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품은 살결 건강이나 얼굴을 깨끗하게 관리하기 위해 바르는 소모용품이다. 필자가 북한에 있을 때 화장품을 쓰게 된 건 20세 때 어머니가 상점에서 크림과 분을 사주셔서 바르기 시작했다, 북한에서 1980년대 초에는 화장품 가지 수도 많지 않아서 손으로 꼽을 정도였는데, 1980년대 중 후반부터 살결물, 물크림, 분크림, 삐야스, 입술연지, 뽀마드 머리기름 등의 제품들이 나와서 사서 썼던 기억이 난다.
처음 남한에 입국했을 때 조사기관에서 주는 생활필수품 중에 화장품이 있었다. 당시 왜 이렇게 비싼 옷과 화장품까지 주지? 하는 의문이 들었다. 북한에서 선전하듯이 남조선 화장품을 바르면 얼굴 살이 썩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살았던 터라 화장품이 반갑지 않았다.
당시 한방에 6명씩 생활했는데 다른 친구들은 나눠 준 화장품을 계속 발라도 살이 썩기는커녕 볼살이 광이 나고 하얘지기 시작했다. 어 이게 뭐지? 더구나 하나원 교육기관에서도 꼭 같이 생활필수품과 화장품 한 세트씩 주는 게 아닌가. 이 세상에 공짜는 없는데 왜 자꾸 공짜로 주지? 우리를 현혹시키려고 하는 것은 아닌 것 같고, 우리에게 무슨 요구를 하려나? 등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나중에 복지차원에서 당연히 제공되는 물품이란 걸 알게 되었지만 말이다. 당시 생활필수품에 화장품까지 공급해주어서 고맙고 감사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난다.
남한 화장품 숫자는 수천 가지가 된다고 하니 청진에 살 때와 비교하면 상상이 안된다. 도대체 그 많은 화장품을 어떻게 사용하지? 지금도 화장품 이름도, 어느 부위에 바르고 어떤 효과가 나타나는지도 모르는게 많다. 더구나 남한의 화장품 이름이 외래어라 혼란스러웠다. 북한에서 화장품은 모두 우리말로 쓴다. 북한의 우리말 화장품과 남한의 외래어 화장품을 한번 보자. 살결물이 스킨, 물 크림이 로션, 분 크림은 파운데이션, 입술연지는 립스틱, 볼연지는 색조 볼터치, 눈 등분은 아이새도우, 손 보호크림은 핸드크림, 속눈썹먹은 아이라이너, 눈썹연필은 아이 브러우, 요즘 북에서 인기 있는 미안막은 마스크 팩, 밤에 바르는 크림은 나이트 크림, 얼굴에 수분이 마를까봐 자주 뿌려주는 화장수인 미스트, 태양의 빛으로부터 보호해 주는 자외선차단 크림인 썬크림 등이 그것이다.
실제 이런 외래어를 이해하지 못해 화장품 구입하러 가서 곤란했던 적이 있다. 한번은 화장품 가게에 가서 두리번거리니 점원이 다가와 어떤 상품을 찾느냐고 물었다. 선뜻 말이 안 나와 손으로 눈 등을 가리키며 여기 바르는 분이 어디 있어요? 라고 물으니 중국 사람이냐며 아이샤도는 이쪽에 있어요 하며 알려줬다. 그런데 가서 막상 보니 또 망설여진다. 종류가 너무 많아서 선택이 힘들었다.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고. 머뭇거리는데 재빨리 점원이 다가와 얼굴을 보더니 고객님에겐 이 상품이 잘 어울릴 것 같네요 하며 골라줬다.
화장품 종류도 많지만, 자신에게 맞는 기능성 화장품을 찾는 것도 어려웠다. 자신의 얼굴이나 피부색, 나이 등에 맞는 화장품을 고르는 것이 아직도 힘들다. 더구나 화장품 종류가 너무 많아서 선택이 문제가 된다. 북한에서는 이런 걱정은 없었는데... 그래도 요즈음은 많이 적응했다. 이제는 화장품 상점에 가서 눈가에 주름을 펴주는 기능성 크림인 아이크림, 얼굴에 영양을 듬뿍 주는 영양크림도 찾고 향수도 꽃향기가 나는 여러 종류의 상품이 많아 골라서 구입할 정도는 된다.
청진 아주메가 이렇게 남한 생활에 적응해 가는 모양이다 생각하니 스스로 흐뭇하다. 그동안 화장은 이쁘게 보이고 싶어 하는 것으로만 생각했다. 그런데 요즈음 주변을 보면 자기 자신을 가꾸는 자기 만족에 화장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게 보인다. 화장품의 용도가 참 다양하게 변해가고 있구나 하는 느낌이 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