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파병으로 중국과 어색한 관계를 유지했던 북한 김정은 위원장이 '중국인민 항일전쟁 및 세계 반파시스트 전쟁 승리 80주년(전승절 80주년)' 열병식에 참여함으로써 북·중관계 변화를 넘어 동북아 질서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가 관심사다.
70주년 열병식에는 최룡해 북한 노동당 정치국 상무위원회 위원이 참석했다. 그런데 이번 80주년 행사에는 김정은 위원장이 직접 참석했으니 관심이 쏠리지 않을 수 없다. 김정은은 열병식 사열대 맨 앞줄에 중국 시진핑 주석, 러시아 푸틴 대통령과 나란히 자리했다. 북·중·러 간의 연대를 연출한 것이다. 전승절에 김정은이 직접 참석할 것인지, 참석하면 어떤 예우를 받을 것인지 등에 대한 설왕설래가 있었지만, 중국은 김정은에 대해 상당한 예우를 갖추었다. 적어도 외형상은 그동안 껄끄러운 북·중관계가 어느 정도 해소되는 듯한 모습이다.
이러한 북·중·러의 밀착으로 신냉전구도가 점차 구도화되어 가는 것 같다. 북한의 러시아 파병으로 이미 북·러관계는 긴밀하다. 상대적으로 북한의 러시아 파병 이후 북·중 간의 관계는 소원해지기 시작했다. 사실, 김정은 초기의 북·중관계는 밀월관계였다. 2019년 6월 시진핑이 평양을 방문한 이후 양국관계가 소강상태였다. 이후 코로나 19로 북한이 중국과 국경지대를 봉쇄하면서 모든 부문이 단절되었다. 그러는 사이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진행되었고 북한이 파병으로 러시아와 긴밀한 관계를 만들기 시작하면서 중국과는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이런 여건에서 이번에 북·중은 나름 전략적 판단을 했을 것이다. 북한은 중국과의 관계 진전으로 얻을 수 있는 부문이 적지 않다. 예컨대, 중국을 통한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해제 혹은 완화, 양국 간 경제적 교류 즉, 중국 관광객 방북, 중국 중소상공인의 북한 출입, 북한의 노동자 중국 파견 등을 얻을 수 있다. 식량은 당장에 다급한 상황이다. 그동안 중국은 북한에 식량 지원이나 수출을 했었다. 올해도 관련기관에서는 북한 식량이 약 80-100만 톤 부족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또 2026년에는 9차 당 대회가 예정되어 있다. 당 대회에서 국가경제발전5개년계획의 성과를 내놓아야 한다. 김정은의 시진핑 만남은 이런 상황들이 복합적으로 내재되어 있다. 더구나 신냉전구도를 형성된다면 북한은 중·러를 고리로 해서 미국 트럼프 대통령과 협상에서 입지를 넓힐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한편에서는 중국은 북한과의 관계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할 수 있다. 북한의 러시아와 밀착을 경계하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북한을 지렛대로 삼아 미국과의 관계에 활용할 가능성이 있다. 즉, 중국은 한반도를 둘러싼 갈등의 조율자로서 역할을 유지하기 위해서 북한과의 협력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더구나 미국이 일본, 호주, 필리핀 등과 공조를 통해 중국을 군사·경제적으로 압박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래서 미국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북한을 협력파트너로 두는 것은 전략적 효과가 있다.
물론 중국이 북한과 관계에 무조건 밀착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국제질서에서 이단적 형태를 보이는 북한을 무조건 감쌀 경우, 국제사회에서 잃는 것이 많을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 군대를 파견하고, 핵 개발 지속하는 등 국제규범에 일탈적 행위를 하는 북한과의 관계를 무작정 진전시키는 것은 부담이 있다. 그럼에도 중국은 북한과의 관계 진전이 중국의 외교전략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 같다.
여하튼 북·중·러의 진영 형성은 한반도를 둘러싼 안보지형이 복잡하게 흘러갈 수밖에 없다. 이러한 구도가 심화되거나 장기화된다면 북한의 도발적 행위를 제재하기 어려워지고 국제질서 규범 또한 무력해지거나 혼란에 빠진다. 그로 인해 남북관계는 긴장감이 높아가고 통일로 가는 길은 점차 멀어질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