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장마당’은 단순한 시장이 아니다. 그것은 체제 밖에서 자생적으로 형성된 경제 공간이며, 국가 통제를 벗어난 주민들의 자율적 삶의 터전이다. 이 시장의 확산은 북한 사회 내부에서 점진적인 변화의 바람을 일으켰고, 이는 곧 한반도 통일의 구도를 새롭게 만드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과거 1990년대 초반까지 북한 주민들은 배급제에 기반한 모든 생활을 국가에 의존해야 했다. 또한 계획경제는 주민들의 삶을 철저히 통제했고, 시장이라는 개념은 존재할 수 없었다. 하지만 1990년대 중후반 '고난의 행군' 시기를 지나면서 배급 체계는 사실상 붕괴했고, 그 자리를 ‘장마당’이 대체하기 시작했다. 생존을 위해 주민들은 국가가 아닌 장마당에서 스스로 삶을 구하였다, 이 과정에서 시장경제의 기초 원리가 되는 ‘가격 형성’, ‘수요와 공급’ 그리고 이 모든 것이 ‘개인의 선택’으로 이루어진다는 작은 경험을 하게 되었다. 이는 단순한 경제적 변화가 아니다. 북한의 장마당은 인간의 기본적 알 권리에 대한 정보의 흐름도 바꿨다. 개인의 휴대전화 확산, 몰래 들여온 남한 드라마와 음악, 중국을 통한 외부 물품 등의 유입은 북한 주민들에게 또 다른 외부 세계를 궁금하게 만들었고, 판단과 비교의 기준을 만들어 주었다. 북한 주민들은 이제 ‘자신이 사는 세상이 전부가 아님’을 점차 깨닫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통일 문제에도 중요한 함의를 갖는다. 먼저, 예전에는 북한 주민들이 남한을 단지 ‘적’으로만 인식했다면, 이제는 한국의 물건, 문화, 생활상을 간접적으로 접하게 됨으로 호기심과 동경의 감정을 싹트게 한다. 그로 인해 남북한 주민 간의 심리적 거리감이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 이는 장기적으로 볼 때 통일 후 사회 통합에 긍정적 자산이 될 수 있다. 또한, 장마당을 통해 자생적 경제 활동을 해 본 경험들이 향후 통일 이후 북한 지역의 자립과 경제 회복에 긍정적인 기반이 될 수 있다. 즉 통일 후 전면적인 시장경제 도입이 갑작스럽게 이뤄지더라도 이미 북한 주민들이 장마당을 통해 가격을 책정한 상거래, 생산과 유통 구조 등을 일부 경험했기에 최소한으로 서로 다른 환경에 대한 혼란을 줄일 수 있는 여지가 있다. 그래서 북한 주민들의 의식이나 삶에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그렇다고 북한 체제의 변화를 당장에 기대하기는 힘들다.

북한은 철저한 통제사회다. 당 조직과 정부 권력기관이 주민들을 이중삼중으로 감시할 수 있는 체계를 유지하고 있다. 당은 지방조직에는 당원 5~30명으로 구성된 최하 기층조직인 당세포가 있다. 직장, 학교, 각종 단체, 인민반에도 당원 조직이 있고 이 조직은 주민들의 일상을 상급 당기관에 보고한다. 우리의 경찰에 해당하는 사회안전성이 마을 단위 수준에서 분 주소를 두고 주민 동향이나 치안유지 역할을 담당하고 있고 법 준수를 감시하는 사회주의법무생활지도위원회, 국가보위성 등은 지방행정단위에 조직을 가지고 주민들을 통제, 감시하는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주민들은 이러한 조직들로부터 감시받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 배급 체제가 붕괴되면서 시장이 들어왔고 그로 인해 주민들의 생활양식에 변화를 가져왔다. 그렇다고 기존의 북한 주민통제 장치가 무너지거나 작동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장마당(비공식 시장 경제)은 일부 경제적 여지를 제공하고 있지만, 2025년 현재도 전국적으로 광범위한 경제 자율성은 여전히 제한된다.

코로나 이후 국경 폐쇄 해제 움직임이 일부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여전히 국경 통제, 밀수 단속 강화, 지역 주민의 외부 접촉 제한이 유지돼 시장 경제의 확산은 제한적이다. 2025년 7월의 북한은 여전히 극도로 통제된 전체주의 체제이며, 주민들의 인권은 거의 모든 면에서 침해 받고 있다. 장마당이나 일부 변화의 조짐에도 불구하고, 본질적인 자유와 권리는 여전히 요원한 상황이다. 장마당 등을 통해 주민들의 의식변화는 가져왔으나 그것을 행동으로 표출하긴 쉽지 않은 구조다. 주민들은 자신들을 통제하는 조직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다. 자신들의 권리, 인권 개념을 충분하게 인지하고 있지는 못한 것 같다. 그래서 행동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장마당을 통해 북한 주민들의 ‘의식’이 바뀌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의식변화가 당장에 북한 주민들을 행동으로 이어지게 하기는 힘들지만 그래도 그들은 장마당을 통해 정보를 주고받고 시장 속에 내재 된 자유, 인권 등을 깨쳐갈 것이다. 우리가 통일을 좀 더 장기적으로 바라본다면 북한의 장마당은 우리에게 희망을 주는 것이다. 통일은 단순한 남북한의 제도 통합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의 마음을 잇는 것이다. 즉 북한 장마당은 우리에게 ‘통일의 가교’로서 ‘사람 중심의 통일’을 준비할 수 있는 중요한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이경채(대구글사랑학교 교장)
이경채(대구글사랑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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