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8.3이 만들어 낸 어두운 그림자
북한 8.3이 만들어 낸 어두운 그림자
  • 박남숙
  • 승인 2023.08.26 22: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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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은 북한 경제위기의 상징적 단어 중 하나이다. 김정일이 직장에서 제품을 만들고 남은 부산물이나, 폐기물을 활용해 생활 소비제품을 만들도록 지시한 날이 198483일이다. 그날 이후 북한 전역에서 소비제품 만들기 운동이 일어났다. 바로 8.3 인민소비품 창조 운동이 펼쳐졌던 것이다.

경제위기가 지속해서 진행되자 8.3이란 용어의 쓰임새가 더욱 확장되고 있다. 일부 주민들이 직장에서 월급을 받을 수 없게 되자 각자 자력갱생의 길을 나섰다. 그러나 공장이나 기업소를 이탈할 수 없는 환경이다. 그래서 한 발은 직장에, 다른 한 발은 부업을 해 먹고 살아가야 하는 처지의 노동자들이 발생했다. 장마당에서 돈을 벌어 일정 부문은 직장에 갖다주고, 나머지는 자신들의 생활비로 사용하는, 기형적인 북한 노동자들의 생활방식이다. 이런 노동자를 빗대어 8.3 노동자라고 일컫는다. 처음 8.3 용어가 등장했을 때만 해도, 경제가 어려워 자투리 재료를 이용해 소비품을 생산하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8.3 노동자가 등장했다는 것은, 북한 경제체제의 본질적인 모순이 보다 심화되었음을 나타낸다. 8.3 노동자(근로자)는 북한의 공식적인 용어는 아니다. 비공식적으로 주민들에게 통용되는 용어다, 북한 체제상 노동자가 직장에서 완전히 손을 뗄 수도 없다. 그렇다고 직장만 쳐다보며 굶어 죽을 수도 없다. 장마당을 통해 살 궁리를 찾아야만 한다. 다시 말하면 소속된 직장이 있으나 월급을 받지 못하니 장사나 부업에 치중할 수밖에 없는 노동자다. 직장에서 이탈했을 경우, 북한의 조직생활에서 이탈을 의미하고, 그렇게 되면 북한의 주민이 될 수 없다.

여기에 더해 8.3 부부라는 용어까지 등장했다. 남녀가 각자 배우자가 있지만, 장사하면서 만난 일시적인 부부를 말한다. 부부는 부부인데 8.3이라는 용어까지 사용하니 특별한 부부다. 한마디로 각자 본 남편과 본 아내가 있고, 장사할 때만 만나서 부부가 되는 불륜 부부다. 먹고 살기 위해 장사를 나선 주민들이 다른 지방에서 물건을 구해서 팔아야 하니까 한 곳에 장착할 수 없다. 물건을 떼오고 그것을 팔아야 하니 먼 거리 장사를 할 수밖에 없다.

북한은 교통이나 상업 인프라가 거의 없다. 장사할 수 있는 여건이 어렵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장사를 위해서 이동하다 보면 기차의 운행 시간은 기약도 없고 사전 안내도 없다. 그래서, 역에서 가까운 집에 짐을 부려놓고 며칠씩 대기하다 기차가 오면 타야 한다. 장사꾼들이 기차역 내 광장에서 노숙하다 보니, 절도와 강력 사건으로 온갖 문제가 끊이지 않는다. 그래서, 북한의 모든 기차역마다 생겨난 것이 대기 집이다. 대기 집은 일종의 민간 불법 숙박업소다. 대기 집은 보안원을 끼고 장사한다. 대부분 큰 방 가운데에 선을 긋고 남자 구역, 여자 구역 나누고 잠을 재운다. 하지만 8·3 부부가 묵는 대기 집 윗방이라는 독립된 특별한 공간이 있다. 여자들에게는 장사를 도와줄 남자가 필요한 경우가 많다. 좀 큰 장사를 할라치면 운전사도 필요하고, 단속반을 피해 도망도 다녀야 하니 남자의 도움이 불가피한 부문도 있다. 이래서 남녀가 함께 장사를 하다보니 불륜으로 이어진다. 이게 8.3 부부다.

자투리 제품을 이용해 소비제품을 좀 더 생산하고, 소비생활의 불편함을 줄이기 위해 등장한 8.3운동이, 이제는 불륜이나 비정상을 상징하는 용어가 되었다. 이러한 용어를 통해 북한 경제와 북한 사회가 지닌 문제를 알 수 있다. 그렇다고 마냥 바라보기에는 답답하다.

만약, 이러한 북한 체제의 모순과 부조리를 그대로 안고 통일이 된다면 이 또한 문제다. 통일 이후 체제에도 혼란이 지속될 수 있다. 이를 해소하는 기간이나 비용이 만만치 않을 것 같다. 통일을 꿈꾸는 우리로서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박남숙(전 통일시민대학연합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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