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풍경」 (신경섭 시집)
대구시청과 내무부 관료로 오랜 공직생활을 지낸 신경섭 시인이 첫 시집 『생각의 풍경』(문학공간)을 최근 출간했다.
시적 감수성과 에너지를 숨길 수 없어, 틈틈이 시작(詩作) 활동을 했던 신경섭은 이번 시집에서 그는 ‘그곳은’을 비롯 총 90여 편의 시를 실었다. 이상규 경북대 국어교육과 명예교수는 “그가 사물을 관찰하는 시각의 위치는 중앙이나 중심부가 아니라 변두리나 모서리다. 그의 신분은 중심부이지만 그의 문학적 시각은 변두리다. 그만큼 객체를 본래대로 포착할 수 있는 순수함을 지니고 출발한 시인이”라면서 ‘생각의 풍경’이라는 시집의 제목과 같이 그의 시는 마치 객체적 서경을 표방하고 있지만 시인으로서의 강한 주체 의식을 견지하고 있어, 삶의 모든 측면에서 경계를 이루고 있다. ‘한 사회가 안고 있는 고통’의 원인인 잘못된 고정관념과 집착을 시로서 해소하는 시인의 의도가 작품 곳곳에 숨어 있다. 시인은 시로서 평온과 자유를 추구하고 있는데, 이는 이미 우리 안에 내재되어 있음을 알려주기도 한다.
어쩌면 인생의 중심부에서 떵떵거릴 수 있는 그임에도 그의 눈길과 마음은 변두리, 모서리, 가장자리로 향하고 있음을 그의 시를 읽으면 담박 눈치챌 수 있다. 신경섭 시인은 오랜 시간이 지난 이제야말로 내 경험 속의 기쁨과 슬픔을 시로 풀어낸다. 시야말로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고, 심지어 시에서만은 세월을 거슬러 갈 수 있음을 안다. 글머리에 시인의 말을 대신한 그의 시 ‘그곳은’ 전문에서 그런 시인의 마음을 밝힌다.
마음 깊이 흐르는 강/ 풀어 놓으면 어디로 갈까?/한 때 슬픔이 파고 든 곳./멈춤이 곧 기쁨이었던 곳./세월의 숲에서 무수히 뿌려진 마음 파편들./불멸의 강가에 서서/꽃잎 하나 시에 실어 흘려보낸다./그곳에 도달할 수 있다면,/역류의 물줄기 일어 다시 마주칠 수 있다면.<그곳은>전문 (문학공간, 값 13,000원)
저자 신경섭은 1964년 경북 고령에서 태어나 연세대 행정학과, 서울대 행정대학원, 미국 Syracuse대학 행정대학원을 졸업하고, 영남대에서 행정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제34회 행정고시에 합격하여 내무부, 대구시 수성구 부구청장, 대구시 녹색환경국장, 일자리경제본부장, 대구시의회 사무처장 등을 거쳤다. 2013년 ‘대구문학’으로 등단하여, 시인시대 편집위원으로 활동하였으며, 이상화기념사업회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해설: 이상규(시인, 예술평론)
신경섭 시인의 시는 철학적이고 심오한 내용을 담고 있으면서도 독자가 자신의 경험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설득력이 있다. 또한 명료한 이미지를 구사하는 재치와 철학적 원리를 일상적, 시적 언어로 풀어내려는 힘을 지니고 있다.
신경섭 시인은 2013년 『‘대구문학』시 부문 신인상으로 등단하였으며, 금번 처녀시집 「생각의 풍경」은 단순히 사물 혹은 객체에 대한 관찰의 이야기가 아니다. 시라는 ‘불멸의 강가에서 꽃잎 하나 시간의 강으로 흘려보내는’ 시간여행의 기록인 동시에, 객체에 대한 관계론적 인식과 객체에 대한 존재를 관찰한 여정의 언어로 짜여져 있다. 그의 시는 존재의 근원으로 치달아가려는 단단한 의지의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반전」이라는 작품은 이 시집 가운데 가장 시인의 사상이 잘 담겨져 있는 작품이다. 삶의 가치의 맛을 알려주는 과녁 중앙의 피를 흘리는 고통과, 화살이 덜 박히는 모서리를 대조하여 “가슴 뛰는 역사는/모서리가 다 품고 있어”라며 덜 조명 받는 객체의 서러움을 위로해주고 있다. 그가 사물을 관찰하는 시각은 중심에 위치하지 않는다. 놀라우리만큼 겸허하고 순수한 그의 눈빛은 늘 변두리나 모서리에서 객체로 향한다.
「승자」라는 작품은 신시인의 문학관이 반영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문학론에서 이념이나 정치적 관점에서 조명하는 소위 ‘민중문학적 시각’을 경계하고, “포용은/무딘 덕성으로/그 거침을/어루만져 훌륭한 조각상을 낳는다” 는 시처럼 역사 앞에 선 한국문학의 길을 이념에 매몰시키지 말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신경섭 시인은 프로이드의 의식과 무의식의 세계를 조명하기도 한다. 시인의 지각 작용을 통해 의식에 떠오르는 모든 사물은 인간의 의식이 특정한 모습으로 드러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 모순을 「달빛의 실수」라는 작품을 통해 보여준다. 본능과 자의식이 충돌되는 모습을, 흔들리는 객체의 본래 모습을 달빛의 변화에 대비시키고 있다.
신경섭 시인은 또한 객체의 실존의 모습을 규명하기 위해 끝없는 실험을 시도하고 있다. 월인천강지곡의 달과 같은 형상의 다양한 변화를 「달빛의 실수」라는 인식의 그릇에서 흔들리는 다양한 객체의 형상을 그려내려고 하고 있다.
시인은 살아오면서 늘 그어진 금 속에서만 매우 제한된 고위공직자라는 삶을 살아왔다. ‘명’과 ‘암’, ‘해’와 ‘달’, ‘나’와 ‘너’라는 객체의 경계를 허물어야 불이(不二)의 존재에 다가갈 수 있음을 알고 있다. 시인 자신과 사물은 구분되는 두 가지가 아니지만 신 시인은 늘 인식 대상과 인식 주체에 대해 생각의 끈을 놓지 않는다. 시를 쓰는 이유와 읽는 효용의 원리는 시의 창을 통해 사물과 만나고 사물의 본질을 깨닫는 방법이라고 할 수가 있다.
신경섭 시인의 생각의 풍경 속에 아주 친근하게 다가오는 작품 가운데 「모서리에 서서」라는 작품이 있다. 왜 모서리에 서서 노점상 아주머니의 글썽거리는 ‘눈매’에 시인의 의식이 멈추었을까? 반평도 되지 않는 비좁은 노점상 상인의 모습을 뜨거운 기름과 차디찬 눈물이 범벅된 일상의 풍경화 속에서 발견하고, 희망을 찾아 고통의 근본 원인을 해소하는 길을 제시하려는 의도가 ᄉᆕᆷ어있는 게 아닐까? 처녀시집으로 도형적 입체의 풍경화를 보여준 신경섭 시인의 철학적 사유가 앞으로 더 깊은 시의 경지를 열어줄 것으로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