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경영 무소속 벨트’ 도태우 최경환 김장주 파란 일으킬까?
‘대경영 무소속 벨트’ 도태우 최경환 김장주 파란 일으킬까?
  • 김보리 기자
  • 승인 2024.03.18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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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밭길 속에 꽃 찾는 '무소속의 정치학'

역대 국회의원 지역구 선거에 무소속으로 당선된 사례는 가뭄에 콩 나듯이 간헐적으로 있어 왔다. 선거에서는 후보 구도 등 지역구 상황, 전국 총선 분위기, 무소속 후보의 캠페인 역량, 상대 후보의 경쟁력과 캠페인 능력 등 복합적인 요소에 의해 표가 좌우 되므로 무소속 후보도 선전할 수도 있다.

도태우 최경환 김장주 국회의원 예비후보
도태우 최경환 김장주 국회의원 예비후보

 


지난 4년 전 제21대 총선(2020년)에서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가 후신인 미래통합당 공천에 반발해 무소속으로 평생 수성구와 접촉이 전무 했을 대구수성을구에 출마해 당선된 것이 대표적이다. 그 앞서 20대 총선(2016년)에서는 대구에서 3명이 무소속으로 당선되는 돌풍을 일으켰다. 국민의힘 전신인 새누리당의 이른바 ‘유승민 파동’으로 탈당한 유승민 의원이 무소속으로 대구동을구에, 다선의원 배제로 공천을 받지 못한 주호영 의원이 탈당해 수성을구에, 더불어민주당 공천에서 탈락한 홍의락 후보가 그들이다.

18대(2008년) 총선에서 재경부 차관을 지낸 김광림 전 세명대 총장이 무소속으로 안동에서 한나라당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는데, 안동김씨와 안동권씨 문중 공천(?)에 힘입었고, 전국적 무소속 바람도 일조했다(무소속 25명이 탄생). 당시 한나라당 낙천한 ‘친박(친박근혜)계’가 대거 탈당, ‘친박 무소속 연대’로 출마를 강행한 데 따른 것이었다.

영주영양봉화에서 야당인 민한당 신민당으로 2선을 한 홍사덕씨가 15대 총선(1996년)에서 서울강남을구에 무소속으로 4선 의원이 됐다.

타 지역이지만,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마지막 선거 위력 여부로 전국적 이목을 끈 19대(2012년) 총선에서도 무소속 바람이 일었다. 전남 무안신안구 이윤석 무소속 후보가 30.89%로 승리를 거머쥐었는데, DJ 및 이휘호 여사의 아들 김홍업 무소속 후보(30.22%)와 전라권 패권 정당인 민주당 황호순 후보(29.32%)와의 박빙 선거에서다.

최다득표자만 당선되는 1구 1인을 선출하는 소선거구제에서 무소속으로 당선되기는 쉽지 않다. 양당제가 정착된 3공화정 헌법 체제 이후는 그렇다. 무소속은 제헌 헌법을 제정한 제1대(1948년) 총선에서 200개 의석 중 85석, 제2대(1950) 총선은 204석 가운데 124석, 202석을 선출한 3대(1954) 총선은 70석을 차지했다.

무소속은 제4대 총선부터는 정당 중심으로 정치가 정착되면서 무소속 당선자의 숫자가 조금씩 줄어들었으며, 제6, 7, 8대 총선에서는 아예 입후보 자격의 정당추천 제한 등의 이유로 무소속이 있을 수 없었다.

1구 2인제였던 유신헌법 아래 1973년 제9대 총선에서 모두 19명의 무소속 후보가 당선된 이후 1985년 12대 총선까지 꾸준히 ‘무소속 계보’가 이어졌다. 21세기 들어서서는 16대 총선 5명, 17대 총선 2명에 그쳤고, 19대 총선에서는 3명의 무소속 의원만 탄생했다.

민주주의정치는 정당이 상수(常數)로 존재해야만 하는 원론은 놔두고서라도 거대 양당제가 주도하는 한국의 선거판에서 무소속은 선거공학적으로 승산이 매우 적다. 초반 선거에서는 끗발이 있지만 갈수록 표의 뭉치가 적어지기 일쑤다. 하지만 거대 양당을 제치고 단기필마인 무소속으로 당선되는 경우 향후 정치적 입지는 순탄하다.

저마다 나름대로 갈고 닦아온 도태우 최경환 김장주 후보가 국민의힘 당권파의 공천장을 받지 못한 범 보수계 로서 대구(중남)-경산-영천청도 선거구, 즉 ‘대경영 무소속 벨트’에서 유권자의 선택을 받아 선전 할지 여부가 자못 관심 포인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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