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분권 시대 지방선거 공천과정에 대한 언론의 역할
지방분권 시대 지방선거 공천과정에 대한 언론의 역할
  • 주필
  • 승인 2018.07.27 12:5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또 지방선거는 지나갔다.

여전히 선거과정은 엉망이고 정치혐오가 넘쳐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권력은 본질적으로 나랏돈을 어디에 어떻게 쓸 것인가를 결정한다. 어떤 정치권력이 들어서느냐에 따라 나라의 운명이 달라지고, 지방정부가 가는 방향이 갈린다.

그것이 선거결과에 따라 달라진다고 하니, 선거가 중요할 수밖에 없다.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여당이 압도적인 승리를 거뒀다. 여당은 지방분권 개헌을 외치고 있다. 지방정부에 더 많은 예산과 권한을 줘서 지방자치를 강화하자는 내용이다.

지방분권 시대가 도래하는 만큼 지방정부와 지방선거의 중요성이 더 커진다고 할 수 있다.

필자는 매일경제 정치부 차장으로 김영삼 정권 때 정당팀장, 국회반장으로 국회를 출입했다. 정치부 기자였지만 정치현실, 특히 선거현장을 취재할 기회는 드물었다.

지난 연말, 알리고 뉴스라는 인터넷 1인 미디어를 창간하고 취재를 하면서 비로소 지역에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문제들이 눈에 들어왔다.

1. 2014년 지방선거 때 현장에서 눈이 열려

지난 2014년, 지방선거 때 모 군수 후보의 후원회장을 하면서 숨은 선거참모로 3개월간 혼신의 힘을 기울였던 일도 눈을 열어주는데 도움이 됐다.

지난 2016년, 총선 때 필자의 출신지역인 상주에서 6개월간 지역을 누비면서 직접 선거운동을 해본 것도 '숨겨진 진실'을 보는데 도움이 되었다.

이즈음에 지방선거 현실에 대한 두 가지를 짚고 넘어가고자 한다.

첫째, 공천 문제다. 광역단체장은 이제 공개적인 경선을 거치지 않고 후보가 될 방법이 없어졌다.

기초단체장부터가 문제다. 광역의원과 기초의원으로 가면 엉망이다.

지역 국회의원이나 당협위원장이 공천과정에서 별의별 재주를 다 피운다.

둘째, 아직도 돈 선거가 통한다는 점이다.

인구 5만 명도 안 되는 지방 선거구에서는 실제로 투표하는 유권자가 1만5,000명 정도다. 서로 잘 아는 사이인데다 유권자의 움직임이 빤히 보인다는 게 화근이다.

패싸움 하듯이 맞붙어서 돈으로 표를 사들이는 행태가 아직도 존재한다는 점이다.

이 글에서는 공천문제만을 집중적으로 다뤄보고자 한다.

돈 선거에 대해서는 아직껏 처방을 모색하는 중이고, 마땅한 대안을 잡아내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글에서는 공천과정에서 실제로 벌어지는 일들을 나름대로 정리하고, 이런 문제에 대해 언론이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 것인지,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 대안을 제시하고, 이에 대한 비판과 의견을 구하고자 한다.

2. 공천의 지리한 문제점

1) 잠재적 경쟁자는 싹을 잘라야

내가 관찰한 기초단체장 공천과정은 기왕에 언론에 노출된 것보다 지역 국회의원이나 당협위원장의 횡포가 심했다. 우선 자유한국당의 지지도가 압도적이라고 믿고 있는 대구경북에서는 유권자의 막무가내식 지지가 배경이 된다.

자유한국당 중앙당이 대구경북지역에서 공천관리위원회 운영 원칙을 지역 국회의원과 당협위원장의 책임 아래 공천을 일임한 것도 한몫을 했다.

대구의 한 지역구에서는 박근혜 정권에서 청와대에 근무하다가 공천을 받아 내려온 초선의 지역 국회의원이 주민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기초단체장과 반목으로 아예 현직은 공천에서 제외한다는 전제에서 출발했다.

3명의 예비후보 중에서 가장 지지도가 높은 후보도 제외됐다.

무소속으로 출마해 시의원 3선 경력을 쌓은 후보는 20년간 정치에 매진한 50대 중반의 견실하고 노련한 실력자였다. 지역기반도 탄탄했다.

마침 "아무개는 돈도 없이 정치를 하려 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국회의원은 지지도가 이 후보의 절반 정도에 불과한 다른 예비후보를 데리고 다니면서 적임이라고 공개적으로 떠들었다.

막상 단수추천으로 공천관리위에 올린 인물은 두 번째 후보에 비해 지지율이 절반도 안 되는 제3의 초선 시의원이었다.

지역 토호인 초선 시의원은 재산이 많다고 소문난 사람이다.

현직을 포함해서 모두 4명이 경선신청을 했지만 경선은 없었다.

경력이나 자질로 따져서 최하위인 예비후보가 공천을 받은 것이다.

2)'정치적 차액' 챙기기에 급급

지역 국회의원은 2년 뒤로 다가온 총선을 염두에 두고 자신에게 대립각을 세우는 현직을 배제하고 지역 내에서 실력과 경륜을 쌓은 유력한 정치인도 제외시켰다.

최저 수준을 선택함으로써 그로부터 발생하는 '정치적 차액'을 먼저 챙긴 것으로 보인다. 현직 기초단체장이 탈당해서 무소속으로 출마하고, 지지도가 가장 높던 3선의 전 시의원도 탈당해서 무소속으로 출마해서 3파전으로 전개된 실제 선거운동에서는 이변이 속출했다.

공식선거운동 개시를 앞두고, 실력도 없고 지지기반도 없어 정치신인에 가까운 자유한국당 후보가 3선의 현직 단체장을 맹추격해서 오차범위 내 접전을 벌이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면 현직 단체장을 앞지를 분위기였다. 자유한국당 후보가 무소속 2명과 맞붙은 탓도 있었다. 지지율을 3분했던 3선의 전 시의원이 밀리는 형국이었다.

급기야 3선의 전 시의원이 현직 단체장과 무소속 단일화를 선언하는 극적인 일이 벌어졌다. 결국은 현직 단체장이 자유한국당 후보를 누르고 3선에 성공했다.

대구에서 유일하게 무소속이 자유한국당 후보를 제낀 케이스가 됐다.

박근혜 정권 때 청와대에서 근무하다 내려와 국회의원이 된 또 다른 지역구에서도 꼭 같은 일이 반복됐다. 유력후보를 배제하고 지지도 낮은 예비후보를 경선 없이 단수 추천했다. 유력후보는 자유한국당을 탈당하고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무소속 후보까지 힘겨운 3파전 끝에 자유한국당 후보가 당선되기는 했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추격에 시달렸다.

경북에서도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3)컷오프 규정으로 현역 도려내기

3선에 도전하는 재선의 현직 단체장은 지역 국회의원에게 잠재적인 경쟁자다.

경선을 하더라도 현직 단체장을 컷오프해서 잘라내고 조무래기들끼리 경선을 붙였다.

컷오프의 기준은 중앙당이 제시한 교체지수다.

자유한국당 정당지지율을 조사하고, 현직 단체장의 지지율을 비교해서 당 지지율의 70%에 못 미치면, 소위 말해서 교체지수가 높다고 보는 것이다.

바로 컷오프 대상이 된다. 정당지지율이 70%가 넘는 경북에서는 이 기준을 적용하면 거의 모든 단체장이 교체대상이다.

김석기 경북도당위원장은 이 같은 사정을 감안해 당지지율의 65%에 못 미치는 경우에 컷오프를 적용하겠다고 중앙당이 내려준 기준을 완화했다.

김 위원장은 자신의 지역구에서 이 규정을 적용해 최양식 현직 경주시장을 컷오프로 잘라내고 경선을 벌인 끝에 주낙영 전 경북도 행정부지사를 공천했지만, 최 시장의 무소속 출마로 곤욕을 치렀다.

곳곳에서 당원들을 데리고 집단탈당하는 풍경이 이어졌고 무소속으로 출마한 현역 단체장들이 자유한국당을 괴롭혔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공천을 둘러싼 이 같은 자유한국당 내부의 분란이 당을 몰락의 길로 이끌었다는 정황을 부인하기 어렵다.

4)광역의원과 기초의원 공천은 그야말로 사천(私薦)의 향연

당에 대한 기여도나 자질과 경력은 불문하고 '정치적 차액'이 큰 사람들이 선택되었다. 경선은 아주 드문 일이 되었다.

대구시당이나 경북도당의 공천관리위원회가 광역의원이나 기초의원 공천에 간섭하는 일은 예외적인 경우에 불과했다. 중앙당의 지침이 지역사정을 잘 아는 지역 국회의원과 당협위원장이 책임지고 공천하는 것이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여하튼 이번 지방선거에서 적어도 자유한국당의 광역의원과 기초의원 공천은 지역 국회의원이나 당협위원장의 손아귀에서 이뤄졌다.

5)기초의원은 동네 양아치 수준으로 추락

예컨대 초선 구의원인 박모 씨 는 시의원에 도전할 것인가, 구의원 재선에 도전할 것인가 하는 고민 속에 공천을 앞두고 지역 국회의원과 수차례 만났다.

그러나 아무런 확답을 얻지 못하고 결국 경선과정도 없이 시의원 공천에서 탈락하고 말았다. 무소속으로 구의원 재선에 도전했으나 7명 중 꼴찌 득표에 머무는 수모를 당했다.

이런 과정을 겪으면서 자유한국당의 공천을 받아 당선되는 구의원과 시의원의 수준이 동네 양아치 수준까지 추락하고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지역 국회의원이 젊은 정치인들을 찾아내서 제대로 된 일꾼으로 키워야할 사람들을 선택하기보다는 자신에게 유리한 상황을 엮어내기에 급급한 나머지 최악을 선택을 거듭한다는 말이다. 기초의원은 아예 없애버려야 한다는 얘기가 끊임없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지방선거에서 자유한국당의 참패를 지켜보면서 대구가 보수의 본산이니 어쩌니 하는 수사가 어이없기도 하다. 그나마 자유한국당의 공천을 둘러싼 행태가 자세히 알려지지 않아서 그런 말이 나오겠거니 하는 심정이었다.

원고 작성 중에 뉴스로 날아든 '자유한국당 중앙당 해체' 소식이 그래서 당연히 올 것이 왔구나하는 덤덤한 느낌이었다. 여기서 정당의 공천제도와 관련해서 제안하고 싶은 것은 두 가지다.

3. 공천의 문제점에 대한 대안

첫째, 문제가 없지는 않지만 정당의 모든 공천을 경선으로 해결하자는 것이다.

정당의 기초단체장 후보는 반드시 경선을 통해서 결정하자는 입장이다.

지방자치의 심화로 지방정부의 역할이 더 커진다고 한다면, 자치단체장의 성향이나 정책공약이 지역주민들에게 더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지역 국회의원이 정치적인 이해관계나 사적인 이익을 위해서 공천을 할 사안이 아닌 셈이다. 지역 주민들은 최소한 4년 동안 그 자치단체장의 영향권 아래서 겪어내야 하는 운명이 주어진다.

그런 자치단체장의 정당 공천을 지역구 국회의원의 심기에 따라 좌지우지 당할 수는 없다고 본다.

기초의원과 광역의원도 마찬가지다.

지역 국회의원이나 당협위원장의 변덕과 이해관계에 엮어서 휘둘리는 자리로 만들어서 유능한 인재들이 채워지지 않는 상황으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선거과정을 관리하는 선거관리위원회가 공직자선거법의 엄격한 규정 안에 포함되어있는 경선과정을 직접 관리하도록 했으면 하는 것이 필자의 의견이다.

현재 대부분의 선거비용을 사실상 국가가 부담하고 있다.

공천을 위한 경선도 세부적인 규정을 세워서 선관위가 관리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보는 셈이다. 당연히 비용도 선거경비와 같이 국가가 부담해서 공적인 과정으로 꾸려갈 필요가 있다.

정당이 전략공천을 할 수도 있다.

개별 국회의원이나 당협위원장의 책임과 결정이 아니라, 정당 차원의 전략공천을 막을 수는 없다. 정당 차원의 전략공천은 공개적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고 그에 대한 평가도 공개적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별 문제 될 것이 없다고 본다.

다만, 정당의 일반적인 공천은 경선을 원칙으로 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일정한 규정에 의해 공적으로 관리되는 경선만으로 많은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본다.

둘째, 언론을 중심으로 후보를 평가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후보평가가 거창한 것은 아니다. 지역단위의 평가위원회를 구성해서 그야말로 "그 사람이 그런 일을 맡을 수 있을 만한지?" 짚어보자는 제안이다.

필자는 2006년, 당시 대구의 특정 그룹에 의해 좌지우지 되던 시장후보 공천에 대해 시민평가를 제안하고 실천에 옮긴 적이 있었다.

필자가 속해 있던 정부학회에 제안해서 시장출마예정자 전원을 정성 평가할 것을 촉구하고, 이를 근거로 대구경북혁신협의회(회장 이종현 경북대 공대교수)로 부터 지역혁신프로젝트로 예산을 배정받아 시민단체와 대학교수 등 전문가로 구성된 준비위원회를 발족시키고, 수차례 회의를 진행했다.

전문가들이 시장출마예정자의 행정능력과 경영능력, 정치력, 소통능력, 청렴도 등을 분석할 시스템을 구축하고, 실제 평가를 위한 시민평가단을 구성하기로 했다.

시민평가단이 개별 항목에 대해 점수를 매겨서 그 결과를 언론에 공개하기로 한 것이다. 이를 진행하던 중에 당시 회의에 참석했던 기자협회 지회장의 반대와 불참선언, 시민단체의 뜻하지 않은 보이콧에 가로막혀 실제 집행이 무산되는 경험을 했다.

나중에 특정 그룹의 사주에 의한 조직적인 방해였다는 사실을 알게 됐지만, 당시 지역기반이 취약했던 필자는 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특정 정당의 대구시장 후보 공천문제는 2014년 경선이 도입되면서 일거에 해결됐다. 출마예정자에 대한 평가시스템은 공천 경선의 보조적인 성격을 지닌다. 유권자들에게 출마예정자에 대한 객관적 평가의 대강을 보여주고, 부적격자를 사전에 저지하는 기능을 가지게 된다.

언론은 시민평가단의 평가결과를 공개하고, 동시에 과정을 보도하면 훌륭한 감시기능을 하게 된다. 평가시스템만 구축된다면 동단위로 혹은 선거구 단위로 시민평가단을 구성하고 운영하는 일은 그리 복잡하고 어려운 일이 아니다.

더군다나 이 과정을 보도하는 언론이 뒤에 버티고 있으면 더 이상 불공정함이 발붙이기 어렵다. 이는 소규모 지역언론의 활성화에도 이바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면적인 실시가 어렵다면 일부지역에서 시범실시를 통해 과정과 결과를 점검해서 확대할 수도 있다. 시민평가단 운영은 '깜깜이 선거'로 알려진 교육감 선거에도 유용할 것으로 보인다. 시민평가단의 사전 평가를 통해 유권자들에게 판단의 기준을 제시해 줄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지방선거에서도 특히 교육감 선거에서 무효표가 많이 나왔다는 보도를 접하고 시민평가단의 운영이 필요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끝-

 

남동희 주필 프로필

전 매일경제 사회부장, 계명대학교 정책대학원 전담교수

경북대학교 법대 출신으로 행정학 박사(정책평가)를 받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