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 그리고 통일을 기다리는 마음
탈북 그리고 통일을 기다리는 마음
  • 대구경제
  • 승인 2024.03.06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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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 시대가 시작되었고 이 시기 대대적인 탈북이 시작되었다. 본인도 그 중에 한 사람으로 가족들하고 이별하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사실 북한을 나설 때 특별한 계획을 가지고 있었던것은 아니었다. 우연히 북한에서 중국으로 건너가게 되었고 선교하는 남한 대학생들을 만나면서 나의 삶의 전환을 가져왔다.

그 남한 대학생들과 종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앞으로의 희망에 대한 꿈을 꾸기 시작했다. 20대 초반 이었던 본인은 앞으로 무엇을 하면서 살아야 할 것인가를 고민했다. 그때 만난 대학생들은 나와는 달리 자유분방했고, 삶의 비전이 있었고 경제적으로도 여유가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약간은 반신반의하면서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환상을 갖기 시작했다. 우여곡절 끝에 남한으로 오게 되었다.

그렇게 남한으로 온 첫날에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환상은 사라지기 시작했다. 모든 게 생소했다. 새롭게 살아가야 할 삶이 두려움으로 몰려왔다. 남한에서 나를 기다리는 새로운 지역과 사람들, 문화가 생소하기만 했다. 20년 가까이 가족과 함께 보내다가 처음 혼자서, 그것도 남한에서 삶은 나에겐 무인도에 버려진 느낌이라 할까? 그런 두려움도 잠시다.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무엇인가를 해야 했다. 남한에 관광 온 것이 아니라 여기서 뿌리를 내리고 살아야 하기에 대학을 가려고 원서를 접수하고 기다렸다. 대학 입학 소식과 함께 새롭게 만날 친구, 교수님들과 대학 생활이 기다려졌다.

대학에 가는 첫날 설레는 마음으로 교실로 들어가서 강의를 기다렸다. 드디어 강의가 시작되었다. 그런데 강의 내용을 알아들을 수 없다. 한국말이 아닌 영어로 강의를 했다. 북한에서 러시어를 전공 하였던 나에게는 당황한 시간이었다. 내가 지금 어디에 왔지? 여기가 어디지? 나의 정체성이 흔들리기 시작했고 이 공부를 할 수 있을까? 갈등이 오는 순간들이었다. 하지만 포기할 수 없었던 것은 여기에서 멈추면 모든 삶을 포기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에 버티어야 했고 이겨내야 했다. 악착같이 노력했다. 영어 과외를 받으면서 하루 3시간 자면서 공부를 했다. 그렇게 1년을 보냈다.

2학년 들어서면서 학교생활에 적응하면서 친구들과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여유가 조금 생겼다.  어느 날 군대에서 제대하고 편입한 동료가 나에게 물었다. 너는 “6.25 전쟁‘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나는 한마디 망설임도 없이 ”6.25 전쟁“은 북한 주민이 다 자는 새벽에 한국에 먼저 전쟁을 일으켜서 북한은 많은 사람이 죽고 가족과 이별하는 아픔의 역사라고 북한에서 배운데로 이야기했다. 그 친구는 틀린 것을 당당하게 말하는 나를 어이없이 쳐다보더니 ”6.25 전쟁“에 대한 공부를 다시 하고 와서 대화하자고 하였다.

나는 그 친구가 틀렸다는 것을 증명해주려고 ”6.25 전쟁“에 관한 자료를 찾아보았다. 하지만 나는 먹먹해지기 시작했다. 북한에서 배운 교육이 정말 거짓이었다고? 믿을 수가 없었다. 북한에서 받은 교육이 어떤 것인지를 알게 된 시간은 그렇게 길지 않았다. 북한은 역사만 아니라 모든 교육을 왜곡하여 어릴 때부터 당과 국가에 복종하는 수동적인 사람으로 만든다. 지금 돌아보면 나도 능동적인 삶을 살아 본 적이 없다. 북한의 왜곡되고 폐쇄적인 교육을 받아온 우리의 삶은 한국 와서도 무엇을 선택하는데 어려움과 갈등의 시간을 주기도 하였다.

어릴 때 북한에서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를 참 많이도 불렀다. 어린 마음은 노래만 부르면 통일이 된다고 생각하고 열심히 불렀다. 이제는 고향과 부모님, 통일의 노래를 부르던 친구들의 그리움도 추억으로 멀어져만 간다. 안타깝다. 그래도 통일이 되었으면, 내 마음속 한 켠에 남아 있는 소망 하나가 이루어질 것이라는 믿음으로 살아간다.

김순복(대경통일교육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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