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야당의 명대변인이자 전두환 신군부의 계엄령 하에서 탄압 받았던 정계 원로 김수한 전 국회의장이 30일 별세했다. 향년 96세.

경북 의성군 안동김씨 집안에서 태어난 김 전 의장은 칠곡을 거쳐 대구고와 옛 대구대(현 영남대) 법학과를 졸업했다. 1957년 진보당(혁신계)계인 민주혁신당 창당 요원으로 정계에 입문한 김 전 의장은 경북 대구선거구에서 낙선을 거듭한 뒤 1967년 제7대 총선에서 서울로 지역구를 옮겨 보수당으로 전향(신민당)해서야 처음 등원했다. 이후 7·8·9·10·12·15대까지 서울 영등포을과 관악 지역구 등지에서 6선 의원을 지냈다. 이철승 당 대표 시절 최측근이었으며 80년대 전후해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참모로 활동했다.

신한당(윤보선 총재)에 이어 신민당에서도 명대변인으로 활동했던 고인은 71년 대선시 김대중 후보보다 연설을 잘해 김 후보 득표에 바람을 일으켰다. “김수한 있는 곳에 당권 있다”라는 말을 낳을 만큼 정계에 제갈량으로 알려져 있었다.

10대 국회의원(4선)이던 1980년에는 전두환 신군부의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에 강제 연행돼 한 달여 간 불법 구금되는 곤욕을 치렀으나 신군부의 계엄통치에 협력을 거부했다. 당시 신군부는 5·17계엄 후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국보위)를 설치해 최규하정부를 대행통치했다. 정적 제거에 나서 김 전 의장과 함께 신민당계 김영삼·김대중(DJ)과 공화당계 김종필(JP)의 측근 정치인 17명을 연행하는 등 2699명을 구금했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지난 3월 김 전 의장을 신군부가 저지른 인권 침해 피해자로 인정했다.

15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을 역임했으며 김영삼 대통령 서거 시 공식 조사는 명연설로 꼽힌다.

의원 생활을 마친 뒤에는 한일 친선협회중앙회장을 맡아 민간 외교분야에서 활동했다. 김영삼 민주센터 이사장, 대한민국헌정회 원로회의장,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상임고문단 의장 등도 지냈다. 빈소는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 발인은 1월 3일이다. 상주는 한세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출신의 김성동 18대 국회의원(한나라당 비례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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