 사벌국의 원래 명칭은 6세기경 수벌이 정설로 받아들여져

경북 예천지역에 삼한시대 성읍 왕국인 ‘물사벌국’이 있었던 것으로 밝혀져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삼한 소국은 B.C 3∼1세기 청동기 철기시대에 고조선(위만)을 비롯한 북방 유이민이 남하해 성장한 것으로 사학자들은 추정한다.

지난 19일 예천박물관 제4기 나라사랑아카데미에 강사로 나온 사학자인 사단법인 백촌한국학연구원 김봉균박사의 ‘충효의 고장 예천의 이해’ 특강에서 기존 가설을 종합해 지역 최초로 이같은 사실을 소개했다.

물사벌국의 존재는 신라 진흥왕대 금석문과 목간(木簡)에 중복 등장한다. 지난 1978년 단양적성비 발견 후 학계에서 ‘물사벌성’에 대하여 주목해 오다가 2009년 함안 성산산성 발굴 목간 중에서 동일한 ‘물사벌’이 발견돼 여러편의 논저가 발표되며 연구가 활기를 띄었다. 이런 연구성과를 반영하여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에서 『한국고대의 목간』2(2017)를 발간, 이 물사벌을 수주(예천)라고 정리했다. 근년에 국사편찬위원회 삼국사기 번역본 주석에도 물사벌이 예천이라는 주장을 수용하고 있어 물사벌국 예천설은 정설로 굳어졌다.

물사벌과 관련, 먼저 6세기 중반(550년) 진흥왕이 고구려 영토였던 충북 일대를 차지하고 나서 세운 영토확장기념비인 단양적성비(국보 제198호)에 물사벌을 소리나는 대로 한자로 물사벌(勿思伐)로 적혀 있다. 물(勿)은 물(水)을 소리나는대로 옮겨적었고, 사벌은 신라 때 술(酒)을 수을 수벌 사벌로 발음한 것을 소리로 옮겨 적은 경우이다. 물사벌국은 신라에 병합된 이후 그 뜻을 한자로 옮겨서 수주촌(水酒村), 수주군으로 칭해오다가 757년 수주와 같은 의미로 예천군이 됐는데, 지역명으로서는 이례적으로 매우 오래됐다.

물사벌국은 또 가야계 소국이었다가 신라에 병합된 경남 함안 성산산성에서 발견된 목간에도 등장한다. 목간은 종이가 나오기 전 나뭇조각을 얇게 깍아 만들어서 고대의 책으로 사용한 것이다. 성산산성 목간의 경우 세곡(稅穀)으로 지급한 피(稗) 1섬에다 화주(貨主)인 물사벌의 뚝이(豆只) 이름을 적은 물표로 사용됐다.

고대에 존재하던 물사벌국은 삼국사기 박제상전에 등장하는 ‘수주촌(水酒村)간(干) 벌보말(伐寶靺)’이라는 기록이 나오는 5세기초(417년) 이전 어느 시기에 신라에 병합 된 것으로 보인다. 이 때 간(干, 칸)은 지배자, 우두머리 왕 등을 의미하는 위호(位號)로 신라 왕실이 수주 국왕(君長) 벌보말의 권위를 인정하는 칭호로 보인다.

현재 물사벌국 유적은 예천읍 뒷산 덕봉산(德鳳山)에 있는 흑응산성과 대심리 일대 산등성이 대규모 고분군이다. 2020년 2~3세기경 원삼국시대 토기 마구류 등이 출토된 대심리(497번지) 고분과 현재 발굴조사 중인 또다른 대심리 고분(12호분)에서 4~6세기 신라계 토기들이 출토되었다. 이 고대 유적은 약 1500여년 간 방치돼 나머지는 수많은 고분들은 대부분 도굴됐다.

삼한 소국은 중 일연이 지은 삼국유사에 기록돼 있다. 마한, 진한, 변한 등 삼한(三韓)으로 통칭되는 72개의 ‘소국’(小國)들은 청동기와 초기 철기문명을 지닌 정치적 지배체제라는 지적이다. B.C 3∼1세기 청동기 철기시대에 고조선(위만)을 비롯한 북방 유이민이 남하해 성장시킨 것으로 사학자들은 추정한다.

삼한에 관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역사기록은 중국 사서 삼국지(三國志) 위서(魏書) 동이전이며, 후한서(後漢書) 진서(晉書) 등에도 실려 있다. 마한 54개 진한 변한 24개 모두 78개 소국으로 구성됐다는 것이다. 사기(史記) 한서(漢書)에 의하면, 서기전 2세기경까지도 한반도(북부 제외) 정치집단에 대해서는 진국(辰國)’ 으로만 기록되어 있다. 이들 고조선 시대 황해도 이남에 있었던 진국(辰國)권에 있던 소국들은 수백년 간 존재하다 삼국시대 고구려 신라 백제에 차례로 통합됐다.

우리 역사에 있어서 중요한 ‘삼한’은 삼국시대 후기부터 한반도 전체를 지칭했다. 692년(신문왕) 당 나라(중종)가 무열왕의 묘호 태종(太宗)을 고치라는 국서를 보내왔으나 태종 무열왕이 일통삼한(一統三韓) 한 왕이라며 거부한 자주국가였다. 삼한은 대한제국 국호의 어원으로 현 대한민국의 국호가 됐다.

한편 현 경북 상주 땅에 있었던 삼한 소국 최초의 명칭은 수벌(湏伐)이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경남 함안 성산산성에서 발견된 6세기경 목간에서 ‘수벌’로 돼 있다는 것이다. 그 후대에 사벌주(沙伐州)로 등장하는데, 고려 삼국사기에는 신라 초 사벌국으로 기록돼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