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실은 조만간 민정 기능을 보강할 ‘민정수석실’을 부활시킬 방침이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3일 MBC 라디오 인터뷰에서 민정수석실 설치와 관련해 “명칭은 ‘민정’ ‘민생’ ‘민정소통’ 등 버전이 있다. 대통령이 최종 결심을 하실 것”이라고 말했다.
‘민정수석실 폐지’는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지만 4·10 총선 이후 그동안 비서실의 각종 현안에 대한 여론 민정(民情) 기능의 부재가 문제라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윤 대통령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회담에서 김대중 정부에서 민정수석실을 없앴다가 2년 뒤 부활한 사례를 거론하며 야당의 이해를 요청한 바 있다.
민정수석실은 현재 비서실장 직속으로 있는 법률비서관, 공직기강비서관실이 배치되고 민심 청취 기능을 하는 새 비서관(민정비서관)이 추가될 것으로 예상된다.
윤 대통령 취임 초 대통령실은 ‘2실장(비서실·국가안보실) 5수석(정무·홍보·시민사회·경제·사회)’ 체제로 출발했다. 문재인 정부 청와대의 ‘3실장 8수석 체제’에서 정책실과 민정·일자리·인사수석을 폐지하는 축소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하지만 지난 2년간 몸집이 불어났다. 2022년 8월 윤 대통령은 부처 간 정책 조정을 담당하는 ‘정책기획수석’을 신설, 작년 11월 말 ‘3실장 6수석’ 체제로 전환했다. 정부 출범 1년 만에 정책실을 부활시키고, 그 산하에 과학기술수석 자리를 새로 만들었다. 올해 초 국가안보실에 공급망 리스크 등 경제안보 현안을 전담하는 3차장 자리를 신설, ‘1실장 2차장’에서 ‘1실장 3차장’ 체제로 확대됐다.
‘2실장 5수석’ 체제로 출범한 윤석열 정부의 대통령실이 앞으로 민정수석이 부활한다면 ‘3실장(비서실·정책실·국가안보실) 7수석(정무·홍보·시민사회·경제·사회·과학기술·민정)’ 체제로 확대 개편되는 것이다. 실장은 장관급, 수석은 차관급이다. ‘슬림화 기조’를 버리고 이전 정권 수준으로 몸집이 더 커진다.
민정수석실 설치로 ‘작지만 민첩한 조직’을 표방한 당초 윤 대통령의 슬림화 공약과 기조는 방향이 잘못된 것인가, 아니면 기관은 권한을 키우려는 속성이 있다는 가설이 입증된 것인가?.
‘87체제’ 민주화 이후 역대 대통령은 당선 전 선거를 앞두고는 저마다 대통령실을 축소 운영하겠다는 ‘슬림 조직’구호를 내세웠지만, 막상 취임 후에는 하나씩 늘려서 퇴임시 ‘비대 조직’으로 으로 만들어 놓고 떠나는 것이 반복됐다.
탈권위주의 대통령으로 제왕적 대통령의 종언을 예고한 듯한 노무현 대통령의 5년 동안 대통령비서실 조직은 정책실장과 수석이 신설되고 산하 기구가 지속적으로 확대됐다. 2006년 1월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처의 기능이 대통령비서실로 흡수되면서 통일외교안보정책실이 신설됐다. 비서실 정원은 김대중 대통령의 퇴임 당시 대비 405명에서 531명으로 126명이 늘어나 31.1% 증가했다.
유일하게 더 작아진 청와대는 이명박(MB) 정부다. 작은정부를 표방한 MB정부 비서실 정원은 노무현 대통령 퇴임 당시 대비 531명에서 456명으로 75명을 감원하여 14.1% 감소하였다.
전문가들은 대통령실 조직규모가 비대화해서는 문제가 있다는 이유로 두 가지를 든다.
우선 비대한 대통령비서실은 책임이 대통령에게 집중되면서 실패에 따른 비난의 화살도 대통령에게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22대 총선에서 여실히 증명됐다. 이로 인해 대통령은 국민 지지를 얻지 못해 집행력이 낮아지는 악순환을 노정, 임기말에는 레임덕이 오게 된다.
또 대통령 권한 규모와 정부의 권한이 내각에 더 있느냐, 대통령실에 더 있느냐 하는 통치기능 문제이다. 정부의 권한이 내각에 있어야 현실에 맞는 정책을 집행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보리 정치평론가는 “국정운영의 효율성과 순조로운 통치기능을 위해서는 장·차관, 즉 부처 중심의 국정 운영이 바람직하다”고 말한다. 민주정의 원리에도 부합한다는 것.
박 형 정치학 박사는 “대통령실은 비서 기능을 해야하는데, 비서실이 장·차관을 제치고 부처 국장들에게 상부 기관처럼 사실상 지시를 하는 행태는 효율성 면에서 부정적”이라고 지적했다. 제1공화국 후반부에는 행정부 부(副)수반격인 국무총리 제도를 없애기도 했다.
제헌헌법에서 국무회의를 ‘합의체 의결기관’으로 만들어 둔 것은 대통령을 중심으로 하되 단독 통치가 아니라 집단의 통치가 바람직하다고 본 것이다. 나중에 권위주의 정부에서 심의제로 바꿨지만, 합의와 심의는 현격한 차이다. 합의는 권한의 주체들 간의 합의하는 ‘집단 리더십’이고, 심의는 그냥 의논하는 정도로 결정권은 없이 대통령 혼자서 결정하는 ‘단독 리더십’이다.
형식이지만 수석비서관이란 권위주의적 직명보다도 미국식의 보좌관 명칭이 바람직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권한(권력)을 얻고 나면 완전한 부패는 아닐지라도 어느 정도 남용으로 이어질 위험이 늘 존재한다. 대통령실처럼 일극체제일 경우 더욱 그렇다. 제왕적 대통령실의 권한 남용은 퇴임후 항상 수사대상에 오르는 불행을 자초한다.
윤 정부 출범 당시 ‘행정부가 핵심적 정책을 수립할 수 있도록 대통령실은 조율 역할에 충실하겠다’는 초심을 돌이켜 봐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