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북한에 있을 때는 상상도 못한 일이었다. 남한에 정착하면서 가끔 당일로 가까운 곳에 다녀오긴 했어도 23일 여행은 청진 아지메에겐 사치였다. 남한에서 결혼 후에 그런 사치가 현실이 되었다. 남한에서 새로 이어진 시댁 형제들과의 가족여행을 하게된 것이다.

제가 시집을 오니까 남편 형제가 8남매였다. 부부와 자녀들까지 하면 20-30명 정도인데, 해마다 여행을 했다고 한다. 시집와서 첫 가족여행에 동반하게 되었다. 남편이 청진 새댁을 배려해 북한과 가까운 파주 임진각과 강화도 쪽으로 23일을 정했다. 전망대에서는 망원경으로 북녘 땅을 볼 수 있는 곳이다. 내 고향 청진을 보지는 못했지만 감개무량했다.

북녘 땅을 봤다는 감격을 앉고 강화도로 갔다. 가족여행이 이렇게 좋은 줄 몰랐다. 모두 웃고 떠들고 분위기가 그야말로 짱이었다. 식사 준비를 아주버님들이 한다면서 청진댁은 쉬란다. 그런다고 쉴 청진댁은 아니다. 이렇게 모인 가족들을 위해 일한다는 게 그냥 즐거웠다. 가족들 도움을 받아가면서 열심히 저녁 준비를 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났다.

강화도는 역사 유적지가 많았다. 다음 날 아침 세계문화유산인 고인돌 역사박물관과 자연사 박물관을 둘러봤다. 청동기 시대의 돌무덤을 어떻게 관리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조선시대의 강화도의 모습이 잘 보존되어 있는 광성보도 보았다. 역사유적을 이렇게 마음껏 둘러 볼 수 있으리라곤 상상도 못했다. 이게 남북이 다른 점이겠지 하는 생각이 언뜻 머리 속을 스쳐 지나갔다.

하루가 또 순식간에 지나 가고 있었다. 어제처럼 저녁에는 각자 이야기 보따리가 열렸다. 그런데 오늘은 청진댁 이야기가 많이 나왔다. 가족들이 북에서는 어디 어디 여행을 했는지가 제일 궁금한 모양이다. 잠시 머뭇거리다가 있는 그대로 이야기했다. 먼저 북한에서는 여행증명서가 없으면 다른 지방에 가지를 못하기 때문에 여행은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한다부터 이야기를 시작해 학교 때 모범 학생으로 뽑혀 신의주로 견학 가서 압록강에 오리 동동배를 타 본 적이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시집을 가서는 해주, 청단, 사리원, 원산, 무산, 검덕 등 전국 떠돌이 장사하느라 오늘 우리가 하는 것과 같은 여행은 상상도 못 해봤다는 등등의 이야기도 했다.

그러다가 밤이 깊어가면서 북에서 시집갔을 때는 8년 동안 친정집에 한 번도 못 가보고 탈북했다고 말하니 가족들이 울먹이며 저를 꼭 안아주며 토닥거려주기까지 했다. 이게 가족이구나 하는 행복한 느낌이 들었다.

이렇게 하루가 또 가고 가족들은 이제 다시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시작했다. 여행에서 돌아 온 후 마음이 참 가벼웠다. 후련했다. 가족이란 걸 느꼈다. 남한에 와서 여행이 참 좋은 것이구나 하는 것을 새삼 알았다. 그냥 놀러 간다 이런 것보다 잠시 직장일과 가정일에서 벗어나 복잡한 머릴 식히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한편에서는 이렇게 가족 여행을 가서 좋은 시간을 보내니까 북한 생각도 더 났다.

여행하면서 가족들과 나눈 이야기들도 계속 머리를 맴돈다. 그 중에서도 가족들이 북한에 대해 궁금한 것을 물어보는데 너무 북한 현실을 몰라 놀랐다. 특히 어린 조카들과의 나눈 이야기가 기억에 제일 남는다. 북한에는 정말 배고픈 사람이 많다. 먹을 것이 없다고 하니까 어린 조카들이 밥이 없으면 가게 가서 빵을 사먹으면 되지 않느냐는 대답이 당혹스럽기도 하고 순진한 것 같기도 하고. 그래도 23일 가족여행은 생에 잊지 못할 좋은 추억과 새로운 가족을 만나서 서로를 알아가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노우주(통일교육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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