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야 대부’ 영원한 장외 정치인 장기표 신문명정책연구원 원장이 22일 별세했다. 향년 78세.
장 원장은 지병 끝에 이날 오전 1시 35분께 입원 중이던 일산 국립암센터에서 숨을 거뒀다.
고인은 두 달여 전인 지난 7월 16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병원에서 진찰받은 결과 담낭암 말기에 암이 다른 장기에까지 전이돼 치료가 어렵다는 판정을 받았다”며 “아무 미련 없이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 한다”고 밝혔다.
1945년 경상남도 밀양에서 태어난 고인은 마산공고를 졸업하고 1966년 서울대 법학과에 입학, 학생운동과 노동 운동에 투신하면서 1995년에야 졸업했다.
서울대생 내란음모사건을 시작으로 민청학련사건, 청계피복노조 사건, 민중당 사건 등으로 9년간 수감 생활을 하고 1970~80년대 수 차례 투옥과 석방을 거듭했고, 12년간 수배 생활을 했다.
1980년대부터 이부영 김근태씨와 함께 재야운동의 핵심 세력으로 떠오른 그는 1984년 10월 문익환 목사를 의장으로 종교인, 변호사, 퇴직 언론인 등이 참여하는 민주통일국민회의(국민회의)를 창립하는 데 기여했고, 이후 국민회의와 민중민주운동협의회(민민협)의 통합을 이끌어 민주통일민주운동연합(민통련)을 창립했다.
1990년에는 농민운동 대부인 이우재선생과, 현재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을 맡고 있는 이재오 전 의원, 김문수 현 고용노동부 장관 등과 함께 민중당 창당에 앞장서면서 민주화 이후엔 진보정당으로 정치활동을 했다. 이후 개혁신당, 한국사회민주당, 녹색사민당, 새정치연대 등을 창당했다.
하지만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를 시작으로 15·16대 총선, 2002년 재보궐, 이어 17·19·21대까지 7차례 총선거에서 모두 떨어졌다. 21대 총선에서는 보수정당인 미래통합당 후보로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국민의힘을 탈당해 특권폐지당 창당을 추진하던 중 원외 정당 가락당에 합류해 가락특권폐지당으로 22대 총선에 후보를 냈으나 원내 입성에 실패했다. 국회의원이 자전거를 이용하거나 걸어서 국회에 출근하고, 월 급여로 400만원만 받고, 보좌진도 줄이는 정치개혁을 염원해서다. 세 차례 대선에도 출마를 선언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처럼 한평생 노동·시민·정당운동에 헌신했음에도 결국 제도권 정계로는 진출하지 못해 ‘영원한 장외 정치인’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인생 종반부인 최근에는 ‘신문명정책연구원’을 만들어 저술과 국회의원 특권 폐지 운동 등에 집중, 지난해부터는 특권폐지국민운동본부 상임공동대표로 전국을 누비며 국회의원의 면책·불체포특권 폐지, 정당 국고보조금 폐지, 국민소환제 도입 등을 강력히 주장했다. 숱한 수감·도망 생활에도 민주화 운동에 따른 보상금을 일절 수령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2019년 한 언론 인터뷰에서 “나는 국민 된 도리, 지식인의 도리로 안 받은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월수입은 220만원 정도였다. 국민연금과 베트남 참전 수당 등을 모두 합한 것이다.
유족으로는 부인 조무하 씨와 딸 하원, 보원 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장으로 치러지며 발인은 26일, 장지는 경기도 이천 민주화운동기념공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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