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정치 지형이 바뀌고 있다. 그 한 복판의 소용돌이 주인공은 홍준표 국회의원(대구 수성을).
오는 6.1지방선거를 앞두고 경기도지사와 함께 최대 관심이였던 대구시장 국민의힘 후보 경선에서 이른바 ‘홍심(洪心)’ 이 드러났다. 윤심(尹心·윤석열 대통령 당선자 의중)과 박심(朴心·박근혜 전 대통령 의중)의 유령과 홍준표 시장만은 안 된다며 반홍(反洪)을 부추겨온 권심(權心 권영진 시장의 의중) 등 삼면초가를 뚫고 승리했다. 더불어민주당, 정의당 후보와 본선이 남았지만 8:1의 경쟁률로 시작했던 국힘이 사실상 본선이라고 한다. 23일 발표를 보면 홍 의원은 54.95%(감산 후 49.46%) 득표로 2,3위(26.43% 18.62%)를 큰 표 차로 따돌렸다.
홍준표는 직선제에 의한 첫 문민정부 김영삼 시절 서울지검 검사로 노태우 정권의 황태자 박철언 의원을 구속 기소, ‘모래시계 검사’라는 별칭을 얻으며 한국 사회에 존재를 드러냈다. 평균 시청률 46%를 기록한 SBS 시대 드라마 모래시계 바람도 탔다.
그는 1996년 총선 때 서울 송파갑 신한국당 후보로 15대 국회에 첫 등원했으나 이후 순탄하지 않은 정치역정이 이어졌다. 그를 한마디로 말하면 우리 정계의 이단아(異端兒)이자 별종(別種). 당내 계파 세력을 업지 않고 세력에 기대어 정치를 하지 않은 비주류의 대명사다. 친이·친박이 권력을 잡았을 때도 어느 계파에 속하지 않았다. 원내대표, 당대표, 경남도지사, 두 번의 대선 도전 때도 계파의 지원이 전무한 ‘마이웨이'였다.
그는 호불호가 뚜렸하면서 난사람임이 틀림없다. 직설적인 화법이 반대자들로부터 막말이란 공격을 받았지만 그의 성장 배경을 알고 보면 솔직토크로 봐 줄 수 있다. 창녕의 가난한 집에 태어나 7살에 대구 신천동 판자촌 밑바닥에서 굴러다니며 컸다. 개천에서 용이 된 입지전적인 인물들은 돌다리도 두드려 보며 건너는 소심형이든지, 솔직히 내지르고 돌진하던지 둘 중의 하나이기 때문. 20,30대 청년 세대에 인기 있는 유일한 우파정치인이 된데는 어려운 것을 쉽게 말하는 처절한 인생이 녹아있다.
‘검수완박’논란에도 “검경수사권 모두 없애고 검찰은 공소제기와 유지만 하고 '한국형 FBI'로 독립된 국가수사국을 설치하자”는 식으로 정국의 본질을 가끔 명쾌하게 풀어낸다. "막말병이 도졌다"고 저주했던 하태경 윤석열 캠프 공동선대위원장도 "홍 후보는 정치적 천재성이 있는 분이다. 윤 후보는 홍 후보를 정치 스승으로 모셔야 한다"고 띄운바 있다.
중앙 정계에서 굵직한 자리는 다해보고 적지 않은 나이(67세)에 격과 체급을 낮추어 대구시장으로 다시 시작하는 그가 대구중흥의 기초를 놓는다면 미래는 어떤 길이 열릴까.
우선 피폐해진 대구시정부터 바로잡아야한다. 전시행정과 선거캠프 인사 잔치를 벌여온 권영진호 시정 적폐를 바로잡아야한다. 중병에 걸린 대구행정에 극약처방이 필요하다. 전임 도지사들이 아무도 못한 노조가 장악한 진주의료원을 폐업한 그다. 대구시정개조, 신공항 국비추진, 동촌공항 후적지 대기업유치 등으로 “대구의 영광을 되찾자”는 그에게 풀 죽은 시민들이 희망을 걸고 있다. 이것이 성공한다면 홍준표의 정치, ‘홍정(洪政)’은 ‘홍풍(洪風)’으로 전국으로 번질 수도 있다. 그러나 잃어버린 8년, 멈춰버린 8년의 대구를 다시 움직이게 하기는 결코 쉽지 않다. 기대 반 우려 반인 이유다.
그가 숨기지 않고 있는 대권 길에 최대 약점은 정치세력 부족이다. 그동안 직선제 대통령당선자는 기득권세력의 옹립을 받든지, 전임자의 낙점을 받든지 둘 중에 하나다. 지난해 11월 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도 국민 여론(50%)은 홍 의원이 48.21%로 1위를 차지(윤석열 37.94%)했지만 기득권 다수 의원들의 지지를 받지 못해 당원투표에서 패배했다.
미국 우선주의와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와 결이 다른 독일과 프랑스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데카르트의 합리주의와 루소 볼테르의 계몽주의 이상이 낳은 자유와 민주주의 프랑스다. 마크롱(Macron)이 24일 프랑스 대선 결선에서 58%를 얻어 42%를 얻은 르펜을 꺽고 20년 만에 재선됐다. 마크롱은 사회당을 탈당해 2016년 중도신당 앙 마르슈(LREM)를 창당했다. 사회당 배신자(?) 마크롱의 앙마르슈 24.1%, 극우정당 국민전선(RN) 르펜 21.30%로 소수파가 1,2위를 차지하고, 30여년 간 정권을 주고 받은 좌우 두 거대정당 공화당(20.1%) 사회당(6.36%)이 밀려났다. 결선투표에서 공화당과 사회당의 지지를 얻은 만39세였던 마크롱이 당선됐다. 공직을 거쳐 로스차일드은행 일을 하다가 사회당으로 들어가 올랑드 대통령 부비서실장에 이어 경제산업디지털부장관 경력밖에 없었다.
다가오는 2027년 한국 대선에도 기득권세력의 위력이 판을 칠지 여부가 관심이다. 프랑스선거사에 획을 그은 2017년 대선판과 유사할 수도 있다. 87체제 이후 기득권세력이 주도하는 두 거대정당만이 집권한 것에 국민은 신물이 난다. 두 당 모두 중앙 정치판 밖의 인물에게 넘겨주지 않으면, 프랑스처럼 아예 판(版)밖에 인물을 국민이 선택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놈이(좌파) 그놈(우파)’인 정치판을 판갈이한 2017년 프랑스처럼 30년 민주주의 적신호가 온 한국에 극약처방이 필요하다. “천하경영의 포부를 먼저 대구시정부터 하도록하겠습니다” 지난 3월 수성못 상화동산에서 밝힌 의미심장한 말이 어떤 씨앗이 될지 국민이 주목하고 있다.
*글쓴이 김정모 법학 박사는 신문사에서 데스크 청와대출입기자 논설위원을 지내며 공중파 방송 시사프로 패널을 했다. 중소기업 CEO를 거쳐 경북대학교에서 강사 계약직교수를 역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