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의 '정당론'
유시민의 '정당론'
  • 대구경제
  • 승인 2023.07.25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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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의 주인은 당원이 아니라 국민이다. 국회는 대의기구이고, 국회와 국민을 이어주는 정당도 마찬가지다. 당원들은 국민의 정치적 의사를 결집하는 데 참여해야 한다. 당원의 목소리가 중요하지만 국민의 목소리에 우선할 수는 없다.” 6월 14일 민주당 최고위원회에서 송갑석 의원이 한 말이다. “당의 주인은 당원이라고들 하지만 당원 투표로 국회의원 되는 건 아니지 않은가. 정당은 국고 보조를 받으면서 민의를 수렴하는 도구이고 당원은 그 안에서 활동한다.” 6월 15일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민주당 조응천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유시민 작가

 


따옴표를 하고 인용했지만 말한 그대로는 아니다. 군더더기를 빼고 문장을 압축했다. 그들이 실제로 말하려 한 것을 정확하게 전달하려고 그렇게 했다. 그렇다면 정당의 주인은 당원이 아니라 국민이라는 견해는 타당한가? 아니다. 논리로는 명백하게 틀렸다. 그렇지만 경청할 가치가 없는 건 아니다. 틀린 논리인데 들을 필요가 있다고? 그렇다. 인간 세상에는, 특히 정치에는 그런 경우가 드물지 않다.

논리: 정당의 주인은 당원

정당이란 무엇인가?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은 ‘정치적인 주의나 주장이 같은 사람들이 정권을 잡고 정치적 이상을 실현하기 위하여 조직한 단체’라고 한다. 정당법 제2조에 따르면 정당은 ‘국민의 이익을 위하여 책임 있는 정치적 주장이나 정책을 추진하고 공직선거의 후보자를 추천 또는 지지함으로써 국민의 정치적 의사형성에 참여함을 목적으로 하는 국민의 자발적 조직’이다. 정당은 비슷한 정치적 이상을 지닌 시민들이 임의로 만든 조직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런데도 대한민국 헌법은 제8조에서 아래와 같이 정당을 특별하게 보호하라고 한다.

①정당의 설립은 자유이며, 복수정당제는 보장된다. ②정당은 그 목적·조직과 활동이 민주적이어야 하며, 국민의 정치적 의사형성에 참여하는데 필요한 조직을 가져야 한다. ③정당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가의 보호를 받으며, 국가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정당 운영에 필요한 자금을 보조할 수 있다.

 여기서 오늘의 주제와 직접 관련 있는 것은 ‘정당의 목적·조직·활동이 민주적이어야’ 한다는 제2항 규정이다. 정당법은 이러한 헌법의 요구를 반영해 제29조에 정당이 ‘당원의 총의를 반영하는 대의기관과 집행기관’을 설치하도록 했다. 여기까지 살펴본 바를 종합하면 결론은 분명하다. 정당의 주인은 누구인가? 말할 나위도 없이, 당원이다. 헌법과 정당법에 따르면 정당의 대의기관과 집행기관은 국민이 아니라 당원의 총의를 반영한다. 국민의 총의를 반영해야 하는 조직은 자발적 조직인 정당이 아니라 국회와 대통령을 비롯한 헌법기관이다. 정당은 당원들이 옳다고 여기는 정치적 주장과 정책을 추진하고 당원들이 지지하는 공직선거 후보를 추천하는 등의 방법으로 국민의 정치적 의사 형성에 결과적으로 기여할 뿐이다.

정치적 이상을 기준으로 보면 국민은 균질 집단이 아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정치적 이상이 다르다. 어떤 정책도 모든 국민의 동의를 얻지는 못한다. 국민은 복잡하기 짝이 없는 이질 집단이다. 그래서 헌법과 법률은 정당 설립의 자유와 복수정당제를 보장한다. 사람들이 서로 다른 정치적 이상을 지니고 서로 다른 이해관계의 맥락 안에 살면서 서로 다른 정책을 요구한다는 것을 변경할 수 없는 현실로 받아들인 것이다.

개별 정당은 국민이 아니라 당원(그 정당에 가입한 일부 국민)의 뜻에 따라 당의 지도자와 공직선거 후보를 선출한다. 당원의 정치적 이상과 요구를 반영해 강령과 당헌당규를 정한다. 헌법 제8조 2항 ‘정당의 민주적 운영’ 규정은 바로 그 이야기다. 국민 전체의 정치적 이상과 요구를 대의하려면 여러 정당이 있어야 한다. 존재하는 모든 정당이 저마다 당원의 의사를 제대로 대의하면 결과적으로 정치가 국민 전체의 뜻을 대의하게 된다. 이것이 정당정치의 기본 구조다. 민주당이나 국힘당의 주인이 국민이라는 주장은 논리적으로 성립하지 않는다. 예컨대 나는 민주당의 당원이 아니다. 나더러 민주당의 주인이라고 하지 마시라. 국힘당의 주인이 되고 싶은 마음은 더더욱 없다. 나보고 그 당의 주인이라고 하면 화를 낼 테다.

현실: 정당의 성패는 국민이 결정

정당은 선거에서 이기려고 노력한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입법권과 행정권을 장악해야 당의 정치적 이상을 효과적으로 실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선거에서 이기려면 국민의 지지를 받아야 한다. 정당의 주인은 당원이지만 정당의 성패를 좌우하는 것은 국민이라는 말이다. 정치만 그런 게 아니다. 식당도 그렇다. 식당의 성패를 결정하는 것은 주인이 아니라 소비자다. 주인이 아무리 자기네 음식이 건강에 좋고 맛있다고 주장해도 손님이 외면하면 식당은 망한다. 자기네 정책이 훌륭하다고 큰소리쳐도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하면, 그 정당은 후보를 당선시킬 수 없고 정치적 이상을 실현하지 못한다. 아무리 당원이 많고 당 조직이 거대해도 국민이 외면하면 뭍에 던져진 물고기나 다름없는 신세가 된다. 시장경제와 민주주의는 이런 점만큼은 서로 잘 어울린다.

정당은 국민과 잘 소통하고 교감할수록 선거에서 이길 가능성이 높다. 정당의 구성원 중에서 국민과 가장 가까이 있는 것이 당원이다. 그들은 자신의 일상생활 공간에서 당원 아닌 국민과 다른 정당의 지지자들을 접촉한다. 정당 외부의 여론 지형 변화를 민감하게 느낀다. 주권자인 국민의 여론은 당원을 통해 자연스럽게 정당에 스며든다. 정당의 대의기구와 집행기구가 당원의 의사를 신속 정확하게 반영하려고 노력할수록 국민의 지지를 얻을 확률이 높아진다.

대의원에서 지역위원장을 거쳐 중앙당의 간부와 최고위원까지, 당직이 높아질수록 당 밖의 시민과 어울릴 기회가 줄어든다. 직업 정치인과 정당의 고위 간부들은 깨어 있는 시간 대부분을 같은 정당 사람과 지지자들을 만나는 데 쓴다. 국회의원은 더 심하다. 그래서 그들이 뽑은 원내대표나 국회의장을 일반당원과 지지자와 국민들은 마땅치 않게 여기기도 한다. 대의원에게만 투표권을 주어 선거를 하던 과거에는 국민에게 전혀 신뢰받지 못하는 정치인이 당대표와 최고위원 자리를 차지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정당을 민주적으로 운영하려면 헌법의 주권재민 원리를 정당 내부에 최대한 철저하게 적용해야 한다. 국회의원, 중앙당과 시도당의 당직자, 지역위원장, 대의원 등 당의 간부에게 더 큰 의사결정권을 부여할수록 국민의 뜻과 동떨어진 의사결정을 할 위험이 커진다. 당원에게 투표권을 주는 경우에도, 당원들이 일반 국민의 여론을 살피고 귀 기울이고 존중하지 않으면 비슷한 결과가 나올 수 있다.

지난번 전당대회에서 국힘당은 당규를 바꾸어 당직선거에 국민 여론을 반영하지 않았다. 유력한 당대표 후보들을 징계하거나 위협해 주저앉혔다. 그 결과 처음에는 국민 지지율뿐만 아니라 당원 지지율도 저조했던 김기현 의원이 대통령의 뜻을 내세우며 당대표가 되었다. ‘극우 본색’을 드러낸 정치인들이 최고위원회를 점령했다. 국회의원 후보 경선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진다면 국힘당은 내년 총선에서 좋지 않은 성적을 받게 될 것이다.

민주당도 문제가 없는 건 아니다. 어느 정당이든 주요 당직자와 공직선거 후보를 선출할 때는 당원 모두에게 동등한 투표권을 주는 게 바람직하다. 대의원에게 몇 십 배 큰 투표권을 부여하는 것은 민주적이라고 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국민여론에 어긋나는 선거 결과를 만들 수 있다. 당의 선거 승리를 바라는 당원들은 일반 국민의 여론의 흐름을 고려해서 투표하지만 때로는 특정한 방향의 쏠림 현상이 있을 수도 있다. 그 때문에 국민 여론과 다른 결과가 나올 위험이 있다고 판단한다면, 늘 그래온 것처럼 총선 후보 경선에 국민 여론조사 결과를 적정하게 반영하면 된다. 당원의 수가 충분히 많으면 당원투표 결과와 여론조사 결과는 수렴한다. 민주당은 충분한 수의 권리당원을 확보하고 있으니 여론조사 결과를 반영하든 하지 않든 결과적으로 큰 차이는 나지 않을 것이다.

송갑석 최고위원이나 조응천 의원을 비롯한 민주당의 소위 ‘비명계’ 또는 ‘비주류’ 정치인들은 논리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 주장을 함으로써 쓸데없는 논란을 불렀다. 나는 그들이 민주당 지도부와 국회의원과 당원들에게 이런 말을 하고 싶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당 밖의 국민여론을 살피고 존중해야 선거에서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만약 이렇게 말했다면 아무도 시비를 걸지 않았을 것이다. 논리적으로 옳고 현실적으로도 타당하기 때문이다.

송갑석 최고위원과 조응천 의원은 서은숙 최고위원이 6월 14일 페이스북에 올린 다음과 같은 요지의 글을 지금이라도 숙독하시기 바란다. “국가의 주인이 국민이듯이 당의 주인은 당원이다. 당이 더 많은 국민의 지지를 받으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도 옳다. 이 둘은 서로 대립하지 않는다. 어느 하나를 위해 다른 하나를 부정할 필요는 없다.”

정당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둘러싼 논쟁에 대해 6월에 말하고 싶었지만 민주당 일에 간섭한다고 할까봐 꾹 참았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민주당원이 아니다. 내 견해를 민주당과 엮지 말라고 해도 국힘당 사람들한테는 우이독경이다. 민주당에도 그런 사람이 있다. 그래서 또 말한다. 나는 민주당 일에 참견하는 게 아니라 칼럼니스트로서 비평을 하는 것이다. 참외밭에서 신발 끈 맨다는 소리 듣기 싫어서 한 달을 미루었다. 그러니 이젠 그런 소리 하는 이가 없기를 바란다. 민주당 일을 논평할 때마다 이런 말을 해야 한다는 것이, 스스로 생각해도 민망하고 딱하다.

출처 : 민들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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