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것이 기적, 脫北入南女의 만리 야화 - 18 북한 사람
살아있는 것이 기적, 脫北入南女의 만리 야화 - 18 북한 사람
  • 이향단
  • 승인 2018.08.17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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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보다 더 소설같은 이승희(만주에서부른 이름은 이향단)의 육필수기

 

10 북한 사람이라는 이유로

인간을 궁극적으로 판단하는 기준은 그가 편안하고 안락한 순간에 있을 때의 모습이 아닌, 도전과 투쟁의 순간에 서 있을 때의 모습이다.

- 마틴 루터 킹

중국 사람들은 대부분 북한 사람들을 이유 없이 깔보고 무시한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잘 못사는 가난한 나라에서 왔다는 이유로 무시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중국에 살면서 간간히 들려오는 소리가 있다. 어느 집에서 북한 사람을 며느리로 삼았다고 한다. 시댁에 들어가서는 몇 달은 참 열심히 일을 하고 사는데 어느 순간에 사람들이 집에 없는 틈을 이용해서 그 집에 돈이며 금반지 금목걸이를 쓸 만한 건 다 가지고 달아난다는 소리가 많이 들려온다. 또 어떤 집에서는 북한 사람이 불쌍해서 집에 들여놨는데 집주인이 없는 사이에 모든 것을 다 가지고 달아났다고 한다.

내가 시댁에 들어가 처음으로 시아버님의 생신을 맞던 날이다. 그날 아침 일찍부터 시댁 친척들이 시댁으로 왔다. 그날 아침 분주하게 식사를 마치고 시댁 친척들은 조금은 의아한 눈길로 나를 본다. 시어머니가 나를 북한 사람이라고 소개하였다. 시댁 친척들은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 북한에서는 어디서 살았으며 북한에서 무슨 일을 했는지 많은 것을 물어본다. 그런데 신랑 사촌형이 나에게 말을 하면서 기분 나쁘게 반말을 한다. 물론 나보다 나이가 많다.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처음으로 보는 사람인데 반말하는 것에 나는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다. 그런데 거기에다 나에게 “마음을 곱게 먹고 이 집에서 살아.”라고 말한다. ‘나는 속으로 사람을 아주 도둑년으로 만드네.’ 하면서 생각하고 있는데 갑자기 눈에서 눈물이 울컥 쏟아진다. 나는 내가 왜 여기 앉아 이런 말을 들으면서 살아가야 하는지 원망스럽게 느껴졌다. 나도 내 부모가 계시고 내 집이 있었다면 이런 꼴은 안 볼 건데 하면서 북한 사람이라는 것이 저주스러웠다.

훗날 그 사람 남동생이 우리 시댁에 왔다가 시아버님 생신날에 있었던 일을 내게 잊어버리라는 식으로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자기가 집에 돌아가서 형한테 한마디 했다고 한다. “형님. 형님이 아무리 제수보다 나이가 많아도 제수한테 그런 식으로 말하는 것은 잘못한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고 나한테 말한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조금은 위로를 받았다.

나는 시댁에서 살면서 팬티 하나, 양말 한 켤레 욕심내 본 일이 없다. 오히려 어디 나가서 예쁜 옷을 보면 내 옷을 사기 전에 시어머니 옷부터 사고 내 옷을 사곤 했다.

우리가 시댁하고 따로 농사짓고 한 해 농사로 번 돈이 들어간 돈 다 제하고 인민페로 16,000원을 벌었다. 그때 시어머니가 나에게 하시는 말씀이 여기서 농사만 지으면서 토막이로 살아도 한 해 수입을 이만큼 버는 집이 몇 집 안 된다고 한다. 그 후로 돈 관리는 내가 하였다. 비록 중국말도 모르고 한자도 잘 모르지만 짬짬이 한자공부도 하고 그러면서 통장관리를 내가 했다. 시어머니는 말은 안 하지만 그런 내가 조금 불안했던가 보다. 시어머니는 우리 신랑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아들아 니 각시(아내) 조심해야겠다. 눈정신이 얼마나 좋은지 보통사람이 아니다.”라고 말해주더란다. 신랑이 나한테 그 이야기를 한다. 시어머니는 아들의 돈이 다 털릴까 봐 신경 쓰이는가 본다. 그런데 나는 그럴 마음이 없었다.

나는 이미 두 번째로 두만강을 건너면서 스스로와 한 약속이 있었다. 말과 행동을 잘못해서 나의 부모님 얼굴에 먹칠하는 행동은 절대 하지 않기로 약속을 했다. 이 약속은 내가 이 세상을 다하는 날까지 변함이 없을 것이다.

나는 항상 어디 나가서 좋은 것을 보면 시어머니 생각부터 한다. 여름에 서시장을 구경하는데 핑크색 옷이 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나는 저 옷을 시어머니가 입으면 예쁠 것 같아서 옷을 샀다. 그리고 그날 퇴근하면서 소영시장에 들러서 시어머니네 마을에서 사시는 분을 만나 옷을 시어머니께 전달해달라고 부탁 드렸다. 그날 저녁에 내 부탁을 받은 아주머니가 시댁에 가서 시어머니께 옷을 전해주었다. 내가 보낸 옷을 보고 시어머니가 감동을 받아 눈물을 흘리고 계시는데 큰아들이 그 광경을 보면서 엄마는 이상하다면서 뭐라고 말을 했다고 한다.

우리 시어머니는 아들 셋만 키우시다 보니 누구도 살뜰하게 뭐 사주고 그런 일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시어머니께 딸만큼은 아니더라도 섭섭하게는 하지 말아야지 늘 그런 마음뿐이다. 그런 시어머니도 나에게 하시는 말씀이 “내(시어머니) 배 아프게 낳은 자식도 아닌데 그만큼 해주는 것이 고맙다”고 하신다. 시어머니는 시집살이를 엄청 심하게 받았다고 하신다. 그러시면서 시어머니가 우리는 사이좋게 지내자고 한다. 점차 내가 시어머니께 하는 행동을 보고 시어머니 조카가 우리 시어머니에게 “아재(고모)는 늙어서 따뜻한 밥 먹으려면 둘째 며느리에게 잘해 주라.”는 말을 하더라고 시어머니는 나에게 이야기하신다. 그러시면서 이 집 내력이 모두 둘째가 어른들을 모신다고 하시면서 나도(시어머니) 둘째를 믿는다고 이야기한다.

나는 내 나름대로 열심히 산다고 사는데 한 번씩 북한 사람들에 대한 나쁜 소리를 들으면 열심히 살려고 노력하는 나도 한목(같이)에 욕을 먹는 것 같아서 나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기분이 나쁘다. 북한 사람들은 돈도 없고 힘도 없으니 불이익을 당하는 경우도 많다.

북한에서 온 여자들은 중국 남자들의 무리한 요구에 응하지 않으면 죽을 만큼 맞아가면서도 누구에게 말도 못하고 힘없이 당하기만 한다.

내가 아는 애는 미성년인데 돈을 벌겠다고 연길시 노래방에서 일을 했다. 하루에도 몇 십 번씩 해대는 남자들의 요구에 말을 듣지 않으면 가슴을 물어놓고 온몸을 긁어대고 자기들의 요구에 잘 응하지 않는다고 돈도 주지 않고 간다. 그러면 돈을 못 번다고 노래방 로반(사장)에게 또 맞고 그러면서도 갈 곳이 없어 눈물을 흘리면서 살아간다. 북한 여인들은 그 어디를 가도 인간 대접을 받지 못하고 살아간다. 한창 자라야 할 여자애들은 남자들의 성 노리개로 살아가고 있다. 달아날까 봐 노래방 로반(사장)은 옷도 입지 못하게 한다. 달아나다 잡히면 개처럼 질질 끌고 다녀도 어디에도 말도 못하는 이것이 가난한 막장에 갇힌 탈북자들의 운명이었다.

한 여인은 중국에 들어와 얼마나 성폭행을 당했는지 매독에 걸려 자궁이 썩고 있는데도 돈이 없어서 병원도 못 간다. 그 여성은 그런 몸으로 시골 남성에게 팔려갔다. 그 여성은 그 집에 들어 갈 때 매독에 대한 사실을 숨기고 들어갔다. 며칠 후 아들에게서 나타난 중상을 보고 시댁에서 여자에 대해 알게 되었다. 여자의 매독에 대한 사실을 알고 그 여성의 시댁에서는 많은 돈을 지불하고 그 여성을 치료해 주었다.

탈북여성들만 찾아 눈에 쌍심지를 켜고 다니는 조선족 인신매매 납치꾼들도 있었다. 납치꾼들은 강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북한에서 넘어오는 여성들을 잡아서 자기들의 야욕을 일삼기도 하고 그러다 싫증나면 팔아넘긴다. 여성들이 자기네 말을 안 듣고 마음에 안 들면 경찰에 신고한다. 북한 여성들은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하고 당하기만 한다. 인신매매 납치꾼들은 북한 여성들을 한 번 팔고 몇 달 있다가 경찰로 가장하고 팔았던 여자를 다시 끌어다가 다른 데로 팔아넘기는 행위도 서슴지 않는다. 납치꾼들은 탈북여성들을 하나의 돈 벌이 수단으로 이용하였다.

나도 1999년 4월에 납치꾼들에게 납치되어 악몽 같은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날 극적으로 그 곳에서 빠져나왔다. 안 그러면 그때 나도 심양에 있는 43살 장애인에게 아마도 팔려갔을 것이다.

살길 찾아 중국으로 들어와 살면서 아이를 낳고 살다가 불법체류자로 잡혀서 북한으로 북송되어 자식하고 생이별을 당하는 탈북여성들이 수 없이 많다. 지금도 곳곳에 자식과 이별하고 자식이 그리워 눈물 속에 살아가는 여성들이 많다. 거리를 가다가도 자기 자식의 나의 또래쯤 되는 아이들을 보면 멍하니 서서 눈물을 흘리면서 아이들을 바라보는 여성들을 보면 나도 함께 눈물을 흘린다.

솔론은 이렇게 말한다.

“천지가 만물을 양육함은 평등하다. 높은 자리에 있다고 해서 잘난 체해도 안 된다. 비록 보잘 것 없을지라도 너의 인생을 사랑하라. 누구나 평등하다. 법률에 의하여 보호받을 자격이 있다. 나는 저 세상에서 어떤 죄사의 기록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지 모른다.”

한 여성은 중국에서 아이를 낳고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공안에 체포되어 돌도 안 된 아이와 생이별을 하게 되었다. 아기들 울음소리만 들어도 같이 울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맞는 생일상도 못해주고 엄마 찾을 아이를 생각하며 가슴을 치며 울고 또 운다. 꼭 살아서 사랑하는 자식을 다시 만나는 그날을 위해 이를 악물고 살아간다.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아직도 수많은 탈북 여성들은 이런 가슴 아픈 고통을 겪으며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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