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상병에게 보내는 편지'가 문단에 잔잔한 감동 줘
'채상병에게 보내는 편지'가 문단에 잔잔한 감동 줘
  • 대구경제
  • 승인 2024.01.29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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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은혜씨의 2023 도남백일장 장원 입선한 작품이 지역 문예지 [한내]에 게재

현대 국문학계 거두이자 지성의 사표로 추앙받는 도남 조윤재박사를 기리는 2023년 도남백일장에 '채상병에게 보내는 편지'가 장원 입선했으며 이를 경상북도 예천에서 발행하는 지역 문예지 [한내]에 게재 됐다. 

1980년대초 부터 국내에서 보기드물게 지역에서 꾸준히 발행되는 문예지 '한내' 표지 

 

아래는 전문이다.

전은혜

제목: 채 상병에게 보내는 편지

2023년 7월 20일, 자정이 넘어선 시간이었다. 헬기 소리가 심장을 깨웠다.

‘찾았나보다!’

어쩐 일인가 싶어 뉴스보다 소식이 빠른 지역 맘카페에 접속했다.

‘실종 해병대원 발견해 인양중… 심정지 상태’

안도와 슬픔이 동시에 온몸을 휘감았다.

채 상병이 발견되던 그 날, 예천의 엄마들은 저마다의 목소리로 함께 울었다.

‘하늘도 무심하시지.’

‘헬기 소리가 이렇게 마음이 아릴 수가 없네요.’

‘마음이 너무 아파요. 기적이 일어났으면 좋겠어요.’

‘제발 살아서 돌아와 주길 하루 종일 빌었는데 하늘이 원망스럽습니다.’

나는 채 상병의 심장이 기적처럼 힘차게 뛰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자연 재해 앞에서 힘이 없는 게 인간의 한계라지만, 희망을 바랐다.

채 상병이 실종되던 그날은 모처럼 남편과 점심 식사 약속이 있던 날이었다. 산사태 소식으로 참담한 마음이 채 가시기도 전에 실종자들을 수색하던 해병대원의 실종이라니, 그 날의 끼니는 참 불편했다. 채상병과 그를 찾는 장병들을 생각하니, 끼니를 해결하는 것조차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무거운 마음으로 식당으로 향하던 길에는 동료를 잃은 해병대 장병들이 있었다. 그들은 세차게 흐르는 내성천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애가 탔다. 내가 그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상담 현장에서 일하는 상담사다. 때문에 더더욱 많은 삶의 재난, 재해를 조우하곤 한다. 삶이라는 여정은 크고 작은 재난을 마주하는 길이다. 그 재난의 크기는 남이 볼 때 작아 보이더라도, 상대적인지라 영혼은 바사삭 부서질 수가 있다.

나는 작년에는 이태원 참사로 국민들의 심리 지원을 위한 상담 활동을 했다. 일주일에 세 시간, 그렇게 두 달. 나는 시간을 비워뒀다. 언제 걸려 올지 모르는 상담 전화를 받기 위해 상담실에서 대기했다. 이제 와서 하는 이야기인데 전화는 단 한 통도 걸려 오지 않았다. 이때도 역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아마도 피해자들에게는 사고 이후 책임자의 진정성 있는 사과와 사고 원인 규명, 그리고 성의 있는 대책 마련이 우선이었을 것이다. 애도는 그 다음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학회의 상담사들은 흘러가는 상황을 지켜보며 마음을 함께했다. 겨우, 마음뿐이었지만 어쩌면 재난이나 재해를 입은 피해자들을 위해서 할 수 있는 것은 마음을 보태는 것이 시작인지도 모른다. 마음을 보탠다는 것은 피해자에게 비판과 비난의 방향을 두지 않고 일의 근본을 함께 바라보는 것이다. 애도의 출발은 함께 바라보는 데 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런데 간혹 어떤 사람들은 사회적으로 재난, 재해가 발생했을 때 책임자가 아닌 피해자를 책망하곤 한다. 처음에는 재난 소식에 충격을 받고 어쩌다가 이런 일이 일어났냐고 상황을 알아보며 원망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 피해자에게 ‘그러게 왜 거길 갔냐. 누가 가라고 시켰나.’라며 비난을 하기도 한다. 생존자들과 유가족들은 억장이 무너진다. 우리는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피해자의 입장에서 필요한 것을 생각해보아야 한다.

직업전선에서나 어디서나 이제 재해가 거창한 일, 뜬구름 잡는 것처럼 다가오지 않는다. 두 아이를 낳고 난 후에는 더 그랬다. 어떤 재해가 발생하면, 나는 항상 ‘내 아이가 그곳에 있었을 수도 있다.’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비판과 비난의 방향이 반대로 가지 않도록 마음을 보탠다. 비판과 비난의 방향은 피해자와 유가족이 아니니까. 진짜 책임자를 찾아내고 원인을 밝혀 다시는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故 채 상병에게, 서툰 마음을 보태본다.

채 상병에게.

저는 예천에 살고 있는 평범한 엄마입니다.

저는 어린 딸과 아들을 키우고 있습니다.

장갑차도 버거워한 물살에 구명조끼도 없이 수색 작업을 하다가 허망하게 떠나간 소식을 접하고 우리는 정말 많이 슬퍼했습니다.

지금도 가슴이 미어집니다.

채 상병님의 일이 곧 우리의 일이라고 생각하며

다시는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제가 있는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끝까지 하겠습니다.

저는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보내기 위해 평일이면 매일 내성천 다리를 지납니다.

다리를 건널 때마다 그 날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늘 이야기 합니다.

미안합니다.

잊지 않고 기억할게요.

그 곳에서는 편안하길 바라요.

그 곳에서는 편안하길 바라요.

그 곳에서는 편안하길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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