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마지막 가르침
어머니의 마지막 가르침
  • 김태웅 한국문화원연합회장
  • 승인 2023.11.28 20: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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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내게 ‘언제나 위를 보지 말고 밑을 내려다보면서 살라’고
말씀

‘효(孝)’는 아들이 노인을 업고 있는 모양을 본떠서 만들어졌다고 한
다. ‘어미 모(母)’는 여인이 무릎을 꿇고 아이에게 젖을 물리고 있는
모습을 본뜬 글자라고 한다. 어머니(母) 그리고 효(孝)라는 두 글자
는 그 모양만으로도 내 마음을 무겁게 짓누른다. 이러한 까닭에 나
는 ‘효’에 대한 원고 청탁을 여러 번 에둘러 거절했다. 내 스스로 ‘효
를 다했다’고 하기에는 부끄러운 마음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한없이
어렵고 엄격했던 아버지, 그 시절 장남으로서 당연히 지워졌던 의
무감과 책임감, 이로 인한 긴장감 속에서 나는 참 치열하게 살아왔
던 것 같다. 어머니는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날카로운 간극을 메워
주시고 언제나 나를 사랑으로 품어주시던 분이었다. 내가 낙담하고
실망할 때 따스하게 위로해주셨던 그리운 어머니, 그 어머니에 대
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어머니(1925~2011)는 내게 ‘언제나 위를 보지 말고 밑을 내려다보면서 살라’고
말씀하셨다. 돌이켜보면 어머니는 주변의 어려운 친척들과 이웃들
에게 늘 베풀면서 사시는 분이었다. 그 덕에 우리 집은 언제나 도움
을 청하러 오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귀찮고 성가실 법도 한데, 오히
려 어머니는 ‘베풀 수 있는 것이 하나님이 주신 은혜’라고 생각하시
는 것 같았다. 어머님이 돌아가시고 난 후 유품을 정리하다보니, 어
머니의 서랍 속에서는 주변의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미처 전달하지
못한 돈 봉투가 가득 나왔다. 수십 장의 봉투에는 받는 이들의 이름
이 하나하나 정성스레 쓰여있었고, 때로는 그들을 위한 기도와 염
려가 적혀있기도 하였다. 어머님이 남기고 가신 봉투에 담긴 것은
‘언제나 베풀고 살라’는 어머님의 가르침, 크나큰 사랑의 마음이었
다.
어린 시절 안방에는 커다란 금고가 있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언제
나 그 문은 열려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소년의 눈을 유혹하는 지
폐들이 가득 들어있었다. 몇 번은 열린 금고에서 슬쩍 돈을 가져가
친구들과 작은 사치를 부려보곤 했는데, 참으로 이상한 것은 시간
이 흐를수록 금고에서 돈을 마구 빼갈 수 없었던 것이었다. 어머니
가 한 번도 나를 나무란 적이 없는대도 말이다. 대신 어려운 친구들
을 보면 으레 어머니께 데려가 도와달라는 말을 함에는 주저함이
없었다. 내가 어려운 친구들을 집에 데려가 별 이야기 없이 ‘어머니
제 친구에요.’라고 한마디 하면, 묻지도 않고 그 친구들의 등록금을
흔쾌히 내어주시곤 했다. 이제와 생각 해보니 ‘정직하게 살라’는 백
마디 말보다 확실한 어머님의 가르침이셨다.

어느 죽음이 황망하지 않겠냐마는, 사랑하는 어머니는 너무나 갑작
스레 나의 곁을 떠나셨다. 내가 누워계신 어머니의 뺨에 가만히 볼
을 가져다 대었을 때, 어머니의 뺨은 너무나 차디찼다. 문득, 어머니
가 마지막으로 떠나시면서까지 사랑하는 아들에게 큰 가르침을 남
기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는 언제나 장남의 불같은 성
격을 걱정하셨다. 아들이 격분하여 화를 다스리지 못할 때면 ‘감정
에 휘둘리지 말고 냉철하여라. 혈기를 죽여라.’라는 당부를 하시곤
했다. 어머니는 차가운 뺨으로 아들에게 마지막까지 사랑의 가르침
을 주고 떠나신 것이다. 어머니의 마지막 가르침을 떠올릴 때마다
나는 마음이 먹먹해진다.
이어령 선생은 ‘우리가 감쪽같이 덮어둔 것. 그것은 죽음’이라고 하
였다. 아마 나에게는 어머니의 죽음이 언제까지나 철저히 덮어두고
마주하고 싶지 않은 것이었는지 모르겠다. 어머니가 떠나신 지 벌
써 십 년이 훌쩍 넘었지만, 세월이 지날수록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과 아쉬움은 커져만 간다. 나 역시 아버지가 되고 자식의 자식을 보
는 나이가 되면서 이제야 ‘효(孝)’에 대한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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