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 출신 간호학 교수가 보는 간호법은?
간호사 출신 간호학 교수가 보는 간호법은?
  • 이정훈
  • 승인 2023.05.06 07: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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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법, 우수 간호인력 확보로 국민 건강증진 향상을 위한 법
의료법은 권고 지키지않아 환자안전사고의 위험이 커쳐

이정훈 계명문화대학교 간호학과 교수

최근 간호법이 의료계에서 뜨거운 감자다. 임상 현장을 떠나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지만 간호법에 관해 이야기하는 여러 입장을 보면서 임상에서 보았던 환자들과의 일화가 떠올랐다.

이정훈 계명문화대학교 간호학과 교수
이정훈 계명문화대학교 간호학과 교수

 

내가 근무했던 중환자실은 세심한 케어가 필요한 환자들이 입실한 곳이다. 하지만 가끔 일반병동에서도 충분히 케어가 가능한 환자가 일반 병동에서 환자를 돌봐줄 사람이 없다는 이유로 중환자실에 입실하는 경우가 있었다. 환자를 돌봐 줄 보호자가 없으면 간호사가 환자를 케어하면 되는데, 병동에서 간호사 1명당 담당하는 환자 수가 너무 많아 그 환자를 볼 여력이 없으니, 중환자실로 입실해야 한다는 이유다. 이러한 이유로 중환자 케어가 필요한 중증 환자는 중환자실에 입실하여 집중 치료를 받을 기회를 빼앗겨 버린다. 이렇듯 적절한 간호인력 유지의 부재는 환자의 건강에 영향을 미친다.

간호사는 의료인 중에서 가장 환자와 가까이 있으면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다. 간호사는 환자의 신체적, 심리적, 사회적 안녕을 위하여 전인적인 간호를 제공해야 한다. 그러나 한국의 간호사는 그러한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간호사 1인당 너무 많은 환자를 담당해야 하기 때문에 간호사에게 전인 간호를 제공할 물리적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이다. 의료법에서 간호사 1인당 환자 12명을 담당할 것을 권고하고 있으나, 이를 강제하거나 처벌하는 조항이 없어 지켜지지 않고 있다. 실제로 대학병원의 경우 간호사 1명당 12~20명, 요양병원의 경우 40여 명의 환자를 간호사 혼자서 담당하게 된다. 간호사 한 명이 수십 명의 환자의 요구를 들어주어야 하니 간호사는 식사할 시간도, 화장실에 갈 시간도 없이 많은 업무를 제시간에 해 내기 위하여 그야말로 ‘허덕이며’ 근무하게 된다. 이러한 이유로 간호사의 직무스트레스와 이직 의도는 보건 의료직종에서 가장 높고, 신규간호사의 사직률 또한 2016년 33.9%에서 2020년 47.7%로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신규간호사의 절반이 근무한 지 3년도 채 안 돼서 관두다 보니 병원에는 숙련된 간호사가 턱없이 부족하고 결과적으로 환자 낙상, 욕창 및 투약오류와 같은 환자안전사고의 위험이 커진다.

간호사 1인당 담당하는 환자 수가 줄어들수록 환자의 사망률, 재원률 과 낙상 및 투약오류와 같은 환자 안전사고가 줄어든다. 결국 간호사의 처우 개선은 궁극적으로 국민의 건강을 증진시키고 삶의 질을 향상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대한의사협회를 포함한 보건의료 단체들은 간호법이 간호사의 이익만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간호법이 제정되면 간호사가 독자적으로 환자를 진료하고 처방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과 다르다. ‘처방’의 주체는 의사이다. 간호사는 의사 처방에 따라 간호를 제공하게 되는 것이므로 현재의 업무 범위와 다르지 않다.

결국 간호법은 간호사만을 위한 법이 아니라 간호사의 처우개선을 통해 우수한 간호인력을 확보하고 초고령화 사회와 만성질환자들의 증가를 대비하여 국민의 건강증진과 삶의 질 향상을 위한 법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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