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에 온지 어연 15년이 넘었다. 남한에 와서 사람들을 만날 때 대화는 별로 문제가 없었다. 속으로 역시 같은 민족은 통한다는 생각을 하면서 언어소통에 대해서 안도했다. 그런데 웬걸 생활하면 할수록 어리둥절하고 당황스러웠던 일들이 종종 일어났다.

처음 컴퓨터를 접했을 때다. 어느 종교단체에서 기부받은 컴퓨터였는데 고장이 났다. 그래서 어떻게 수리해야 하는지 몰라 고민하면서 길을 가고 있는데, “컴퓨터 세탁이라고 써있는 간판이 보였다. 그래서 가게에 들어가 사장님께 컴퓨터 수리해 주느냐고 물었다. 그런데 그 가게 안을 보니 천장에 옷들이 쫙 걸려 있는 거였다. , 이거 이상한데 하면서도 다시 한번 사장님에게 컴퓨터 수리하려고 한다고 얘기했다. 사장님이 박장대소하시면서 세탁기에 빨래를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들어있어서 자동으로 세탁한다는 의미라고 설명해 주었다. 이탈주민이라고 밝히면서 재빨리 가게를 빠져나왔던 경험이 있다.

그런데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또 한번은 아는 분의 식사 자리에 초대를 받았다. 초대한 분은 한국의 발전된 이야기를 하시면서 대한민국의 파워가 대단하다며 해외 어느 나라에 가도 우리나라 자동차들이 씽씽 달린다는 이야기를 했다. 궁금증을 참지 못해 파워라는게 뭐냐고 물었다. 그분이 자세하게 이야기를 해주어서 이해는 되었다. 사실, 필자가 북한에 있을 당시는 영어를 들어 본 적이 없다. 남한에는 간판은 물론이고 이야기 도중에도 온통 영어 투성이다.

남한에서는 일상대화에서 외국어를 정말 많이 사용한다. 이런 일도 있었다. 봉사단체에서 활동하고 회식하는 날이었다. 그런데 음식이 푸짐하게 놓여있는데 평소에 잘 먹기로 소문난 한 언니가 그 날은 음식을 거의 먹지 않았다. 혹시 불편한데가 있느냐고 물었더니 그 언니 왈, 먹으라고 하지마라 그러면 스트레스 받는다. 나도 너처럼 s라인 만들어야 되겠다는 것이다. 나보다는 몇 년 앞서 남한에 온 이탈주민인데 하는 말에 영어가 줄줄이 달려 나오는 것이다. 그때 무슨 말인지 알지 못했는데 지금은 이 정도 영어단어를 사용하면 알아듣는 수준은 되었다.

생활수준에서 차이도 언어의 차이를 만드는 것 같다. 어느 단체 회장님의 집에 초대받은 적이 있다. 식사하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다가 회장님에게 위생실이 어디 있느냐고 물었다. 남한에 와서 화장실이라는 말을 알고 있었는데 나도 얼떨결에 위생실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다시 화장실 사용하고 싶다고 말로 바꾸어서 이야기해서 화장실에 들어갔다. 문제는 여기서 또 생겼다. 화장실은 모두 같은 줄 알았는데, 그 집은 변기 옆에 불도 들어오고 여하튼 이상했다. 그동안 사용했던 거와는 달랐다. 한참 헤메다가 간신히 물을 내리고 나왔다.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물었다. 우리 화장실 변기와 달라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서 당황스러웠다고. 그 이야기를 들은 그 분이 당장 우리 집 변기를 비데형으로 교체해 주셨다. 미안하면서도 감사했다.

사실 언어는 그 사회의 문화를 형성한다. 어떤 언어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대화가 되고 공감대를 느끼게 하기도 한다. 남한에 와서 지금은 많이 적응되었다. 북한 말투나 단어가 툭 튀어나오면 오히려 어색하게 느껴진다. 그만큼 남한사회에 적응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 거다.

그래도 한편에서는 지나친 외래어 사용으로 우리의 고유한 말이 사라져 가는 것이 안타깝기는 하다. 북한에서는 남한보다는 순우리말을 많이 사용한다. 통일이 된다면 우리말 사용하기 운동을 펼쳐볼까 하는 생각이 언뜻 든다.

노우주(통일교육강사)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저작권자 © 대구경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