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만 터지면 묘안백태(妙案百態)?
사고만 터지면 묘안백태(妙案百態)?
  • 박종두 전 송일초등학교장
  • 승인 2018.08.08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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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가 생기면 그 문제에 초점을 두어야...새로운 방안만 찾는 것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다는 격

 옛날 초등학교 4학년을 가르칠 때였다. 과학 교과의 ‘물질의 분리’ 단원을 다 공부하고 학생들에게 문제를 던졌다. ‘우리 운동장 한 켠에 있는 씨름장에 누가 주먹만한 돌을 7개나 던져 넣었다. 어떻게 해결하면 좋겠는가?’였다. 여기저기서 온갖 해결방법이 나오다가 종국에는 ‘모래는 작고 돌을 부피가 크니까 채로 치면 된다.’는 방법에 모두 동의를 하였다. 이 단원에서 배운 물질을 분리하는 여러 방법 중 한 가지이다. 그 순간 나는 한 단원을 마쳤다는 시원한 마음보다 ‘지혜를 길러주지 못하고 오히려 쓸데없는 지식만 가르쳤구나’하는 민망감이 들었다.

‘그냥 돌 일곱 개만 주워내면 될 걸... ...’

얼마 전 동두천에서 네 살 먹은 어린이가 어린이집 등원 차량을 탔다가 친구들과 같이 내리지 못하고 폭염 속에서 혼자 방치되었다가 숨진 사고가 있었다. 주위에서 일어나는 가슴 아픈 사고가 어디 한 ․ 둘이겠느냐만 유독 이 사고는 우리를 더욱 안타깝게 하고 있다. 나중에 보니 팔이 탈골까지 되었다하니 숨이 질 때까지 혼자 안전벨트를 풀기위해 얼마나 몸부림을 쳤을까? 그 장면을 상상만 하여도 가슴이 미어진다.

지금의 매뉴얼은 어린이 차량을 운전한 운전사는 뒷좌석까지 가서 남은 어린이가 있는지 꼭 확인하고 차에서 내리도록 하고 있다.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니다. 인솔하는 교사도 그렇다. 타고 내릴 때는 언제나 숫자를 파악하는 것은 일상화된 상식이다. 설혹 인솔교사나 운전사가 이를 게을리 하여도 또 하나의 안전장치가 남아있다. 바로 아침 출석 체크이다. 담임을 맡은 교사가 7시간 뒤에야 아이를 확인하였다는 대목은 더욱 기가 막히게 한다. 모두 모이면 언제나 맨 처음 하는 일은 출석을 체크하는 일인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만일 결석을 한 어린이가 있다면 즉각 그 이유를 파악하여 출석부에 정리하도록 되어있다. 그리고는 어린이집 전체 현황판에 보고되어진다. 모이면 맨 처음 하는 일이 출석 점검이란 것은 상식이다. 그 어린이집은 운전사에서부터 담임, 심지어는 원장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안전장치가 하나도 가동되지 않았다. 운전사가 하차하기 전에 뒷 좌석까지 확인하는 매뉴얼을 몰랐다는 진술이나 인솔교사가 아이가 울어서 인원을 미쳐 확인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나 담임교사가 행사 때문에 출석을 확인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이들을 맡아 보호하는 어린이집의 종사원으로서는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이 어린이집은 기본적인 매뉴얼과 상식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으니 도저히 인가를 받은 곳이라고 보기 어렵다.

이러한 규정이 있음에도 비슷한 사고가 일어나니 많은 사람들이 재발 방지를 위해 온갖 제안을 내놓고 있다. 내 마음이나 네 마음 모두 같은 것 같다. 주로 거론되는 안을 살펴보면,

-어린이 차량에 썬팅(tinting)을 제한하여 내부가 훤히 보이게 하자는 의견에서부터,

-어린이집에 단 CCTV 시스템을 더 보완하여 언제나 부모가 실시간으로 확인을 할 수 있도록 하자는 제안도 있었다.

-모든 어린이집 수송 차량에 슬리핑 차일드 체크(sleeping child check)장치를 설치해서 운전사가 뒷좌석까지 가야 시동을 끌 수 있도록 하여 그 과정에서 혹시 차에 남아 잠이 든 어린이를 확인할 수 있도록 하자는 안까지 쏟아져 나왔다고 한다.

이 중에서도 ‘슬리핑 차일드 체크’에 의견이 모아지는 것 같다. 또 다른 안은 어린이의 옷이나 가방에 칩을 달아 등 ‧ 하원 여부를 자동으로 파악할 수 있게 하자는 안도 거론되고 있다. 모두 남의 일 같지 않으니 답답한 마음에서 출발하였다. 어떻게 하든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로 인한 안타까운 일은 다시는 일어나지 않아야겠다.

대통령께서도 이 사안에 관심을 갖고 언급하셨으니 조만간 어떤 안이 어떤 형태로든 마련될 것 같다. 그러나 이러한 수많은 안들이 나와도 나는 불안한 마음을 지울 수 없다. 지금의 매뉴얼로는 이러한 불행한 일을 막을 수는 없을까? 자칫 뱀 다리를 그리는 우를 범하지 않을까 우려 된다. 운전자가 차량의 문을 잠글 때 뒷좌석까지 확인하는 일이 크게 어렵거나 번거롭지 않고 아직 내리지 않은 아이를 찾는 것이 길에서 바늘을 찾는 일만큼 어려운 일도 아니다. 다만 관심과 책임감이 부족하였기 때문이다. 책임감이 없는 운전사에게 책임감을 가지도록 하는 방안은 마련하지 않고 새로운 장치나 매뉴얼만 만들어진다면 일을 더 어렵게 하지 않을까하는 노파심이 생긴다. 더 복잡한 매뉴얼을 만들어 오히려 기본이 소홀해질까 우려된다.

많은 사람들이 입을 모으는 슬리핑 차일드 체크(sleeping child check)장치를 도입한다면 과연 효과가 있을까? 뒷좌석에 마련된 시동을 끄기 위해 버턴을 누르는 데에만 관심이 있지 좌우를 제대로 살피겠는가? 어린이들의 옷이나 가방에 칩을 다는 방안도 왠지 신뢰가 가지 않는다. 외국에서도 도입된 사례가 있다고 하지만 우리 환경에는 맞지 않은 것 같다. 과연 모든 어린이들이 언제나 부착하고 다닐까? 그러한 장치만 믿고 오히려 종사원 각자가 해야 할 일을 소홀히 할까 걱정된다.

문제가 생기면 그 문제에 초점을 두어야 하지 그것은 접어두고 새로운 방안만 찾는 것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다는 격과 같다.

다시 이야기 하지만 이 문제의 초점은 무엇보다 관련된 사람들의 소명의식과 책임감이다. 이번 일은 운전사가 하차하면서 뒷좌석까지 살피지 않았던 일에서부터, 인솔교사의 인원 점검 생략, 담임교사의 출석확인과 원장의 어린이집 운영 체계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어느 한 사람 제 역할을 한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안타까운 사례가 이번에 처음 있는 일이 아니다. 그 사고 이후 지금까지 어린이집 관련자들에 대한 안전교육을 강화하지도 않았다. 벌칙도 강화하지 않았다. 어떻게 소명의식이 높아지고 책임감이 강화되겠는가? 자꾸 새로운 방안을 찾기보다는 어린이집 종사자들 즉 원장에서부터 운전사에 이르기까지 어린이 안전에 대한 소명의식과 책임감을 강화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먼저이다. 기본이 안 통하면 다른 방안도 통할 리 없다.

그 옛날 4학년을 담임하였을 때 과학 시간 생각이 난다. 그냥 돌만 주워내면 되는데... ....

박종두(대구경제 청소년보호책임자) 전 대구 송일초등학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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