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늘보의 독보』
『나무늘보의 독보』 | 권영해 지음 | 156쪽 | 14,000원

급변하는 사회에 경종을 울리고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는 의미를 담은 시집이 독자를 찾는다.

28일 문학계에 따르면 권영해 시인의 네 번째 시집 『나무늘보의 독보』가 발간돼 서점에서 유통 중이다. 시인은 동물의 움직임에서 본질을 탐구한 시상을 날카로우면서도 담담하게 노래했다. 나무늘보의 느린 움직임에서 착안, 세상의 속력과 조급함을 경고하는 데다 쇠똥구리가 쇠를 마는 모습을 묘사해 몸을 낮춰야만 높은 곳에 오를 수 있다는 깨달음까지 피력하고 있다. 이같은 내용은 현대문명의 비인간화에 대한 일침이자 인간성 상실에 대한 성찰도 함의하고 있다. 성과주의가 만연한 현실을 꼬집고 욕망을 추구하기보다 놓아주는 일에 의미를 부여하는 등 세상의 이치와 다른 방향을 지향하는 시인의 입장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욕망추구는 외형만 부풀릴 뿐이고 본질적인 가치는 흐려진다는 시인의 철학이다. 수록된 작품 곳곳에는 상투적 어법을 과감하게 해체한 발상의 전환은 물론 파격적인 행갈이도 나타나 시인만이 가능한 표현도 파악할 수 있다.

세상의 꿈들은 얼마나 부질없는가

짐 진 자들아 이고 지고 안고 있는 걱정을 죄다 벗어 버려라 오체투지도 버리고 삼보일배도 던져 버려라

세상을 구르게 하는 힘은 미는 것이 아니라 염려를 놓아 주는 일

굴리고 굴릴수록 바퀴가 구르는 것이 아니라 쇠똥 경단만 덕지덕지 커질 뿐

내가 아니면 무언가 굴러가지 않을 거라는

그 착각마저 붙들어 매시라 (「쇠똥구리」 전문)

문학계를 비롯한 전문가들은 앞다퉈 시인 특유의 표현과 의미를 해설에 나섰다. 권성훈 경기대 교수는 "시인은 공간과 시간을 넘나들며 존재 방식을 새롭게 구성하려고 한다"라며 "동적인 지속(repetition)과 정적인 정체(identity)를 통해 횡단하며 '어두운 곳을 관철하여 밝음과 한통속이 되게 하는 것(「누수의 달인」)으로 현상계의 '불통을 와해하는' 일원론적인 지혜를 송출하고 있다"라고 해설했다. 문영 시인도 "시에서 돋보이는 나무늘보의 걸음걸이는 홀로 느릿느릿 걸어가는 시인의 표상"이라며 "남과는 구별되는 시인의 독특한 사유와 독보적 시법"이라고 분석했다.

한편 시인은 울산 현대청운고에서 정년퇴임한 뒤 울산문인협회장을 맡아 회원들의 문학적 역량을 강화하는 데 힘썼다. 이같은 활약으로 대한민국예술문화공로상(2023), 울산예술문화상(2024), 울산펜문학상(2024)을 수상했다. 앞서 2021년에는 홍조근정훈장을 수훈했다. 경북대 국문학과를 졸업한 시인은 지난 1997년 김춘수 시인의 추천을 받아 현대시문학』에 「꿈꾸는 장생포」 외 8편으로 등단한 이래 <수요시 포럼> 동인 활동으로 『노을에서 꺼낸 바게트』(2024) 등 공동시집 총 21권을 출간하는 데도 참여했다. 발간 시집으로 『유월에 대파꽃을 따다』(2001), 봄은 경력사원』(2013), 고래에게는 터미널이 없다』(2019)가 있다.

시인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최소한의 인문학적 대답을 '시'라고 한다면, 이번에 형상화하고자 한 개인적 삶의 방식들이 '우리' 것으로 확장·공유해도 손색없었으면 하는 바람"이라며 "독자들은 내 마음을 읽고, 문명의 크기와 방향·속력 사이에서 상실해 가는 것, 간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봤으면 한다"고 서두에 밝혔다.

권영해 시인
권영해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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