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노동당 창건 80주년에 즈음해 대사면을 실시했다. 이번에도 사면의 규모나 내용은 알 수 없다. 북한 헌법상 사면권은 최고인민위원회 상임위원회가 가진다. 형법상의 범죄자들에 대하여 그들의 형벌을 전부 또는 일부 면제나 일괄적으로 몇 년을 감형 혹은 가벼운 다른 형벌로 대체하는 권한이다. 상대적으로 특정인에게 형을 면제해 주는 특사권은 국무위원장이 지니고 있다.
이번 대사면도 최고인민회의 정령을 통해서 지난 9월 26일 발표했다. 정령의 내용에는 과거와는 달리 지도자와 당이 베푸는 시혜적 조치라는 내용이 없다. 대신 모든 인민을 보살펴주는 노동당의 인민대중제일주의정치에 의해 당과 온 나라는 화목한 대가정으로 바뀌었으며 조국이 세계가 부러워하는 정치사상강국, 인민의 나라가 되었다는 정도에서 언급하고 있다. 결국은 김정은의 인민 사랑에 의해서 단행된 조치라는 것을 나타내지만, 구체적으로 김정은을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채롭다.
대사면이 김정은 시대에 들어와서 6번째다. 2012년 2월 김일성 생일 100주년과 김정일 생일 70주년을 기념해서 첫 사면을 실시했다. 이후 2015년 8월에 광복 및 노동당 창건 70주년, 2018년 8월 공화국 창건 70주년, 2020년 9월 당 창건 75주년, 2022년 1월 김일성 생일 110주년과 김정일 생일 80주년을 기념해 사면이 있었다. 김정은 시대 사면은 평균 2-3년 주기로 있는 셈이고 이번 사면은 3년 만에 이루어졌다.
대사면은 대체로 김일성, 김정일의 생일이나 노동당 창건일과 북한 정권 수립일에 실시하고 있다. 이러한 기념일의 5년, 10년 단위로 사면이 이루어지고 있다. 꺽어지는 해인 정주년이 되면 대사면을 단행하는 것이다. 사면과 함께 기념일을 경축하기 위한 각종 행사도 실시한다. 열병식, 대규모집회, 문화예술공연 등이 그것이다. 이번 사면도 노동당 창당 80주년을 기념해서 실시되었고 각종 경축행사를 하면서 신형무기도 선보였다. 이런 대규모 행사를 통해 정권의 업적을 선전하거나 고시하고 대외적으로는 체제의 안정성과 견고함을 드러내고자 한다. 이런 행사에 앞서 진행된 사면조치는 주민들의 충성심을 유도하면서 내부결집을 형성하는데 유용한 수단으로 작용할 수 있다.
한편, 사면을 받는 사람들은 사후관리 대상이 된다. 체제적응자가 되도록 관리하는 것이다. 이번에도 최고인민회의 정령에는 관련기관들이 사면자들을 도와 사업과 생활에 적응하도록 해야 함을 명시하고 있다. 관련기관은 주로 사회안전성이다. 사회안전성은 전국단위의 조직을 가지고 사면자들이 체제에 순응자가 될 때까지 관리한다. 사회안전성은 우선 사면을 받은 사람들에게 당과 국가가 베푸는 혜택임을 강조한다. 핵심은 다시 죄를 짓지 않도록 하고 지도자나 당에 대한 충성심을 보이도록 하는 것이다. 충성심을 요구하는 과정에 수감생활과정에서 알게 된 동료 수감자들과 나눈 비밀스러운 이야기까지 요구하기까지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같이 수감생활을 한 동료를 고발해 달라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사면받은 사람들은 충성심을 보여주기 위해 고민할 수밖에 없다. 살기 위해서 이전투구식으로 고발하고 체제적응자임을 증명해야 한다.
사면을 통해 충성심을 유도하고 주민결집을 유도하는 것인데, 어떻게 보면 강요된 충성심을 요구하는 것으로 보인다. 일반적으로 국가 구성원들이 자발적 충성심을 가질 때 체제는 더 안정적이다. 심리학자 다니엘 핑크는 충성심은 당근이나 채찍보다는 개개인이 소속감을 느낄 수 있을 때 나타난다고 한다. 북한도 사면을 통한 강요된 충성심보다는 구성원들이 체제에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개혁적 조치가 필요해 보인다.
문장순(통일과 평화연구소 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