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을 미·중전쟁이라고?
6.25전쟁을 미·중전쟁이라고?
  • 문장순
  • 승인 2023.08.03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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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한이 6.25전쟁에 대해 부르는 명칭이 다르다. 남한은 6.25전쟁, 한국전쟁 등으로, 북한은 조선전쟁, 조선해방전쟁 등으로 사용한다. 남북이 6.25전쟁에 대해서 어떻게 평가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우리는 6.25전쟁을 북한의 남침전쟁으로 공식화하고 있다. 국방부의 공식문건도 1950625일 북한군의 기습남침으로 시작되어 1953727일 휴전이 성립되기까지의 전쟁으로 명시하고 있다. 북한은 우리와 시각이 다르다. 6.25전쟁을 미국의 침략에 의해서 시작된 전쟁으로 주장한다. 북한은 미제국주의가 북한을 압살하고 세계제패야망을 실현하기 위해 조선반도를 초토화하고 무고한 민간인들을 대량 학살한 가장 야만적이고 파괴적인 전쟁으로 묘사한다. 북한은 이러한 미제국주의에 맞서 승리했다는 것이다.

같은 전쟁인데 남북한이 전쟁을 보는 관점이 이렇게 다르다. 문제는 전쟁을 얼마나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평가하느냐이다. 한때 우리 사회에서도 6.25전쟁을 국제전의 시각에서 미·소간의 대립으로 보는 이들이 있었다. 6.25전쟁 당시 남북한의 상황이 전쟁을 일으킬 능력이 부재하다면서 미·소양국이 남북한 대리전을 했다는 입장이다. , 소련의 팽창정책에 의해서 아니면 미국의 제국주의정책이 전쟁을 유발했다는 입장이다. 이러한 주장들은 1960년대 이후 미국을 비롯한 서구사회에 적지 않은 논쟁거리가 되었다. 남한에서도 미국의 제국주의 속성이 전쟁을 유발시킨 요인이라는 주장이 일부 사람들에게 받아들여 남한 내 갈등을 유발하기도 했다. 이 논리를 받아들이면 전쟁발발의 주체가 미국이나 소련이 되어 전쟁의 기원을 국제적 측면에서 찾는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에 들어오면서 6.25전쟁 기원이 밝혀지기 시작한다.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었던 후르시초프의 <회고록>, 미국의 외교기밀문서 공개 등으로 인해 북한의 남침이 명백하게 알려졌다. 특히 1990년 년대 이후 구소련이 붕괴와 함께 자료를 공개가 더해지면서 전쟁도발자가 누구인지 보다 분명하게 되었다. 이런 자료에서는 김일성이 전쟁을 위해 스탈린을 끈질기게 설득했고 마오쩌둥에게는 전쟁물자와 인적 지원을 요청한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 김일성이 스탈린의 암묵적 지원을 얻어냈고 중국의 마오쩌둥으로부터 전쟁참여를 받아낸 것이다.

그런데 얼마 전 전직 대통령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1950 미중전쟁-한국전쟁, 양강 구도의 전초전>을 국민들에게 추천했다. 그는 6.25전쟁이 국제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면서 한반도는 지금도 미·중 등의 국제적인 힘을 무시할 수 없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6.25전쟁이 국제전 성격을 띠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분명히 김일성이 남한을 사회주의화하기 위해 소련과 중국을 끌어들임으로써 미국의 참여가 이어진 국제전이다. 본질은 김일성에 의한 남침 전쟁에 국제전의 성격이 복합적으로 연결된 것이다.

6.25전쟁 당시 국제사회는 자본주의와 사회의의 대립이 잠재해있었다. 이런 국제사회의 분위기는 남북에 그대로 투영되었다. 그렇다고 미·소가 전쟁을 부추켰다고 할 수는 없다. 당시의 국제적 여건을 활용해 김일성이 남한의 사회주의화를 기도한 것이다. 김일성은 소련과 중국의 지원을 바탕으로 전쟁을 도발했던 것이다. 미국과 유엔은 남한 측에 서서 전쟁을 치른 것이다. 6.25전쟁을 미·중이나 미·소전쟁으로 규정하여 국제전쟁으로 해석한다면 6.25전쟁을 일으킨 북한의 행위는 묻힐 수 있다. 6.25전쟁은 김일성의 남한 사회주의화를 위해 도발한 것이고, 이 전쟁에 미··소 등의 개입이 이루졌음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구본원(전 통일시민대학연합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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